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켰던 노래 방패와 침묵의 품격
쨍그랑, 소리가 흩어지기도 전에 거대한 청소기가 세상의 소음들을 죄다 집어삼킨 것 같았다. 남겨진 건 내 눈앞에 정신없이 흩어져 있는 유리 조각들의 날카로운 반짝임뿐이었다. 그날의 서늘한 감각은 피부가 기억한다. 그것이 내 인생 첫 번째 거짓말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한 살 차이 나는 동네 언니, 오빠와 놀이터에서 놀다 오빠네 집으로 갔다. 셋이서 할 수 있는 놀이를 찾던 중 오빠가 유리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오빠는 별안간 얼굴을 유리문에 대고 꾹 짓누르기 시작했다. 유리에 비친 오빠 얼굴은 눈코입이 다 뭉개져서 괴물 같았다. 언니와 내가 비명 같은 웃음을 터뜨리자 오빠는 코를 더 납작하게 뭉개서 돼지코를 만들었다. 오빠의 콧바람에 유리문에 뿌연 김이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살아 있는 돼지 같았다. 우리가 깔깔거릴수록 오빠의 얼굴은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한참 뒤 문을 열고 들어온 오빠가 말했다.
"누가 제일 웃기나 시합하자."
언니는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는지 당당하게 먼저 나갔다. 예쁘장하던 언니의 얼굴이 유리에 닿아 우스꽝스럽게 변하자 오빠는 배를 잡고 굴렀다. 언니는 돼지코를 했던 오빠에게 지지 않으려고 입술을 위아래로 눌러 두껍게 만들었다. 입김 때문에 치아가 그림자처럼 비치니 하마 같았다. 나랑 오빠는 신나게 웃었다.
하지만 언니의 차례가 끝나갈 무렵부터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이런 장난을 하고 싶지 않았다. 못생겨진 내 모습을 보여주는 건 정말이지 싫었다. 개구쟁이 장난을 즐기는 언니 오빠와는 다르게 나는 동네 모범생인데. 망가지는 모습이라니, 아무리 우리 셋뿐이라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언니가 들어왔고, 둘은 이제 내 차례라며 빨리 나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고개를 저었지만 소용없었다. 셋이서 잘 놀고 있는데 나만 빠지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미적거리며 일어나 현관문을 나섰다.
문을 닫았다. 유리에 비친 언니 오빠의 모습이 흐릿했다. "준비됐어? 시작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야 한다는 생각과 하기 싫은 마음이 뒤섞였다. 어찌할지 모르겠어서 차마 얼굴을 대지 못하고 몸만 왔다 갔다 하는데, 안에서 들려오는 재촉에 초조해졌다. 다 웃고 나서 나만 쏙 빠지는 것도 치사한 것 같고, 그렇다고 내가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하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이대로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이 발가락부터 올라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발로 유리문을 쿵 차버렸다.
단단해 보이던 유리문이 깨진 건 한순간이었다. 쨍그랑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반짝이는 유리 파편들이 거실 안쪽까지 흩뿌려져 있었다. 문이 사라진 틈으로 밖의 찬 바람이 훅 끼쳐 들어왔다. 차가웠다. 아니 시렸다. 아니 무서웠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기분이었다.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이 꼿꼿이 서는 것 같았다.
이게 현실일 리 없었다. 나는 이런 큰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여서는 안 됐다. 눈앞의 광경이 마치 TV 화면 같았다. 발이 바닥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움직이는 건 눈동자뿐이었다. 흩뿌려진 조각들이 크리스털처럼 화려하게 빛났다.
거대한 침묵 속에서 언니와 오빠가 눈을 마주치더니 주변의 유리 조각을 휴지로 치우기 시작했다. 나도 움직여야 했지만, 누가 목도리를 끝까지 잡아당겨 꽉 조인 것처럼 숨이 막혀 꼼짝할 수 없었다. 오빠는 별안간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언니도 따라 불렀다. 이상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노래가 나올까. 이미 일은 터졌는데, 내 일이 아니어서 할 수 있는 행동이 거슬렸다.
그제야 정적이 기운을 잃고, 언니 오빠의 서툰 목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바닥에 반짝이는 유리 파편들이 더 이상 날카롭지 않은 뭉툭한 조개껍데기처럼 보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언니와 오빠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아까 하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내 눈앞에서 직접 지어 보였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참았다. 지금 웃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언니와 오빠는 괜찮을 거라고 나를 달래줬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 그냥 언니 오빠가 했다고 해주면 안 되나?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그날 집으로 어떻게 돌아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뒤로 언니와 오빠를 피해 다녔다. 그러다 길에서 오빠네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누가 다시 내 목도리를 꽉 쥐고 비트는 것처럼 온몸이 뻣뻣해졌다. 아주머니는 웃으며 물으셨다.
"엄마한테 말했니?"
침을 꼴깍 삼켰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줌마가 내 심장 소리를 들을 것만 같았다. 나는 고개를 떨궈 땅바닥을 보며 아주 작게 대답했다.
"..네.."
심장은 더 크게 요동쳤다. 그날 바닥에 떨어졌던 유리 파편 한 조각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그 날카로운 조각이 내 속을 여기저기 긁어대며 상처를 냈다. 유리 조각을 꿀꺽 삼켜버린 것처럼 배 안이 따갑고 아팠다. 그 부끄러운 통증이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인사를 까딱하고 뒤돌아 뛰었다.
'들켰겠지? 이제 엄마한테 말해서 유리값을 물어달라 하겠지. 엄마는 내가 그런 사고를 쳤다는 걸 알면 단단히 실망하겠지?'
나는 더 열심히 언니와 오빠, 아줌마를 피해 다녔지만, 엄마와 아줌마가 만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멀리서 두 분이 웃으며 대화하는 걸 볼 때마다 생각했다.
'말하셨겠지?'
나는 끝내 엄마에게 고백할 수도, 아주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을 수도 없었다. 현관 유리문만 보면 사라지고 싶었을 만큼 무서웠던 공포가 솜털을 바짝 세우며 되살아났고, 아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그날의 질문을 한참 지난 어른이 되어서야 아무렇지 않은 척 꺼냈다.
"엄마, 예전에 내가 앞집 오빠네 유리 현관문 깬 거 알지? 물어줬었어?"
엄마가 되물었다.
"네가 그런 적이 있었어?"
첫 거짓말을 하던 순간의 떨림을 기억한다.
투명한 유리 현관문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부끄러웠다.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여백,
고작 한 살 위였던 언니와 오빠가 내가 놀랄까 봐
노래를 부르고 우스운 표정을 짓던 그 서툰 배려를 이제야 읽어낸다.
아이의 티 나는 기만을 끝내 지나쳐주던 어른의 품격.
그 정적의 무게를 닮고 싶다.
나를 키워낸 건 기꺼이 속아주던 어른의 고요한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