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잃어버렸다. 정말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눈앞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 사실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따라 아이는 피곤했는지 집중력이 엉망이었고 유치원을 마친 뒤 빵집에서 빵을 먹으면서도 한자리에 가만히 못 있었다. 빵을 먹자마자 화장실에 뛰어가서 숨어 있거나 내가 빵을 치우고 있을 때에도 먼저 빵집을 나가버렸다.
내가 그때 정신 차리고 아이와 함께 마트를 가지 않았다면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나는 오늘 꼭 필요하진 않지만.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용품을 사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갔고 내가 장을 보는 동안에도 아이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 손을 억지로 빼고 마트 안을 돌아다녔고 그러다 친구를 만나 인사를 하기도 하였다. 얼른 장을 본 뒤 아이의 손을 잡고 신호등을 건넜고 그렇게 우리 집으로 가기 위해 다른 아파트를 건너는 순간 아이는 다시 내 손을 빼고 앞으로 내달렸다. 그리곤 아파트 안쪽으로 쏙 사라졌다.
나는 그 순간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얼른 아이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따라가지 않았다. 아까부터 꾹꾹 눌러있던 분노가 터지면서 “너 이렇게 엄마 말 안 들으면 엄마 그냥 집으로 갈 거야!” 소리쳤다.
그러나 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 30초 지났나? 아이가 들어간 아파트 동으로 얼른 들어갔다. 미로처럼 복잡해서 아이가 평소 좋아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뭐지? 싶어서 근처로 다시 가봤다.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서 다시 아이가 사라진 곳으로 봤다. 없었다. 불과 30초 만에 아이는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 나는 어디 프로그램에서만 보던 것처럼 그렇게 아이를 잃어버렸다.
처음에는 장난이겠지 싶었다. 왜냐면 나는 이곳을 아이와 함께 3년 동안 늘 다녔던 곳이고 그래서 사실 금방 아이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5분 10분 넘게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아이가 갈만한 곳으로 가 봐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냉동식품이 가득 든 장바구니를 어깨에 가득 메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점점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어 경비실에 찾아가니 식사 중이라는 팻말과 함께 경비실은 비어 있었다. 다시 아이가 사라진 곳으로 가봤지만 역시나 없었다. 한 20분 정도 찾으니 이 무더위에 소름이 오소소 돋기 시작하였다.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아파트이지만 부끄러움이고 뭐고 얼른 관리사무소로 달려갔다.
“어머님 얼른 경찰에 신고하세요. 저희는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관리사무소 직원은 급한 얼굴로 경찰에 신고를 권유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런 일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30분 정도 지나자 너무 무섭고 겁이 나면서 나도 모르게 112를 눌렀다. 이 넓은 아파트 단지에 나 혼자 아이 이름을 부르며 돌아다니기엔 아이를 찾기엔 역부족이었다. 112는 바로 전화를 받은 뒤 아이의 인적사항을 적었고 당장 출동하겠다고 문자가 왔다. 혹시나 싶어 아이가 사라진 쪽 CCTV를 볼 수 있냐고 하니 안타깝게도 그쪽엔 CCTV가 없다고 하였다. 힘이 쭉 빠졌다.
급한 마음에 우리 아파트 쪽으로 가봤다. 혹시나 아이가 우리 아파트로 간 건 아닌가 싶어 우리 아파트 앞에서 기다려 봤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기사에서 아이를 가장 많이 잃어버리는 시기가 5세에서 6세라더니 정말 그 말이 사실이구나 싶었다. 너무 긴장이 되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경찰에서는 이것저것 물어보고, 관리 사무소에서도 전화가 계속 오는데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얼버무렸다. 왜 방송 보면 저렇게 말을 제대로 못 할까 싶었는데 내가 그랬다. 아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으니 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아이의 이름만 애타게 불러 다녔다.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에게 혼자 다니는 남자아이를 봤냐고도 물어보고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도 물어봤지만 역시나 본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다.
아이를 찾지 못하자 경찰차 한 대가 더 왔고 구급차까지 왔다. 혹시나 아이가 다쳐서 안 나타나는 것 아닌가 싶어서 배치한 것 같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방송을 하여 아이를 본 적 있는 사람은 연락을 달라 하였다. 분명 1시간 전의 나와 아이는 함께 손을 잡고 마트를 나오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이 없이 나 혼자 이렇게 있다니. 정말 그 자리에서 죽고 싶었다.
나는 이 순간에 뭘 해야 할까. 경찰이 다시 연락이 왔다. 아파트를 계속 순찰하고 있으나 아이가 보이지 않으니 아이가 자주 가는 놀이터를 한 번 가보라고 하였다. 혹시나 싶어 우리 아파트 쪽 놀이터를 가봤으나 아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문득 집에 한 번 올라가 봐야겠다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 아파트 동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27층을 눌렀다.
27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누군가 “왁!”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안겼다. 땀을 뚝뚝 흘리며 유치원에서 받은 빨간 플라스틱 프라이팬 장난감을 든 내 아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를 보자마자 아이의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반가움과 화남, 극도의 긴장감이 풀리면서 울음이 터졌다. 내가 엉엉 울자 아이도 나를 따라 엉엉 울었다. 그렇게 찾던 아이가 지금 내 품에서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두고두고 이 날을 후회하고 또 후회할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아이를 붙잡고 우는데 아이는 울다가 나를 보고 씩 웃으면서 “엄마 놀라운 소식이 있어. 뭐냐면 내가 쉬가 무척 마렵다는 거야. 얼른 화장실 가고 싶어.” 말했다. 정말 아이다운 말이었다.
방금 전까지 나는 마치 길을 잃은 들개처럼 아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돌아다녔는데 아이를 찾고 나니 나도 모르게 다시 평범한 엄마로 돌아갔다. 얼른 집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에게 화장실로 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급히 경찰에게 전화를 하였다. 아이를 찾았다고. 너무 죄송하다고. 감사하다고. 너무 다행이라며 경찰은 돌아갔고 관리사무소에도 연락을 드렸다.
경비실 아저씨들께도 찾아가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뒤늦게 합류한 남편은 땀을 함빡 흘린 아이를 씻기러 들어갔고 나는 아이를 잃어버리고 내팽개쳐버린 장바구니를 찾으러 다시 아이를 잃어버린 아파트로 걸어갔다.
긴장한 마음이 풀리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터져 나왔다. 내가 울면서 걸어 다니자 방금 전까지 아이를 찾던 모습을 본 아파트 주민이 나와 아이를 찾았느냐고 물어봐주었다. 찾았다고 하자 너무 다행이라고. 마음고생 많았다고 이야기해 주는데 나도 모르게 또 울어버렸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내 아이를 위해 신경 써주는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나는 내가 아이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늘 옆에 있었고 늘 함께 있다고 생각하였으니까. 그리고 가끔씩은 이제 이만큼 컸으니 어느 정도 앞가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도 가졌다. 그러나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렸다. 내가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가끔 아이가 너무 미울 때가 있었다. 아무리 목청껏 불러도 대답하지 않을 때. 아이가 나를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나의 신경은 곤두세워지면서 얼른 아이에게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내 눈에서 벗어난 뒤. 난 세상이 무너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뇌가 멈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아이를 껴안으며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그리고 마음 한편으로 다짐했다. 해이해진 내 마음을 다잡자고. 다시는 아이의 손을 놓지 말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