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레 치기

메타세쿼이아의 낮달

by 강쌍용



우레 치기




운동장 가장자리에서 일은 흙바람이 삽시간에 아이들을 덮쳤다. 바람을 등지고 돌아선 아이들이 소매로 코와 입을 막았다. 누런 콧물이 말라붙은 소매 끝동이 인중을 할퀴었다.

바람이 쓸어간 희뿌연 먼지가 운동장 울타리로 둘러선 측백나무를 하얗게 분칠 했다. 쓸린 먼지는 방금까지 우레 치기를 위해 그어놓은 선을 몽땅 지워버렸다. 대신 아이들 손등같이 쩍쩍 갈라진 맨땅의 실금이 미끈하게 드러났다. 갈라진 틈을 비집은 볕이 작은 그늘을 지워 패인 금이 더욱 선명했다. 학교 뒤뜰 메타세쿼이아 가지 끝에 벌써 낮달이 걸렸다.



수시로 닥치는 불청객 때문에 아이들의 놀이는 자주 끊기고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바람에 넘어진 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지워진 선을 다시 그었다. 하도 땅이 야물어 선을 긋는 데 애를 먹었다. 편을 먹은 아이들은 상대가 선을 잘못 긋기라도 하면 눈을 부라리고 대들었다.

다른 놀이 문화가 유별나게 있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웃음기 섞인 다툼도 어찌 보면 재미난 놀이 일부가 되었다.

얼추 열 보 간격을 두고 양쪽으로 길게 선을 그었다. 한쪽에는 출발선이 되고 맞은편 선에는 표적 돌을 세웠다. 그 표적을 먼저 쓰러뜨리는 편이 이기는 놀이였다.

표적 돌은 바닥이 넓고 실한 돌을 세웠다. 그래야 웬만한 충격에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런 돌을 고르느라 꽤 신경을 썼다.

단순하지만 거리에 대한 눈대중과 목표물을 맞힐 수 있는 정확성이 있어야 했다.

한 번에 표적을 쓰러뜨리면 최상이지만 먼 거리에 있는 목표물을 맞히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적당한 지점에 공격 돌을 두고 조금씩 표적에 접근해 갔다. 이를 집기 위해 두세 보를 뛰어야 하는데 반드시 깨 망을 짚어야 했다. 표적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무리하게 던졌다가 걸음이 미치지 못해 돌을 집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발로 깨 망을 힘차게 디뎌 돌을 집을 때에도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되면 공격권을 상대에게 넘겨주었다. 더구나 표적을 맞출 때까지 한 발로 서 있어야 하니 웬만한 힘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었다. 상대방은 녀석을 넘어뜨리려고 온갖 말로 웃기며 집중을 방해했다.



바닷물이 저만치 밀려나면 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돌을 줍느라 자갈밭에 엎드렸다. 주운 돌을 잔뜩 넣은 호주머니가 산만큼 배가 불렀다.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잡고 어거정 거리며 걷는 모습이 제법 볼만 했다. 더러는 호주머니가 찢어지는 바람에 돌을 쏟기도 했다.

돌의 무게 때문에 집으로 가져가지 못한 아이들은 자기만 아는 곳에 숨겨두었다. 그러면 이것을 눈썰미 있게 본 녀석이 슬쩍하기도 했다.

우뢰 치기를 시작하면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이 출처 불명의 돌 때문이었다. 서로 제 것이라고 우기는 녀석들이 그럴싸한 시비를 벌이면 놀이는 뒷전인 채 싸움 구경하기에 바빴다.

제 것이라도 다시 돌려받기가 쉽지 않았다. 반반한 돌이 어디 그뿐이던가? 입증하기 어려우니 억울해도 하는 수 없었다. 간혹 같이 돌을 주웠던 아이를 우군으로 청해 보지만 제돌 줍기에 바빴던 녀석은 뒷일을 염려해서인지 시치미를 뗐다.

어떤 녀석은 크레용으로 표시를 하지만, 칠이야 벗겨지면 그만이었다. 더 영악한 녀석은 아버지 몰래 배에 칠하고 남은 페인트로 표시해 두기도 했다. 그러나 흔한 게 돌이라 관심이 시들해지면 그것도 별 의미가 없었다.



출발선에서 표적을 향해 일거에 투척하는 대범한 아이들은 언제나 인기가 있었다. 던져서 쓰러뜨리기도 했지만, 땅바닥을 타고 미끄러지듯 돌진해서 부딪히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었다.

이때는 울퉁불퉁 솟아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느라 꽤 신경을 썼다.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쓸고 그것도 모자라 입으로 먼지를 불었다. 쏜살같이 나아가야 하니 공격 돌은 당연히 면이 넓고 평평할 수밖에 없었다. 들기도 버거운 녀석들은 던지는데 애를 먹었다.

꽝~! 하고 표적을 명중시키는 찰나는 호쾌하고 장엄했다. 튕기는 불꽃은 마치 천둥이 일거에 바위산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기상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놀이를 우레 치기라 불렀다.

상대의 기선을 제압한 녀석은 의기양양하게 사기가 올랐다. 겨울 찬바람에 열어젖힌 웃통이 아무리 펄럭여도 추운 줄 몰랐다. 기가 죽은 아이들은 괜히 제 돌을 탓하며 혼자 구시렁거렸다.

돌 임자를 두고 시비가 붙었던 녀석은 결국 앙금을 드러냈다. 깨 망을 딛고 가더니 그 돌을 기어이 박살 내버렸다. 슬쩍 건드려도 넘어갈 것을 온 힘을 다해 두들겼으니 산산이 깨질 수밖에!

이기나 지나 그만인 놀이지만 굳이 이기겠다고 사활을 건 녀석들은 트집을 잡거나 땡깡(생떼)을 부렸다. 그것을 감당하기 버거운 녀석은 함께 핏대를 세우기보다 못 이긴 척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럴싸한 핑계로 자리를 떠서 다른 곳을 또 기웃거렸다.

군데군데 벌어지는 우레 치기에 돌이 부딪치는 소리와 아이들 억 부 소리가 미금(먼지) 이는 운동장에 한동안 요란했다.



놀이가 시들해질 즈음이면 낮달이 더욱더 선명히 모습을 드러냈다. 음~ 바 쪽에서 날아든 산까치가 마른 가지에 앉은 위로 어느새 땅거미가 내렸다.

미금(먼지)이 한차례 더 몰아쳤다. 운동장에 남아있던 몇 안 되는 아이들이 주섬주섬 돌을 거두었다. 악다구니를 쓰던 아이들의 여운도 조용히 어둠 속에 묻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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