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의에 대한 고찰
망각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
간호사 메리(커스틴 던스트)는 의사인 하워드(톰 월킨스)에게 니체의 한 구절을 말합니다. 하워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메리는 그에게 가정이 있음을 알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키스를 합니다. 하지만 이를 창 밖에서 하워드의 아내가 지켜보고 있었고 둘은 황급히 뛰쳐나가 멀어지는 아내의 차를 붙잡습니다. 메리는 다급하게 자신이 짝사랑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지만 하워드의 아내는 남편을 향해 말합니다. "사람 가지고 놀지 말고 쟤한테 말해줘" 이 장면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한 장면입니다. 하워드는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병원의 의사입니다. 메리와 하워드는 불륜을 저질렀었고 메리는 사랑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지우는 선택을 했었습니다. 하워드와의 기억은 모두 지워졌지만 그에 대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사랑을 뇌에서 벌어지는 화학 작용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단순 과학적 작용에 불과하다는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없습니다. <이터널 선샤인>과 같이 사랑이 기억에 기반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영화를 추천해보고자 합니다. 바로, 일본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입니다. 영화는 사랑을 절차기억에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절차기억은 자전거를 타거나 신발끈을 묶는 것처럼 의식 없이 기억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누군가를 사랑하는 과정은 마치 몸에 감정을 새기는 과정인 것입니다.
만약 모두가 그 애를 잊어간다 해도 저는 서서히 되돌리고 싶어요. 그 애와의 소중했던 무언가가 제 속에 남아 있을 거니까요
주인공 '카미야 토오루'(미치에다 슌스케)는 반 친구를 괴롭힘에서 구해주기 위해 학교에서 인기가 많던 여학생 '히노 마오리'(후쿠모토 리코)에게 고백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고백의 결과는 뜻밖에 성공이었고 토오루와 마오리는 연인이 됩니다. 물론, 진짜 연인은 아니었죠. 세 가지 규칙이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아는 척하지 말 것, 문자는 간결하게 할 것 그리고 진짜로 좋아하지 말 것 이 세 가지입니다. 둘은 학교에서는 아는 척하지 않았지만 매일 방과 후 함께 시간을 같이 보냅니다. 마오리는 토오루의 사소한 것들 하나까지 전부 노트에 적었고 둘은 여행도 다니고 데이트를 하며 가까운 사이가 되어갑니다. 이미 세 번째 규칙은 어긴 지 오래인 것이었죠.
어느 날, 공원에 데이트를 간 마오리는 깜빡 잠들었고 깨어나 옆에 앉아 있는 토오루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사실, 그녀에게는 병이 있었습니다. 사고를 겪고 그녀는 선행성기억상실을 겪고 있었는데 사고 시점 이후로 매일 자고 일어나면 사고 직전의 기억으로 돌아갑니다. 노트에 토오루의 사소한 것까지 다 적었던 것도 다음날 토오루를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매일 그녀에게 토오루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점차 사랑에 빠지고 있었습니다. 토오루는 마오리가 겪고 있는 병에 대해 알게 된 이후 말합니다.
내일의 마오리도 내가 즐겁게 해 줄 거야
둘의 사랑이 깊어지던 어느 날, 토오루는 마오리의 가장 친한 친구인 '와타야 이즈미'(후루카와 코토네)에게 사실 그의 심장병 증세가 심해지고 있음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내가 죽으면 그녀의 일기장에서 나를 지워줘. 얼마 뒤, 토오루는 심장병이 발병하여 갑작스레 죽게 되었고 이즈미와 토오루 친누나는 그의 부탁에 따라 마오미의 일기장에서 토오루의 흔적을 전부 지웁니다. 토오루가 죽고 난 이후, 마오리는 토오루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왠지 모를 슬픔에 고통스러워합니다. 시간이 흘러 증상이 어느 정도 나아지고 마오리는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이목구비가 없는 한 남자의 얼굴을 그립니다. 마오리는 손이 이끄는데로 그렸다고 말하는데 그 남자는 바로 토오루였습니다.
일본 특유 감성을 가진 이번 영화는 우리에게 사랑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듭니다. 앞서 소개한 두 영화 모두 사랑에 대한 복합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저는 두 영화의 입장에 공감합니다. 연인을 사랑하는 이유는 사랑한다는 확신을 가진 이후 붙이는 부연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랑하는 것은 그냥 스스로 알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