깐창이의 새집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by 강쌍용


깐창이의 새집




“아이고, 그놈, 참 잘한다! 뉘 집 아들이고.”


복연이 할매가 머리를 쓸며 내민 손에는 눈깔사탕이 들려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탕을 냅다 받아 쥔 녀석은 깽 문(바닷가)으로 다시 뛰었다. 듬성듬성 헌데가 도드라져 있는 머리빡에는 뻘건 아카징키를 발랐던 자국이 선명했다.

미루어 짐작건대 누가 보아도 날래고 저돌적인 개구쟁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짚단을 덜 쳐 매고 올라오던 녀석들이 되레 길을 비켜주었다.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아이들은 스스로 기가 죽었다. 하기야 기껏 한 짐을 지고 허덕이는지들에 비하면 재는 벌써 두 짐을 풀어놓고 달려가니 부러운 것이 자연스러웠다.

짚단을 들거나 매지 않은 아이는 끄트머리를 양손에 잡고 질질 끌었다. 이렇게 지나간 자리에는 그럴싸한 볏짚 이 차선 도로가 새로 생겨났다.




초가지붕은 매년 이맘때면 꼭 새 이엉을 이어 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삭은 볏짚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었다. 그런 집은 벽에 우렁이 지고 습해서 살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지붕을 이우는 일은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연중행사 중의 하나였다. 북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동짓달 전후가 되면 온 동네가 늘 시끌벅적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식주에서 집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집은 간혹 객년에 한 번씩 지붕을 이을 때도 있었지만 그리 흔하지 않았다.

육지의 가을 추수가 끝나면 어른들은 볏단을 섬으로 실어 왔다. 양이 많은 집은 덩치가 큰 어선이나 따로 도선을 대절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꼬~마이(발동기가 없는 소형 목선)에 실어 노를 저었다.

산더미처럼 실은 볏단에 앞이 가린 배를 저어 오는 모습은 보기에도 위태로웠다. 선수와 선미의 구별도 힘들 만큼 짐을 실은 배는 노련한 어른들의 배질로 용케 부두에 도착했다.

이런 날은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전부 깽문(바닷가)으로 몰려들었다. 볏단을 집 마당까지 옮기는 든든한 일군들이었다.

어른들이 볏단을 풀어놓으면 벌떼같이 달려들어 이를 날랐다. 그러면 사탕이나 건빵을 미리 준비하신 복연이 할매가 옮길 때마다 삽짝에서 한 개씩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을 부추기는 할매 입술에는 메기 알갱이 같은 거품이 뽀글뽀글 맺혀 있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달렸다. 서로 먼저 나르겠다고 난리를 쳤다. 왁자한 운반이 끝나면 사탕을 세어가며 자신을 자랑했다.



날라진 볏단은 마당이나 텃밭 언저리에 어른들이 차곡차곡 쌓았다. 바람에 쓸려가지 않도록 줄을 두르고 무거운 돌을 단단히 매달았다.

그리고 몇 날에 걸쳐 새끼를 꼬고 이엉을 엮었다. 양지바른 담벼락에 앉아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어 가며 지푸라기를 말아가던 어른들의 손은 마른 장작처럼 거칠고 투박했다.

미리 물에 축인 지푸라기는 복연이 할매 누런 몸빼같이 적당히 숨이 죽어 마침맞게 휘늘어졌다. 몇 가닥을 집어 손바닥을 서로 맞대고 비비면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며 새끼줄이 만들어졌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 그래도 비좁은 안방은 짚단이 차지했다. 한 데로 밀려 나간 아이들이 새끼를 꼬아 보겠다고 쪼그리고 앉아서 흉내를 내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괜히 지푸라기만 축낸다고 핀잔을 들었다.

사각사각 일정한 음을 내며 말린 새끼줄은 뱀처럼 똬리를 틀며 길이를 더해 갔다. 밤이 이슥해지도록 새끼 꼬기는 계속되었다.

윗집 대밭의 달 그늘이 점점 짙어 갔다. 법석을 떨든 방안도 어느새 조용해졌다.

해 작을 치다 잠든 아이들이 꿈을 꾸는지 자꾸 이불을 차내며 잠꼬대를 했다.

쏴~ 초승달이 저무는 묏등 위로 솔바람이 불었다. 문 틈새로 들어온 바람에 호롱불이 흔들리면 아버지의 구부정한 그림자가 문종이에 아른거렸다.

때를 맞추어 부엉이 울음소리가 용마루를 틀었던 마당에 내려앉았다. 스산한 밤바람이 흩어진 지푸라기를 쓸어가는지 부스스 들리는 소리가 멀어져 갔다. 그렇게 깊어가는 겨울밤은 길고 적막했다.

몇 날에 걸쳐 꼬인 새끼줄이 둘둘 말려서 죽담 밑에 차곡차곡 쌓였다. 얼추 춘 새까지 다다르면 곧 지붕 이우기가 임박했음을 알렸다. 엮은 이엉과 용마루는 주로 담벼락에 기대 놓거나 깽 문 타작마당 같은데 가지런히 세워 놓았다. 집의 규모에 따라 이엉의 크기나 개수도 달랐다. 어른들은 지붕의 넓이와 이엉의 양을 신기하게 딱 맞추었다.




이윽고 지붕 이우기를 하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마당은 시끄러웠다. 묵은 지붕을 걷어내느라 삭은 지푸라기가 바람에 날리면 온 동네가 까만 부스러기로 뒤덮였다.

걷어 낸 지푸라기가 밀려서 지붕 아래로 떨어지면 아이들은 그것을 마당 한쪽으로 치웠다. 아이들은 자주 볏짚을 들추었다. 해나 지난봄에 새집을 달라고 깐창이에게 던졌던 헌니를 찾지 않을까 신경 세워 눈알을 굴렸다. 그러나 제 이빨을 찾았다는 소식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아무렇게 팽개쳐진 삭은 볏짚은 나중에 어른들이 야물게 손을 보면 다시 어엿한 낟가리가 되었다. 수명이 다한 지푸라기는 이제 땔감으로 다음 역할이 있었다.



지붕의 황토 바닥이 어느 정도 드러나면 춘 새에 사다리를 걸쳤다. 엮어놓은 이엉을 어깨에 멘 어른들이 좁은 사다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힘을 썼다. 지붕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태구 아저씨가 키만 한 이엉을 받아서 대번에 끌어올렸다.

이를 밑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이 와! 하며 감탄했다. ‘확실히 어른들은 틀리다. 힘도 세고…!’ 아이들도 언젠가 어른이 되면 저러리라 생각했다.

태구 아저씨의 솜씨는 온 동네가 알아주었다. 왜소하지만 도대체 거칠 것이 없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야무져서 지붕 이우는 철이면 손을 빌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어른들은 태구 아저씨가 이르는 대로 순전히 따랐다.

가끔씩 큰소리를 지르기도 했는데 이때는 일꾼들이 슬슬 기었다. 구경하던 아이들도 멀찌감치 몸을 낮추거나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이엉이 다 올라가면 일꾼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지붕 이을 거라고 며칠 전 시장에서 사 온 귀한 음식이 점심으로 차려졌다. 평소와 다른 밥상에 아이들이 자꾸 상 주위를 기웃거리며 빙빙 돌았다.

아버지가 어른들 밥상 앞에서 버릇없이 군다고 역정을 냈다. 이럴 때면 복연이 할매가 아버지 등을 떠밀며 멀찌감치 돌려세웠다. 그리고 작은 도래 판(둥근 상)에 이것저것 눈에 띄는 데로 아끼지 않고 차려주었다.

다른 날보다 쌀이 많이 섞인 밥그릇을 아이들은 게걸스럽게 퍼먹었다. 밑이 드러나면 밥알을 모은다고 숟가락으로 바닥을 박박 긁었다. 그 소리에 놀랐던지 아랫집 복실이가 용맹 없이 짖어댔다.

허기진 식욕은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았다. 어른들은 짐짓 모르는 체 시치미를 떼며 시끄럽다고 나무랐다.

해가 쥐꼬리같이 짧은 겨울의 오후는 금방 햇볕이 사그라들었다. 어른들은 자꾸 손을 서둘렀다. 따라서 태구 아저씨의 목소리도 자꾸 커지고 빈번하게 들려왔다. 부대꼈던지 목소리에서 쉰 소리가 났다.

춘 새에서 두르기 시작한 이엉은 반씩 포개가며 덮어가다가 마지막에 종도리 같은 용마루를 덮었다. 어른들은 상량을 올렸다고 너스레를 떨며 소금을 뿌리고 막걸리를 흩었다. ' 꼬시네'를 중얼거리며 액운을 쫓는다고 여기저기 잔을 뿌렸다.

잿빛 지붕이 어느새 연노랑으로 바뀐 모습은 아이들이 보기에도 산뜻했다.



내려오기가 귀찮았던지 이맘때쯤 주전자가 담긴 소쿠리가 지붕 위로 올라갔다.

북북 찢은 마른 메기를 고추장에 찧은 태구 아저씨가 막걸리 사발을 들이켰다. 목젖을 축인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켠 탓인지 봉긋하게 솟은 울대가 말캉말캉 출렁거리더니 이내 수그러졌다.

입맛을 다신 어른들이 이엉에 등을 기대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길게 뿜은 연기가 찬 공기 속으로 산만하게 흩어졌다. 훔치지 않은 입가에는 벌건 고추장이 게 글스럽게 묻어 있었다. 언제 날아왔는지 까치 한 마리가 마른 가지에 앉아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일손을 재촉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 태구 아저씨가 담뱃불을 발로 뭉갰다. 한쪽 콧구멍을 막고 휑~ 코를 풀었다. 풀 어제 낀 콧물은 지푸라기를 걷어내며 들이켠 거무튀튀한 미금이 함께 섞여 총알처럼 튕겨 나왔다.

손가락에 콧물이 묻었던지 바지에 대고 몇 번 쓱쓱 문질렀다. 칼칼한 목을 씻어내려는 듯 뱉어낸 누런 가래가 지푸라기 위로 뒹굴었다. 그것은 들숨과 날숨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진득한 삶의 액체 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늘 부산하지만 쪼들렸던 태구 아저씨의 오징어 먹물보다 더 까맣고 고단했던 한숨 인지도 몰랐다.

해가 기울수록 어른들의 손은 더욱 바빠졌다. 지붕을 덮은 이엉 위로 새끼줄을 단단히 잡아당기는 어른들의 팔뚝에 힘줄이 섰다. 양쪽 서까래에 새끼를 묶을 때는 서로 손을 맞추느라 이상한 소리를 냈다. 구령 같기도 하고 노랫가락 같기도 한 소리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잠시 끊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이어지며 몇 차례나 반복되었다. 타령 같은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아이들은 따라 하며 키득거리고 웃었다. 하도 들어서 귀에 익었던지 아이들은 제법 오랫동안 장단을 흉내 내며 흥얼거리고 다녔다.

태구 아저씨가 저쪽 지붕 끝에서 이쪽을 꼬나보며 춘 새 끝을 낫으로 반듯하게 잘랐다. 그사이 어른들은 낮은 담장에도 용마루를 걸쳤다. 장독간을 끼고도는 흙담에는 말라붙은 호박 넝쿨이 앙상했다. 걷어낸 부스러기를 아이들은 물도 뿌리지 않고 빗자루로 쓸었다. 먼지구름이 뭉긋뭉긋 흙마당에서 피어올랐다.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은 서쪽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했다. 마침내 지붕 이우기가 마무리되었다.



이빨이 빠지면 일곱 살 게우지들은 빠진 앞니를 지붕에 던져 올리며 노래를 불렀다. 영문도 모르고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불렀다.


“깐창아, 깐창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그렇게 기다리던 새집을 드디어 깐창이가 주었다고 아이들은 믿었다.




불과 오십여 년 전의 이야기다. 이제는 다만 그리운 기억뿐이다. 궁둥이를 붙이고 앉은 뜨끈한 부뚜막이 새삼 생각나는 건 그 시절이 마냥 힘들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택한 지금의 세대가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사람 사는 냄새가 당시는 분명히 있었다. 가난했지만 사람이 부대끼면서 느끼던 그 원색의 냄새 말이다.

지붕을 이우며 걷어낸 지푸라기를 아궁이에서 태우던 그때 그 연기를 다시 한번 맡아보고 싶다. 그래서 여과 없이 투영된 지난날의 파노라마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되돌려 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세월은 자꾸 흘러가는가 보다.


‘그때 아버지는 말이야, 그렇게 살았지!’

‘애야, 할아버지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단다!’


한물간 이야기에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아도 무방하다. 아니 두 물간 꼰대 아버지면 어떻고, 세 물간 꼰대 할아버지면 또 어떤가? 적어도 기억 속의 나는 들어줄 테니까! 그것이 비록 내 혼자만 중얼거리는 비루한 독백이 될지라도 말이다.

눈깔사탕을 나누어 주시던 그 인자한 복연이 할매가 새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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