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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그릿 박종숙 Apr 01. 2024

엄마의 바다 그리고 딸의 바다

드림그릿

누군가 카톡 방에 바닷가 영상을 올려놓았다. 다른 날 같으면 그냥 지나가겠지만 오늘은 영상을 열어 파도 소리와 출렁이는 파도를 넋 넣고 보았다.  어릴 때 바다는 내게 고향이었다. 그러나 30대가 되면서 나는 바다보다는 산이 좋았다. 바다의 포근함과 무한함보다는 내가 정복해야 할 산, 그 위에 올랐을 때 느끼는 희열은 바다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때 내가 느꼈을 바다는 쓸쓸함이었다. 그런데 다시 바다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탁 트인 바다가 주는 자유, 생명력이 나를 쉬게 해 준다.


다시 바다를 찾은 것은 마음의 병이 나면서부터다. 요즘 난 현대인이 자주 겪는 몹쓸 병에 걸렸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난다. 착한 병에 걸려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싶어 한다. 일을 하다 보니 뭔가 과부하에 걸렸지만,  할만하니까 했을 것이고, 하기로 선택한 이상 난 이일을 잘 마칠 것이다. 그러나 내려놓아야 한다면 잠시 쉬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내려놓으면 된다. 다만 이 평범한 진리가 쉽게 내 삶에 녹아들지 못해 힘들어한다.


나의 고향은 강릉이다. 태어난 곳은 그 당시 경찰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근무지에 따라 횡성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강릉은 부모님의 고향이자 나의 고향이 되었다. 강릉은 가까이에 바닷가가 있어 산보다는 바다와 더 어울린다. 드넓은 바다를 보면 마음이 편안했다. 바다가 주는 경이로움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보냈던 추억이 있는 곳이라 더욱 그랬다. 정말 바다를 좋아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바다는 쉽게 다다를 수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계실 때에는 주말에 강릉에 내려갔었다. 이제 두 분은 파란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리고 난 도시에 있는 사람과 결혼했다. 남편은 내가 보냈던 바다의 시간을 잘 모른다. 그저 도시의 인간으로 생계를 위해 열심히 달리다 건강이 안 좋아져 이제 거실에 앉아 TV를 시청하는 일이 많아졌다. 딸에게 보여준 바다는 할머니와 엄마의 이야기뿐이었다. 그러다 딸이 중3 때 학교친구들과 제주도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바다의 출렁임을 보았다고 말했다. 딸이 보내준 문자에 고마운 마음으로 적어 본 글이다.


출렁이는 파도, 반짝이는 모래사장을 달려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밀려오는 파도에 쫓고 쫓기듯 어린애처럼 즐거워한다. 아버지 자전거의 뒷좌석에 앉아 아침 바다를 보러 갔던 그 눈부신 날. 엄마와 걸었던 바닷가 모래사장, 바다는 내게 엄마였다. 어른이 되어 서울로 왔고, 어느새 나는 바다를 잊고 지냈다. 이제 부모님은 이 세상에 안 계신다. 내가 잊고 산만큼 딸은 중학생이 되도록 바다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딸은 학교 친구들과 처음 바다를 보러 갔다.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딸은 엄마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엄마! 지금 바다에 왔어……. 사랑해” 촉촉한 딸의 글에 눈물이 났다. 바다는 우리 모녀를 안아주었다. “나도 사랑해.”



도시의 인간으로 산 동안 내가 쉼을 얻었던 곳은 산이었다. 드넓은 바다와 다르게 산은 열심히 올라가면 정복할 수 있었고, 바다 내음이 주는 비릿함보다는 푸르른 자연이 주는 시원한 솔향기 냄새가 좋았다. 그렇게 멀어져 있던 바다를 다시 그리워하게 된 것은 바다가 가르쳐 주었던 너그러움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돌아가신 엄마 품이 그리워진다.


일상의 반복과 무한한 열심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나보다. 분명 성장하고 있었고 손에 잡히는 듯하기도 했다. 그러다 질식할 것처럼 짓눌린 불안의 깊이를 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가 없다. 수치가 너무 높아져서 조절할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러다 지인이 올린 바다를 보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바다를 보고 싶었지만 내 몸은 도시를 떠나지 못했다. 훌쩍 떠날 용기조차 없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 화가 났다.



누군가 보내준 바다를 담은 사진과 동영상을  해(海)멍하듯 바라보았더니 막혔던 가슴이 탁 트였다. 바다가 주는 자유함이 내 안에 갇혀 징징거리고 있는 나를 끌어내어 다양한 관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예전에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났다. 조르바는 기대도 걱정도 없이 현재에 삶에 집중하며 단순하고 소박한 그런 매혹적인 삶을 살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이 책의 저자인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 쓰인 글이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남긴 그의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만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놓을 수가 없다. 항상 무언가를 바라고 갖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결국 나를 내 안에 가두는 것은 아닐까. 나를 아는 지인들은 내게 "이제 좀 쉬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다 보니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착하고 성실한 것도 좋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 떨어진다. 결국 내 삶에 충실할 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으니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사람을 착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도 나를 속박하는 것도 나이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나는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무한 용량을 가지지 못한 나는 조금씩 관계 속에서 다시 빈틈이 생긴다. 사람들의 관계에서 진정성이 부족해진다. 친구는 뼈아픈 조언을 했다. "너의 애씀이 어쩌면 자존감이 낮아서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인 것 같아" 그 말이 맞을 수 있다.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은 친구들을 보면 약간 화가 났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은 상했다. "나를 왜 이해 안 해주지! 난 최선을 다했어"


바다는 우리의 시선을 저 너머에 둘 수 있도록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 준다.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도 무한한 인생을 산다고 착각하며 반복된 하루를 비장하게 시작할 뿐이다. "이렇게 살면 안 돼. 정신 차려. 이 경주선에서 뒤처지면 안 돼"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새벽몰입독서로 줌을 켜서 세종 굿짹방 모임까지 새벽의 2시간은 도약의 시간이지만 그리 잘 보내지는 못한다. 늦게 자니 새벽시간이 점점 고역이다. 겨우 졸린 눈으로 책을 읽기도 하고, 잠이 깨서 집중하려 하면 딸의 등교 준비를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니 늘 피곤하다.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다. 한 달 새벽 기상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약간 익숙해진 사람들에 대한 몹쓸 예의와 그냥 멈출 수가 없어서 지속하고 있다. 벌이기만 하고 끊지를 못한다.


이럴 때 자기 자신을 벗어나 탈주를 꿈꾸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데 난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생각조차도 내겐 큰 변화다. 작은 우물 안 시선에서 벗어나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자. 무한한 바다에 잠시 나를 던져보자. 바다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유가 넘치는 곳이 아니던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둘째 날에는 궁창에 있는 물을 위와 아래로 가르셨으며, 궁창을 하늘이라고 부르셨다. 셋째 날 하늘 아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바다라고 부르셨다"라고 한다. 

바다의 수량은 가늠할 수조차 없다. 바다는 유동하고 출렁거리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바다의 시간은 저 너머의 시간이다. 


지난번 친구가 환갑 기념으로 강릉 바닷가에 갔다고 한다. 지역 행사가 있어 어렵게 호텔을 잡게 되었는데 그게 신의 한 수였다고 한다. 호텔방에서 바라보이는 바닷가의 전경과 밀려오는 바다의 출렁거림이 그녀의 마음을 만져주었다. "너 정말 잘 살아왔어" 바다의 소리를 들은 그녀는가 그 포근함에 지난날의 모든 아픔과 시름들이 해소되는 것 같아 너무 행복했다며 들뜬 친구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떨림이 내게도  나도 모르게 바다를 더욱 그리워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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