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먹는 빵
급식의 추억
발동선이 보였다. 버섬(우도) 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뒤로 새긴 물거품이 잘게 부서지면서 기다랗게 잔파도를 일으켰다. 시간에 맞춰 적당히 부두로 나왔다.
쉬엄쉬엄 학교에서 걸어도 5분 거리였다. 오늘처럼 미리 나온 날은 배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어떤 날은 배가 먼저 와서 급식 박스를 풀어놓고 갈 때도 있었다. 날씨에 따라 발동선 도착시간이 들쑥날쑥해 좀처럼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
속천항에서 출발한 배는 첫 기착지인 버섬에 먼저 들렀다. 그곳에 짐을 내려주고 이곳을 거쳐 마지막 종착지인 연도를 향해 떠났다.
세 곳의 낙도 학교에 급식을 제공하는 발동선이었다. 1t이 채 될까 말까? 엔진 소리만 요란했지,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도 도착하려면 한참이 걸렸다.
이럴 때는 물수제비를 쳤다. 작고 얇은 돌을 골라 수면 위로 날리면 십수 번도 더 물을 치고 나갔다. 그것을 일일이 세느라 눈알이 붉었다. 아니면 뭍으로 끌어올린 빈 배에 올라 하릴없는 이야기로 배를 기다렸다.
주로 6학년 남학생 2명이 조를 이루어 급식 박스를 학교로 날랐다.
어떨 때는 서너 개씩 힘들게 나르는 일도 있었다. 비바람이 심한 날은 급식선이 오지 못했다. 그래서 밀린 것까지 한꺼번에 내려주고 갔기 때문이다.
갑자기 불어난 짐을 낑낑대고 나르다 보면 하늘이 노랬다. 더 많은 인원이 나와야 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한 학년이라고 해봐야 10명 넘기기 힘들었고 남학생도 많아야 서너 명에 불과했다. 그렇다 보니 도와줄 인원이 마땅치 않았다.
이렇게 힘들어도 밀린 빵을 한꺼 번에 받는 날은 기분이 최고였다. 귀밑까지 벌어진 입으로 서너 개씩 받은 빵을 꾸역꾸역 밀어 넣다 보면 더러는 가래가 걸리기도 했다. 캑캑거리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녀석을 보며 아이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급식 빵은 옥수수와 밀가루를 섞어서 만들었다고 했다. 이것을 선생님은 소 빵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아이들은 처음에 소가 먹는 빵을 사람이 어떻게 먹지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보들보들한 속살도 맛있었지만 거무스레하게 구워진 빵 껍질은 고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이들은 급식을 받으면 먼저 여기부터 떼어먹느라 허겁지겁했다.
큰 성냥갑만 한 급식 빵은 전교생에게 골고루 지급되었다.
학교와 집이 가까웠으므로 급식 빵은 집으로 가지고 가는 때가 더 많았다. 징징거리고 놀던 코흘리개 동생도 이 시간을 즐겁게 기다렸다가 같이 먹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드물게 우유를 끓이는 날도 있었다. 학교 소사 아저씨가 선생님 사택 앞에 큰 솥을 걸고 장작에 불을 붙였다. 이런 날은 구수한 우유 냄새가 온 학교에 진동했다.
뜨끈한 우유를 한 컵씩 받아 들고 빵과 함께 먹으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다. 키도 쑥쑥 크는 것 같고 살도 떵 실 떵 실 찌는 것 같았다. 요즘으로 치면 학교 무료 급식인 셈이다.
전교 조례 때마다 교장 선생님은 낙도 어린이들의 사정을 생각하여 나라에서 보내준 고마운 선물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면서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들으나 마나 한 소리를 맨날 반복했다. 영문도 모르는 섬 아이들은 그저 감지덕지했다.
학교에서 끓여준 우유는 가끔 삼재가 위세 떨던 우유보다 훨씬 맛있었다. 이때만큼 삼재도 기가 죽었다.
눈치 빠른 녀석들은 소사 아저씨의 설거지를 솔선수범해서 거들었다. 그러면서 틈만 나면 솥단지를 박박 긁었다. 주걱 끝에 묻어 나온 우유 누룽지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주걱을 핥으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아이들은 입맛만 쩍쩍 다셨다.
그때까지 솥단지를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이 별반 소득이 없자 하나둘 자리를 떴다.
소사 아저씨가 솥을 헹군다고 물이 가득 담긴 바가지를 홱 찌꺼렸다. 너무 세게 팽겼는지 솥단지를 따라 팽그르르 돌던 물이 한쪽으로 튕겨 나갔다. 난데없이 쏟아진 물이 시무룩하게 돌아서던 아이들을 한꺼번에 덮쳤다. 소사 아저씨가 미안했는지 머쓱하게 웃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녀석들이 누룽지는 고사하고 구정물만 뒤집어썼다. 피한다고 디딘 땅바닥에서 고인 물이 또 튀었다. 이래저래 물벼락만 실컷 맞았다.
아이들의 젖은 눈가에 베츄니아 꽃이 어지러웠다. 돌담에 기댄 분꽃 이파리가 다발 지어 하늘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