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기후변화 맞이한 한국
아랍인들의 주식 중 하나인 ‘대추야자’는 사막 일대 사람들에게 생명의 열매라고 불린다. 강수량이 적어 농작물 경작이 어려운 지역에서 대추야자 나무는 깊게 뿌리를 내려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추야자가 국가 상장인 이라크에는 대추야자 나무가 무더기로 잘려나가고 있다. 지난 4년 연속 이어진 가뭄과 50도 넘는 고온이 수천 년간 중동 일대를 가득 매운 대추야자 나무마저 쓰러뜨린 것이다.
이라크는 한때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평야를 중심으로 농업경제 부흥기를 누렸다. 하지만 현재 이라크는 유엔에서 지정한 5대 기후변화 피해국이다. 지난 7월에는 기온이 급격히 올라 남부지역 강에 물고리 수만 마리가 폐사했다. 비옥한 습지는 계속되는 강수량 급감으로 말라 갈라졌고 일부 지역 주민들은 급수차로 물을 공급받고 있다.
이같은 급격한 기후변화 흔적은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기후변화 관문으로 알려진 해남 지역에는 열대 쌀 인디카가 재배되고 있고 사과는 강원도에서 재배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해 사과 주 생산지인 대구와 경북 재배면적은 1993년 대비 44% 감소했고 강원도는 같은 기간 247% 증가했다.
이번 추석때 최초로 35도가 넘는 고온이 이어지며 폭염 경보가 발령된 것을 보면 조만간 명절 밥상에 오르는 밥이 인디카로 지어지는 날도 머지 않았다. 나중에는 인디카 쌀밥과 함께 망고, 바나나 등 열대 과일이 차례상에 오를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이처럼 작물 재배지가 점차 북상하고 한국은 뚜렷한 사계절을 가진 나라에서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고 있다. 사람들은 "동남아 갈 필요가 없다"는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극심한 기후변화를 농담처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라크의 비옥한 평야는 겨우 4년만에 황폐해졌다. 한국은 지속적인 기온 상승과 강수량 감소에 미리 대비해야지 이라크와 같은 사태를 겪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책은 미흡하다. 지난달 대통령실은 기후환경 업무를 과학기술수석 산하에 두며 과학적으로 접근하겠다고 했다.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다. EU는 행정부 내 기후 전담 부처를, 독일은 2021년 경제기후부를 신설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부처도 마련되지 않았다.
정부의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부처를 신설하고 현재 각 지자체 기후변화 대응팀과 긴밀하게 협조해 국가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극심한 기후변화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부터 농축산물 피해까지 다방면으로 살피고 매 계절마다 대비책과 메뉴얼을 마련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속도에 발맞춘 대응이 없다면 한국도 빠른 시일 내 이라크처럼 급수차로 물을 공급받으며 갈라진 땅 위를 걸어다닐지 모른다. 강원도가 사과를 재배하기 적합한 기후라는 말은 웃어 넘길 농담이 아니다. 얼마나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