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너리티 리포트 > & < 가타카 >
2012년 12월 14일 코네티켓 뉴타운 지역에 위치한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어린아이 20명, 교직원 6명, 범인의 모친과 범인까지 총 28명이 사망한 해당 총기 난사 사건은 아직까지도 회자될 만큼 당시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건의 범인은 '애덤 랜자'로 그는 모친을 살해한 뒤 샌디 훅 초등학교에 찾아가 어떤 방어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총을 쏘았습니다. 경찰은 빠르게 도착했지만 이미 범인이 자살한 직후였습니다. 이후 코네티컷을 중심으로 샌디 훅 프로미스(Sandy Hook Promise)라는 비영리단체가 조직되었고 이들은 총기 난사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아래 광고는 샌디 훅 프로미스에서 집행한 공익광고입니다.
Do you know the signs?(2018)
영상을 보면서 총기 난사에 대한 증후들을 발견할 수 있으셨나요? 많은 사람들은 증후들을 지나치고 맙니다. 그렇기에 총기 난사는 예측이 불가하고 현실에서 벌어졌을 때 무방비인 상태로 당하게 됩니다. 이는 공포 영화를 관람객들이 무서워하는 이유와 유사합니다.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데 샤워하고 있던 여성 뒤로 정체불명의 괴한이 등장하며 울려 퍼지는 배경음악도 한몫을 했지만 무방비한 상태에서 당하는 여성의 모습이 현실성이 있기에 더욱 사람들은 무서워했습니다.
이러한 점이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묻지마 칼부림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연속적인 묻지마 칼부림과 살인 예고는 특정 지역이 아닌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공포감을 조성했습니다. 저 또한 해당 사건이 있고 밀집된 곳을 가면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끼고는 합니다.
이러한 연쇄적 묻지마 칼부림과 살인 예고들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한 시스템적 통제 및 감시 그리고 인간 자체의 변화 이 두 가지를 떠올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앞서 언급한 해결책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두 영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영화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입니다.
2002년에 개봉한 해당 영화는 2054년 워싱턴에서 시행되고 있는 프리 크라임 시스템을 소재로 다룹니다. 프리 크라임 시스템이란 과학 기술을 통해 미리 범죄 행위를 예측하고 예비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후 시스템적 오류가 발생하고 해당 시스템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해당 영화 관점으로 구체적 해결책을 고안해 본다면 인터넷 검색 키워드를 파악하고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내용을 감시하여 증후를 사전에 발견해 사건을 예방합니다. 또한 통계적으로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 경찰을 추가 배치하고 신고를 활성화하는 방책을 마련하는 등 예방과 사전적 감시를 동시에 활성화해야 합니다.
물론, 해당 방법이 현실적이고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하지만 두 번째 영화를 가져온 것은 인간 자체의 변화를 믿어보고 싶기에 가져왔습니다. 바로, 1998년에 개봉한 영화 <가타카>입니다.
부적격자라고 불리지만 가능한지 아닌지의 운명을 정하는 건 자신의 몫이잖아
해당 대사는 주인공 빈센트(에단 호크)의 대사입니다. 영화 속 세계는 우성학을 기반으로 세상이 구성되는데 태어났을 때부터 예상수명, 질병, 직업군까지 모든 게 결정됩니다. 자연잉태로 태어난 빈센트는 인공 수정으로 완벽하게 태어난 동생에 비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고 결국 원했던 우주선 탑승이라는 목표를 이루어냅니다. 그리고 예상 수명보다 훨씬 오래 살고 있었죠. 물론, 단순 노력만으로 세상의 벽을 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는 우성인자를 가졌지만 다쳐 걷지 못하는 제롬 유진(주드 로)의 신분을 부여받아서 활동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동생이 체포하러 왔지만 수영 대결에서 패배하며 결국 빈센트를 놓아주게 되는데 이때 어떻게 우성인자를 가진 자신을 이길 수 있는지 묻자 빈센트는 말합니다.
나는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너를 이길 수 있는 거야
묻지마 칼부림과 살인 예고 등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들의 경우 많은 경우가 잘못된 방법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발생합니다. 물론, 주어진 배경, 현실, 능력 등 기본적으로 모두가 다르게 태어납니다. 하지만 모두가 태어난 모습 그대로 죽지는 않습니다. 주어진 것들에 대한 불만이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번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빈센트처럼 열성인자를 가지고 태어나 우성인자들만을 위한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과정들이 쉽지는 않습니다. 사회적인 불만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하게 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인다면 이는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미리 정하고 포기하는 것 아닐까요? 사회적인 벽과 주어진 현실이 암담하더라도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자신을 한계 짓고 포기하지 않고 불건전한 표출보다는 노력과 도전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물론, 두려움을 느끼는 시민 중 하나로 과학적인 예방 시스템과 빠른 대처가 필요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근본적인 부분에서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계속해서 병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