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선우 Mar 15. 2023

의사 선생님,
이 상처는 아물지 않나요?

< 더 글로리 >로 보는 학교폭력

중학교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 저는 학교에 일찍 도착해 자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투는 소리에 비몽사몽 잠에서 깼고 둘러보니 여자애들 4명이 여자애 A를 둘러싸고 큰 소리로 욕하고 있었습니다. 곧이어 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이 들어오면서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여자애들은 웃으며 A랑 수다 떨고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조회 시간 담임선생님은 친구들끼리 오해가 있다고 괴롭히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A는 어떤 사건으로 친구들과 사이가 틀어졌고 이후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던 것입니다. A는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말했고 사건은 담임선생님 주도하에 화해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화해와 별개로 친구들은 A를 의도적으로 피하기 시작했고 학교에서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저는 복도에 서있던 A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항상 주변 눈치를 보았고 점심시간이면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A는 어른이 된 지금 그때 일을 잊었을까요? 아마 어떤 기억보다 선명할 것입니다. 이번에 돌아온 < 더 글로리 > 시즌2를 보고 저는 문뜩 A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더 글로리> 문동은(송혜교)처럼  혹시나 그 시절에 A의 시간이 멈추지 않았기를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드라마 < 더 글로리 >는 학교폭력 피해자인 문동은을 필두로 한 통쾌한 복수극입니다. 동은은 고등학교 시절 박연진(임지연)을 중심으로 한 무리에게 학교폭력을 당합니다. 항상 웃음이 가득했던 동은이지만 학교폭력은 그녀의 영혼을 산산조각 냅니다. 육체를 부수는 폭력은 결국 그 안에 있는 영혼까지 부수고 맙니다. 연진은 동은의 팔을 고데기로 지졌고 연진의 무리는 그녀에게 온갖 수치심을 주는 폭력과 물리적 폭력을 가합니다. 이러한 폭력은 어린 동은이 견디기에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슬프게도 < 더 글로리 >에서 보여준 학교폭력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2006년에 보도된 '청주 여중생 고데기 학폭 사건'입니다. 


박연진 무리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문동은


결국 자퇴서를 제출한 동은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벌며 학업에 정진합니다. 그리고 당당히 교대 합격증을 거머쥡니다. 이후 동은은 과외로 복수를 위한 자금을 모으고 오랜 시간 동안 철저히 복수를 준비합니다.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력자도 얻습니다. 조력자는 바로 주병원 오너 자제인 의사 주여정(이도형)입니다. 처음은 우연으로 만났지만 여정이 주병원 오너 자제라는 사실을 알고 동은은 접근합니다. 여정은 동은이 자신에게 접근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를 위한 망나니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연진과 나머지 무리는 수많은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고도 누구보다 잘살고 있었습니다. 연진은 기상캐스터라는 간판을 가지고 재벌가 사모님으로 입성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무리인 이사라(김히어라)는 유학을 다녀와 고액의 그림을 팔며 호화스러운 화가의 삶을 살고 있었고 전재준(박성훈)은 국내 최고의 골프장을 물려받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에 비해 가진 게 적었던 손명오(김건우)는 재준의 기사로 일했고 최혜정(차주영)은 스튜어디스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삶은 동은의 복수로 서서히 무너집니다. 사실 그들은 친구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이 없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혹은 부하로 서로를 여겼고 무리의 주동자였던 연진이 무너지면서 나머지 친구들은 서로를 헐뜯으며 무너져갑니다. 결국 연진은 감옥에 갇히고 그녀는 자신이 어린 시절 저질렀던 폭력을 감방에서 그대로 당합니다.


동은의 망나니를 자처한 여정은 동은만큼이나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정의 아버지는 훌륭한 의사였습니다. 병원에 응급환자로 온 살인범 치료를 모두가 완강히 거부하는 상황에 여정의 아버지는 직접 수술합니다. 하지만 살인범은 치료를 해준 여정의 아버지를 메스로 처참히 살해합니다. 그 모습을 직접 본 여정은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동은은 그런 여정의 사정을 알았고 그녀의 복수를 마치고 여정의 망나니가 되기로 합니다. 여정의 복수가 시작되고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 더 글로리 >가 방영되며 사회적으로 학교폭력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마냥 웃지 못할 겁니다. 연예계에서 종종 학창 시절 저지른 학교폭력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고는 합니다. 이들은 진심 어린 사과를 통해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이 잠잠해지면 다시 연예계로 돌아오려는 모양새는 반성의 기미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심판과 잣대는 더욱 강하져야 합니다.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용기 있는 주변 사람들입니다. 학교폭력을 방관하지 않고 막아설 수 있는 용기 있는 주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가해자들은 더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 더 글로리 > 속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더 심한 학교폭력을 겪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해자들에게는 학창 시절 장난 혹은 분풀이였을지 모르지만 피해자들에게는 잊지 못할 상처입니다. 


< 더 글로리 >는 수많은 명대사를 낳았지만 이 한 마디는 꼭 가해자들에게 해주고 싶습니다.


어떡해, 너네 주님 개 빡쳤어.
너 지옥행이래


작가의 이전글 나는 어제로 가도 똑같이 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