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니] 나의 못생긴 얼굴이 허락되는 곳

송곳니와 파전 사이

by 사소한수집가
나의 치과선생님




​며칠째 혀로 송곳니를 밀었다.


​손가락을 입안에 집어넣어 마구 흔들고 싶었지만 수업 시간이라 꾹 참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이를 흔드는 내 모습이 얼마나 못나 보일지 잘 알았으니까.


​선생님은 내가 책만 뚫어지게 쳐다봐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셨겠지만, 사실 내 입속은 송곳니랑 나랑 둘이서 비밀 작전을 하느라 바빴다. 혀끝으로 송곳니를 툭툭 건드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치아가 쏙 빠져서 목구멍 너머로 굴러 떨어지는 상상은 정말 끔찍했다. 뱃속으로 들어간 치아가 내 혈관을 막아버리면 어떡하지? 그 공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쫀드기도, 영혼의 단짝인 새콤달콤조차 단번에 멀어지게 만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현관 바닥에 벗어던졌다. 드디어 내 못생긴 표정을 마음껏 지어도 괜찮은 우리 집 화장실 거울 앞에 도착했다.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외치는 목소리는 이미 화장실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입을 사자처럼 크게 벌리고 조심스레 치아를 잡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침을 꼴딱 삼켰다. 자, 지금이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천천히 돌렸다. 아팠다. 비릿하고 짭짤한 피 맛이 입안에 가득 찼다. '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정말 거의 다 왔는데, 마지막 '톡!'을 혼자 해낼 용기까지는 나지 않았다.


​입안을 헹구고 주방에 있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나 봐봐, 아-!"



​엄마는 나보다 더 잔뜩 찡그린 얼굴로 내 송곳니를 살짝 건드려보았다.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내 이보다 더 심하게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엄마, 이거 한 번에 뽑으면 뽑혀. 엄마 할 수 있어?"



​엄마는 나보다 더 어린아이가 된 거 같았다,



​"아, 괜찮아! 그냥 아랫집 선생님한테 뽑아달라고 할게!"



​나는 현관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 계단을 두 칸씩 폴짝폴짝 건너뛰었다. 우리 아랫집은 나의 영어 선생님 댁이었다. 마침 선생님과 계단에서 딱 마주쳤다.



​"선생님! 저 이가 거의 다 흔들려요. 이것 좀 뽑아주세요!"



​선생님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휴지 두 장을 뽑아 손에 감싸셨다. 나는 침을 한번 삼키고는 있는 힘을 다해 입을 벌렸다. 호랑이 선생님처럼 무서운 표정을 짓더니, 내가 "아!" 소리를 내기도 전에 단번에 내 송곳니를 낚아채셨다.


​툭.


​하얀 휴지가 빨갛게 물드는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이제 쫀드기를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선생님은 휴지에 감싼 치아를 보물처럼 내 손에 쥐여주셨다. 나는 그걸 날름 받고는 다시 우리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음마! 음마!"



​발음은 새어 나갔지만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씩씩했다. 엄마는 그제야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피 묻은 송곳니를 깨끗하게 씻어 보관해 두고 주방으로 가니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엄마는 호박 대신 내가 좋아하는 파를 듬뿍 넣은 파전을 굽고 있었다.



​"선생님께 가져다 드리고 오렴."



​엄마는 둥근 그릇에 파전을 겹겹이 올렸다. 아까의 어린아이 같던 모습은 사라지고, 요리하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나는 파전 접시를 소중히 들고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선생님을 다시 볼 생각에 콧노래가 나왔다.






누구에게나 가장 못생긴 모습을 보여줘도 안전한 곳이 필요합니다.
주변 의식을 많이 하던 어린아이가 엄마가 아닌 어른에게
기꺼이 입을 벌릴 수 있었던 건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돌이켜보니 나를 키워낸 건,
나의 허물조차 단번에 해결해 주던 이웃의 든든한 안전지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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