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세먼지

by Lucasjang

우리는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창문을 열면 뿌연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마스크를 챙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결국 가방 안주머니에 하나쯤 구겨 넣고 집을 나선다.

이게 요즘 우리의 아침이다.


미세먼지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꾸 누군가를 탓하게 된다.

중국이 문제다, 정부가 무능하다, 기업들이 이기적이다.

그런데 이 싸움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지쳐서 그냥 체념하게 된다.


"뭘 해도 안 되는구나."


그런데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 정부도, 기업도, 시민도 — 각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걸까?

우리는 빨리 달리는 법만 배웠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은 대나무 매를 들고 계셨다.

질문하면 수업 분위기를 흐린다고 혼났고, 답은 외워야 했다.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군대에 가면 또 그랬다.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움직여라. 빠르게, 정확하게.


그 시스템은 전쟁과 가난을 넘어서는 데 놀라울 만큼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효과적이라는 이면 아래 숨어있는 어둠을 마주한 이 문제는 다르다.


미세먼지는 오늘 내가 뿌린 게 내일 내 폐로 들어오는 문제가 아니다.

십 년 전 공장에서 배출된 것들이 지금 우리 아이들 기관지를 괴롭힌다. 이번에 출산을 하게될 친구의 아들에게 무슨말을 해줄수 있을지 마음이 무겁다.


빨리 달리기만 잘하는 사람에게 "천천히, 멀리 봐가며 가자"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건 무능이 아니라 훈련받지 못한 근육을 쓰는 일이다.

아프고, 서툴고, 불안하다. 우리 사회가 지금 그렇다.


경쟁은 어떻게 불신이 되었나

한국 사람들은 경쟁에 익숙하다. 그런데 그 경쟁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보면, 뿌리는 이기심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야 가족이 산다. 우리가 살아야 마을이 산다." 그게 시작이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범위가 점점 좁아졌다는 거다.

우리 편 아니면 적. 우리 당 아니면 저쪽 당. 그렇게 집단은 생존 도구에서 이익 확보 수단으로 변했다.


미세먼지 대책 회의에서도 이게 보인다. 환경부는 산업부를 원망하고,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를 탓하고, 기업은 규제를 피하려 하고, 시민은 정부를 불신한다.

다들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그냥 자기가 속한 집단을 지키려는 거다.

서로를 믿지 못하니까, 결국 돌고 도는 원망은 아무것도 함께 만들어내지 못한다.


누구의 잘못인지 찾다가 지쳐버린 사람들

미세먼지 기사를 보면 항상 이렇다. "중국발 스모그 유입", "정부 대책 미흡", "시민 인식 부족".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들을 백 번 들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왜냐하면 책임이 너무 많이 쪼개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에게 항의하려면 외교부가 움직여야 하고, 외교부가 움직이려면 청와대 결정이 필요하고, 청와대가 결정하려면 여론이 있어야 하고, 여론이 형성되려면 언론이 다뤄야 하고… 이 복잡한 고리 속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지?'라는 질문은 무력감으로 바뀐다.


우리와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일본은 왜 대기질이 좋으까? 이유는 60년대 미나마타병 욧카이치 천식 이타이이타이병 같은 공해 참사로 인한 판결 결과다. 환경 이슈가 아니라 대규모 산업 살인에 가까웠고 법원 판결을 통해 “기업과 국가의 책임”이 공식 인정된다. 중요한 건 이 시점에서 일본은 공해를 성장의 부작용으로 정당화하지 않고 국가적 실패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미 방향이 갈린다.


지금의 저널리즘은 이 복잡함을 풀어주기보다, 분노만 자극한다. 클릭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걸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계속 화만 나고 방법은 안 보이면, 사람들은 지쳐서 꺼진다. "그래, 나 하나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미워할 이유가 없다


나는 요즘 산책을 자주 한다. 뭔가 답답할 때 걷는다.

어느 날 저녁, 마스크를 쓴 엄마가 유모차를 밀며 지나가고 아이는 투명한 비닐 덮개 안에서 천사처럼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저 엄마도, 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도,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님도, 다 똑같은 하늘 아래 숨 쉰다. 아무도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게 아니다. 그냥 우리가 배운 방식이 지금은 안 맞을 뿐이다.


한국은 빠르게 달려서 여기까지 왔다. 그 속도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방향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빨리가 아니라 함께. 이기는 게 아니라 지키는 쪽으로.


이 글은 해답을 주려고 쓴 게 아니다. 다만 이걸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지금 피곤한 이유는, 우리가 나빠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탓할 대상 대신 함께 고칠 구조가 보인다는 것.


미세먼지는 환경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그리고 나는 아직, 우리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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