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등 위로 수십 개의 눈동자가 쏟아질 때
입학식 아침, 거실에는 팽팽한 신경전이 흐른다. 큰맘 먹고 산 브랜드 남방을 내밀자 아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목덜미의 택을 긁어댄다.
“엄마, 이거 목이 너무 까끌거려요. 불편해요.”
그 한마디에 내 안에서 뜨거운 것이 훅 치밀어 오른다. 남들 눈에 내 아이가 번듯해 보이길 바라는 내 조바심이, 아이의 피부에 당장 닿는 까끌함보다 앞섰다. 결국 아이를 달래고 으름장을 놓아 억지로 단추를 채웠다.
현관을 나서는 길, 아이는 새 운동화 앞코를 보도블록에 툭툭 치며 걷는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른 척 앞만 보고 걸었다. 그때였다.
운동화 앞코를 툭툭 치는 아이의 발끝 위로, 아주 오래전 신발장 깊숙이 밀어 넣었던 검정 구두 한 켤레가 겹쳐 보였다.
어린 날의 우리 엄마도 내게 예쁜 옷을 입히고 싶어 했다. 레이스가 달린 옷을 볼 때면 엄마의 눈도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 눈빛을 꺼뜨리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모두가 나만 쳐다보는 상황은 손바닥에 땀이 고이게 하고 침이 꼴딱 넘어가게 만들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중에서 그나마 반짝이와 레이스가 없는 분홍색 치마를 만지작거리는 거였다. 엄마가 내가 고른 치마를 앞뒤로 살펴볼 때, 나는 더 이상 다른 옷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날 이후, 아침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시간은 쫀득이처럼 길어졌다. 눈을 뜨면 바닥에 깔린 옷부터 힐끗 살폈다. 다행히 사흘 동안 엄마는 내가 고른 치마를 내놓지 않았다. 째깍째깍, 내 시간이 다시 신나게 움직였다. 엄마 앞에 앉아 머리를 둥근 빗으로 띄우고 무스를 뿌리는 고통도 입안으로 꾹꾹 삼켰다. 엄마의 기웃거리는 고개가 멈추고 스프레이 향이 코끝을 스치면 비로소 안심하고 집을 나섰다.
치마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쯤이었다.
어느 날 아침, 바닥에 분홍색 체크무늬 치마가 펼쳐져 있었다. 내 눈썹이 점차 가까워지며 가운데로 모였지만, 엄마는 혼자 맛있는 사탕을 먹는 사람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흰색 스타킹은 발가락 끝에 걸려 잘 올라가지 않았고 내 한숨 소리는 점점 커졌다. 엄마는 내 머리를 따주며 연신 "예쁘다"라고 말했지만, 고무줄이 두피를 당길 때마다 나는 "아! 아!" 소리를 내뱉었다.
엄마는 다 입은 나를 끌고 현관장으로 갔다.
"너무 예쁘지?"
엄마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올라가 있었다. 현관장 문이 열리고 검정 구두가 나왔다. 끈에 구멍이 뽕뽕 뚫린 구두. 엄마는 드디어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춘 사람처럼 들뜬 손길로 내 발을 구두 속으로 밀어 넣었다.
딱딱한 앞코에 발가락이 닿았다.
나는 구두 신은 발을 흔들었다. 엄마도 흔들린 신발을 보았다. 엄마는 "못 신겠네"라는 말 대신 끈을 더 당겨 앞쪽 구멍에 넣었다. 이제 구두는 아무리 흔들어도 발목에 찰떡처럼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학교 운동장 조회 시간, 우리 반이 일렬로 섰을 때였다.
"우와, 예진이 구두 신었다!"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수십 개의 시선이 내 발끝으로 쏟아졌다. 일제히 모든 눈이 나만 바라보는 것 같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대부분 여자친구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예쁘다!"며 쳐다봤지만, 그 사이에서 어떤 친구의 눈빛이 내 마음에 툭, 걸려 들어왔다.
슈퍼에서 500원짜리 미니쉘을 사고 싶은데, 주머니에 400원뿐이라 300원짜리 미쯔를 골라야 했던 날의 내 눈이 저랬을까. 아니면, 장난감 가게 앞에서 멍하니 장난감을 쳐다봤던 내 눈이 저랬을까. 그 시선이 닿을 때마다 발등의 열기 위로 찌릿한 전율이 더해졌다. 그건 미쯔 봉지를 뜯기도 전에 나오는 깊은 한숨의 색이었다.
친구들의 눈이 구두에 머물수록 발가락 끝에서 화끈거리는 열기가 올라와 뺨까지 달구었다. 구두가 발을 꽉 깨물고 있는 것처럼 아팠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발을 가두고 있던 딱딱한 구두를 발길질로 털어냈다. 그리고 까치발을 높게 들어, 내 키보다 세 칸이나 높은 신발장 구석 깊숙이 구두를 밀어 넣었다. 어두운 구석으로 구두가 사라지고 나서야 발가락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갔다.
다시 입학식 날의 운동장. 나는 내 곁에서 남방의 깃을 연신 잡아당기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의 운동화 앞코에는 아까 툭툭 걷어찬 보도블록의 하얀 가루가 묻어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이가 정말 남방의 택 때문에 까끌거리는 건지, 아니면 빳빳한 옷깃 뒤로 숨겨둔 낯선 두려움이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것인지. 내가 불편했던 것이 단지 구두의 가죽이 아니라 나를 향한 시선이었던 것처럼, 나는 아이의 짜증 뒤에 숨은 진짜 이유를 가만히 헤아려 보았다.
나는 허리를 숙여 아이의 운동화를 다시 편하게 찍찍이를 붙여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남방 단추 두 개 풀어줄까? 사실 엄마도 오늘 좀 떨려."
엄마의 반짝이는 기대감을 지키고 싶어서,
동시에 친구들의 낯선 시선으로부터 나를 숨기고 싶어서
분홍치마를 만지작거렸던 건 아홉 살 아이가 부린 최대한의 타협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나는,
그 치마에 어울리는 구두 한 켤레를 사기 위해 고민했을 엄마의 시간을 똑같이 살고 있다.
아이의 까끌거리는 불편함을 읽어내는 마음과,
번듯하게 입히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을 동시에 품은 채로 말이다.
수치심이 먼저 지나간 자리에 비로소 다정함이 고인다.
그렇게 나를 키워낸 건, 나를 바라보던 수많은 눈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