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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그릿 박종숙 Apr 05. 2024

축하받을 일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직장 동료를 만났다. 그녀는 조용한 이미지라 간혹 복도에서 뵈면 반가운 눈인사 정도였다.  오늘은 그녀가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이번에 공로연수를 들어가세요?"라고 묻는다.

나는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축하드립니다. 정말 축하드려요"라고 진심으로 인사해 주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과 관심에 기분이 묘했다. 아니 기분이 참 좋았다.

오랜 공직생활을 잘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축하받을 일인데, 늙어서 퇴출되는 인간처럼 요즘 위축되어 있었다. 직장에서 좋은 이미지로 잘 마무리하고 싶어 조심조심 생활해오고 있다. 특히 직장 생활에서 업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이다. 감사하게도 곱이곱이 어려움 없이 잘 지내온 것 같은데 막상 말년을 앞두고 직장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과장님도 바뀌고 민감한 업무로 인해 예민해진 과 분위기 때문인지 직원들은 지쳐 보이고 분위기는 고조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우연히 만난 그녀의 축하 인사가 내게 신선했다. 내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지듯 그날 하루는 온전히 행복하게 보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니….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 그런지 스치는 모든 공간과 사람들이 소중해 보인다. 정부세종청사에는 많은 부처들이 모여있다. 정사각형 빌딩 건물이 아닌 구불구불한 건물이 길게 늘어져 약간 비효율적이다. 동선도 길어 이동시간이 소요되어 불편하지만, 지금은 이곳이 마음에 든다. 정말 인간친화적인 건물인 것 같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언제든지 청사 내를 걸으며 창문을 통해 보이는 하늘과 자연을 바라볼 수 있다. 머리가 복잡해질 때 긴긴 복도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1동까지 다녀온다.  어느새 몸과 마음도 촉촉이 젖어서 회복되었다. 

올 상반기에 우리 과에서 두 명이 떠난다. 나는 공로연수로, 또 한 사람은 남편을 따라 미국 유학을 떠난다. 젊고 일을 잘하는 직원이라 그런지 왠지 과 분위기는 그녀의 떠남을 더 아쉬워하는 것 같다.  떠남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왠지 어른답지 못하게 그들의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말에 마음이 상할 때가 있다.

지난번 어떤 직원과 약간의 마찰이 생겼다. 업무 문의 전화가 왔는데 그 직원이 잘 알 것 같아 전화를 돌렸더니 그 일로 버럭 화를 내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데 자기 시간을 뺏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바쁜 상황은 이해하지만 그렇게 화를 낼 정도인가 싶었지만 더 이상 변명은 하지 않았다. 그날은 그녀의 생일파티가 있어 난 그 케이크를 사기 위해 멀리 나갔다 왔다. 오후에 직원들과 그녀의 생일파티를 잘 치르고 달달한 케이크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잠시 직원들이 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파티가 끝나고 쓰레기를 버리려 나가다가 복도에서 그녀가 누군가에 말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까 전화를 돌려준 일로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다가가 아까 일로 그런지 물었더니, 내게 냉정하게 "됐어요" 하고 휙 나가버린다. 다른 직원이 있는 앞에서 무안을 준 것이다. 전화 돌려준 일이 그리 큰 죄를 지은 것일까!! 그런데 다음날 그녀는 내게 웃으며 인사를 해왔다. 어제 일은 다 잊은 듯이….

요즘 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축하 인사가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정말 맞다. 축하받을 일이다. 난 분명히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 과 직원이 내게 해준 말이 있다. "이제 나이도 있으시고 곧 떠나실 텐데 남 눈치 보지 마시고 마음대로 좀 사세요" 직장 생활 동안 눈칫밥만 늘었다. 인정한다. 나이 들면 웬만한 일에도 담대해질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조바심이 나고 눈치도 보인다. 언어 사용도 조심스럽다. 난 외향형이 아닌 내향형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스트레스를 그냥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스트레스가 심하다 보니 역류성식도염이 도졌다. 지난번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수영장에 가서 중얼거리면서 걷기를 1시간 가까이했더니 좋아졌다. 

직장에서 내 모습은 탁월한 직원은 아닐지라도 맡겨진 일에 성실했고 모나지 않게 일을 처리해 왔다. 직장에서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좋은 크리스천들을 만나 멋지고 신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건 내 인생의 축복이다. 또한 일은 우리 가정의 생계를 해결해 주었다. 남편이 쉬는 동안 나는 가정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다.


이제 축복과 같은 직장을 잘 마무리하고 이제 은퇴 후에 어떻게 살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다. 그동안 계속 준비를 해왔으니 그리 두렵지는 않다. 쉬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러려면 일단 건강을 챙겨야겠다. 나중에 웃는 자가 승리자이지 않을까! 끝까지 유쾌한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꾸준히 책 읽고 글쓰기를 통해 나를 성장시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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