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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Apr 30. 2024

자전거

개화기의 조상들은 바다 건너 전에 보지 못한 물건이 기구가 들어오면 이의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부모가 아이의 이름을 짓기 위해 국어사전 한자사전 등을 펼치고 며칠이고 고민에 시달리게 되는 것처럼, 꽤나 신경을 썼던 게 분명하다. 자전거를 처음 본 그들이 받았을 인상은 어땠을까? 자전거의 어떤 면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을까? 오래도록 남은 이미지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일단 두 개의 바퀴가 첫인상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영어의 Bicycle은 두 개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 bi에 회전을 뜻하는 cycle이 결합된 낱말이다. 두 개의 바퀴를 가진 탈 것. 하지만 최초의 자전거는 두 개의 바퀴를 달았음에도 페달이 아닌, 발로 땅을 박차면서 전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라우프마쉰Laufmaschine이라 했다. 독일어 Lauf는 달리기라는 뜻이다. 자전거에 두 개의 바퀴가 정착되기 이전의 자전거는 프랑스에서 벨로시피드velocipede라 불렀다. 벨로스Veloce는 빠르다, 피에pied는 발이라는 뜻이다. 독일어와 프랑스어의 작명이 자전거의 살짝  다른 면을 강조하고 있는 듯한데, 이를 각 나라 사람의 기질이라 해도 될는지는 모르겠다. 


개화기의 사진 자료들을 살펴보면 당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온 자전거는 페달로 같은 크기의 두 바퀴를 굴리는 작동 형태를 갖추고 있다. 달리 말해 영어에서 bicycle이라는 단어가 정착된 1880년대 이후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물건을 보고 처음으로 무엇을 떠올렸을까? 일단 두 개의 바퀴는 아닐 것이다. 그들이 자전거의 영어 뜻을 알았든 아니든 상관 없이 바퀴의 개수는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자전거의 작동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졌다. 자체동력으로 달린다는 뜻의 자행自行을 그 이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수레 車를 거라고 발음하든, 차로 발음하든 그래서 자행거라 부르든 자행차라 하든 이는 별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자행은 뒤에 무엇이 오든 자신의 자리를 굳게 정했으니 말이다. 참고로 1899년 7월13일자  『독립신문』에 실린 광고글을 보면 “우리 상점에서 미국에 기별하여 지금 여러 가지 자행거가 나왔는데 값이 저렴하오니 없어지기 전에 많이 사 가심을 바라오며…” 하지만 10년도 지나지 않아 자행거는 자전거로 대체되었는데 그 까닭을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간다는 뜻의 행行보다는 구른다는 뜻의 전轉이 자전거의 메커니즘에 더 걸맞았다 여겼을 것이고, 자행거보다는 자전거의 발음이 더 편하고 빠르기 때문이 아니었나 짐작해본다. 또한 자전차가 아니라 자전거가 사람들의 말과 글에 선택을 받은 건 자전거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전차電車와 발음이 겹치는 걸 피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중국어로는 자행거라고 표기해서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단지 車의 발음이 [chē]인데 묘하게도 우리식 발음인 거와 차의 중간에 있는 듯한 점이 흥미롭다. 우리말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은 은륜銀輪은 자행거를 대신하는 낱말이기도 하다. 우리말 사전에도 은륜은 등장한다.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은으로 된 바퀴를 뜻한다. 자전거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도 있다. 하지만 은륜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단어다. 동남아를 침략한 일본 육군을 은륜부대라 칭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말에서는 흔히 사용하지 않는가 싶다. 단어가 아름다우려면 이를 지칭하는 사람과 지칭받는 대상이 다같이 아름다워야 한다. 대만에서는 다리 각, 밟을 답을 써서 각답차腳踏車라고 부른다. 일본어도 자전거는 자전거다. 지텐샤라 발음한다. 다른 낱말로는 챠리ちゃり, 챠링코チャリンコ가 있다. 우리말의 따릉이와 정확히 대응하는 의성어다. 챠링코가 자전거가 된 여러 설이 있지만 의성어라는 데 적극 동의하는 건 ‘링’ 때문이다. 따릉이의 릉, 챠링코의 링, 영어의 ring도 모두 벨이 울리는 소리를 문자로 나타낸 의성어다. 여기에 [ㄹ] 또는 [r]은 굴러가거나 흘러가는 음성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걸 덧붙이고 싶다. 따르릉, 챠리링, 링링링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자전거는 데굴데굴, 고로고로ごろごろ, 롤롤roll roll 거리며 잘도 굴러간다. 자전거 얘길 한참 했더니 따릉이 빌려서 가까운 성북천이라도 달리고픈 심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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