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서랍] 나의 친절은 등가교환이었다

뾰로롱 꼬마마녀의 셈법

by 사소한수집가
나를위해, 제일 좋은걸 너에게 줄게.

드르륵-.

방문이 꽉 닫힌 걸 확인하고는 책상에 앉아 두 번째 서랍을 살며어시 열었다. 이 순간만큼은 내게 마법의 문을 여는 기분이었다.

(뾰로롱 꼬마마녀 열두 살 난 마법 마법의 천사-)


하늘색빛, 노란색빛, 분홍색빛 파스텔톤 문구류가 테트리스처럼 딱 맞게 진열되어 있었다.

(신비로 가득 찬 행복의 가게로 오세요-)


그중에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첫 번째 보물은 앙증맞은 자물쇠가 달린, 하늘색 바탕의 부르부르 도그 다이어리였다.

(그건 스위트 민트지요-)

매끈한 투명 포장지에 감싸진 다이어리를 보면 마음이 두근거렸다. 다이어리 속지가 궁금해 투명 포장지를 조심히 뜯어본 적이 있었는데, 테두리의 부르부르 도그가 부들부들 떨며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먼지라도 묻을까 봐 금방 다시 포장했는데, 접착 부분이 처음보다 약해져서 그 이후로는 절대 포장지를 뜯지 않았다. 그저 매끈한 투명 포장지가 구김이 가지 않도록 조심히 만져볼 뿐이었다.

그 옆에는 똑딱이 단추가 달린 향기 형광펜이 있었다. 똑딱이 단추를 열면, 샛노란 잉크 냄새와 함께 가짜 바나나 향이 훅 올라왔다. 분홍색 펜과 연두색 펜도 번갈아가며 과일 향을 맡았다.

코에 가까이 가져다 댈수록 향기가 짙어졌다. 나는 바나나 향을 맡았다가 멜론 향을 맡았다가, 향기가 기억 안 나 다시 바나나 향을 맡았다. 그래도 뚜껑을 오래 열어두면 이 달콤한 향기가 다 날아가 버릴까 봐, 잉크가 굳을까 봐, 나는 서둘러 찍찍이를 닫았다.

나는 예쁜 것들을 사용하는 대신 오래도록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새 공책의 빳빳한 종이 질감이 접히는 순간 그어지는 자국이 예쁘지 않아서, 첫 페이지에 내 삐뚤빼뚤한 글씨를 적었다가 마음에 안 들어 찢어버릴까 봐

심장이 쿵쿵거렸으니까. 나는 예쁜 것들을, 나만의 보석들을 내 서랍 속에 모았다.

친구에게 생일 초대장을 받으면 나는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예쁜 거 옆에 있는 예쁜 거 중에서 고민했다. 학원을 가야 할 시간까지, 친구가 어떤 걸 더 받고 기뻐할지 고민했다.

그건 내 보물을 친구 품으로 보내주는, 나에게는 아주 거대한 고민이었다.

몇 가지 후보 속에서 나는 결심했다. 친구가 뭘 좋아할지 모르겠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 주자. 내 친구니까 나랑 똑같지 않을까

나는 하늘색 배경의 부르부르가 그려진 귀여운 다이어리를 무지개색 포장지에 감쌌다. 친구의 생일날, 선물을 든 나는 친구가 선물을 뜯어볼 때까지 콩닥거렸다. 내 눈앞에 있는 치킨과 피자의 맛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어서 빨리 친구가 내 선물을 뜯어보기만 기다렸다.

친구가 케이크를 후- 불고 친구들이 선물을 건넸다. 다른 친구의 선물이 하나둘씩 벗겨지고 친구의 눈은 예뻐졌다. 드디어 친구가 내 선물을 뜯고 다이어리를 봤을 때 나는 알았다

(눈동자만 보면 난 알 수 있어요-)

친구의 눈은 다른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보다 더 찰랑찰랑하게 반짝였다. 이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 가장 예쁘게 웃어주었다. 나에게 그 눈빛은 사진이 찍혀 내 몸 깊숙한 곳에 저장되었다.

(지금 막 따온 오로라를 당신에게로 보내드릴게요-)





"예진이는 사랑이 많아,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아."

친구의 말에 웃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스스로의 모습에 의문이 들어, 석연치 않은 마음의 이유를 오래 들여다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건 순전히 나를 위해 했던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선의처럼만 보였던 행동은 사실 철저한 나만의 셈법으로 나온 결과였다.

친구에게 가장 좋은 걸 주면 친구는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은 우정으로 두터워진다. 주변 친구들까지 옆에 있다면 나에 대한 평판도 올라가겠지.

사실 본질은, 저주인지 행운인지 모를 나의 속성이다. 나는 원하든 원치 않든 타인의 어떤 눈빛이 내 몸 깊숙한 곳에 새겨져 시간이 오래 흘러도 튀어나온다. 그 감동한 눈빛은 아주 오랫동안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내가 선의를 베푸는 행동은, 사실 내 기쁨을 가장 오래 유지하기 위한 치밀한 등가교환이었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고, 그보다 더 반짝이는 친구의 눈빛을 담아 오는 거래. 나는 주는 순간, 누구보다 철저하게 나를 위해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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