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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을 노래하다

by 박정훈

노래는 과연 무엇을 노래할까? 노랫말의 대상이랄까 아님 주제라 하면 이 세상의 어느 것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아왔을까. 바로 떠오르는 건 남녀간의 사랑, 더 넓게는 화자 자신의 감정일 수도 있겠으나 잘 알려져 있는 노랫말 몇 곡만 꼽아봐도 제대로 된 답이 금새 나온다. 시간, 혹은 시절.


주제나 대상이 되려면 보편성과 특수성, 일반성과 개별성을 겸비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여기에 변화에 대한 민감함이라는 토대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의 변화란 무한정한 바뀜이나 달라짐을 뜻하지 않는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음으로 인한 불안을 안고 사는 우리 인간은 그러한 변화를 달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예측성이라는 틀이 필요하다. 잡을 수 없이 그저 바뀌고 흘러만 가는 게 시時라면 여기에 틈을 벌려 마디를 낸 게 간間, 그리고 절節이다. 보편과 특수, 일반과 개별이라는 대비적 속성이 시詩 혹은 노랫말이라는 한 지붕을 이고 있듯이 시간과 시절 또한 흐름의 순환, 또는 순환적 흐름이라는 자연의 규칙 안에 더불어 존재한다. 가사란 바로 이러한 섭리를 담아내는 언어의 그릇이다.


시, 가사, 노랫말의 이러한 성격을 가장 잘 품고 있는 단어를 들라면 바로 시조時調다. 문학 장르로서의 시조는 “고려 말기부터 발달해 조선 시대에 확립된 온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를 뜻하지만, 글자로만 풀어보면 시간, 시대, 시절을 읊은 곡조라는 뜻이 된다. 조調가 지닌 여러 뜻풀이 중에서 시조에 가장 어울리는 짝은 가락, 음률, 곡조일 것이나 헤아림과 살핌, 취향과 운치라는 뜻을 넣으면 그 뜻이 더욱더 풍부해진다.


노래를 부르는 것과 노랫말을 읊는 것은 별개가 아니다. 그러니 노래하다, 라는 동사는 흘러가는 시간을 그저 지나쳐 보내지 않고 마음을 두어 헤아리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를 시절을 즐기는 멋, 즉 풍취라 한다. 풍취는 풍류를 즐길 줄 안다는 뜻이다. 풍류風流란 별거 아니다. 바람의 흐름을, 그 오고 감을, 들고 남을 온몸으로 살피는 일이다. 이는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갑작스런 깨달음, 즉 돈오頓悟와도 같아서 이성이나 사고의 막을 거칠 새가 없다. 바람이 불어오면 몸은 그 기운의 온도와 습도, 세기와 방향을 총체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단박에 바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알아듣는다. 바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시간과 시절의 변화를, 그 변화 속의 너와 나를 주제로 삼는다. 그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월 따라 흐르는 너와 내가 곧 세월이기에 시조는 곧 우리 자신의 노래가 된다. 바람을 맞는 우리 자신이 바로 바람이듯이, 폴 사이먼의 노랫말처럼.


유월이 오면 그녀는 자신의 곡조를 그 달에 맞추리

June, she will change her t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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