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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Jul 20. 2023

내 아이의 사교육은 언제부터가 좋을까?(하)

“너 학습지 안 하면 그냥 학습지 끊을 거야!”


어렸을 때 엄마에게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말을 이제 내가 하게 될 줄이야.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아이와 학습지를 신청했을 때는 그저 학습지만 신청하면 내 아이가 잘 따를 거라고 생각한 과거의 내 뺨을 때리고 싶을 만큼 아이는 학습지 하기를 귀찮아했다.


그저 사람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 5살 꼬맹이를 앉히고 공부하게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거니와 관심 없는 아이에게 윽박을 질러가며 억지로 공부를 시켜야 하는 상황도 고역이었다.

매일 학습지 때문에 아이와 싸울 때마다 내가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남편은 자신이 해보겠다고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3일 만에 도저히 안 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모래놀이 좋아하고, 색종이 접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저 유치원 엄마들의 대화에 너무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급후회가 되기 시작하였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저 다른 엄마들의 대화를 통해 우리 아이도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을 느꼈던 것 같다. 누구는 영어 학원을, 누구는 미술 학원을, 또 누구는 한글 배우는 학원을 다닌다고 하니 내 아이도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특히 한글을 배우는 것이 학습의 ‘첫 단추’로 느껴진 그 단추를 잘 채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그저 노는 걸 가장 좋아하는 해맑은 아이를 보니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내가 걸어왔던 길을 내 아이에게 똑같이 물려주는 것 같아 소름이 돋기도 하였다.

어렸을 적 나는 그토록 수학 학원을 가기 싫어서 울면서 엄마에게 가기 싫다고 하였는데 엄마는 그때마다 학원에 가라고 회초리를 들었다. 물론 엄마는 나를 위해 돈을 들여 학원에 보낸 거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수학에 더 멀어졌었고 나중에는 그 유명한 ‘수포자’가 되었었다.

그때를 기억하며 나는 절대 내 아이에게 뭔가를 ‘억지로’ 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는데. 내가 지금 이러고 있다니.  갈대같이 흔들리던 나의 마음을 다시 잡기로 하였다.


더 이상 아이에게 억지로 한글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학습지도 그저 하고 싶을 때 이외에는 더 이상시키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매일 밤 자기 전에 책  읽어주고, 이름이나 한 번씩 끼적이기 정도만 시켰다. 또래 친구 엄마들이 아이가 쓴 한글이나 영어를 자랑스레 SNS에 올릴 때마다 약간의 부러움은 느꼈지만 흔들리지 않기로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6살이 되고 봄이 올 때쯤, 문득 아이가 티브이를 보다가 나에게 이 글자는 무슨 글자냐고 묻기 시작하였다. 책을 읽는다던가, 티브이를 볼 때 한글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아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자리에 앉히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이젠 스스로 먼저 앉아서 한글 스티커를 붙여도 보고 혼자 끼적여 보기도 하였다.

물론 괴발개발 쓴 글자는 그림인지 글자인지 헷갈릴 정도였으나 뿌듯한 얼굴로 나에게 칭찬을 바라는 표정을 보니 너무 잘했다고 궁둥이를 두드려줄 수밖에 없었다.


내 손을 잡고 거리를 걷다가도 우연히 아는 글자가 보이기라도 하면 큰 소리로 그 글자를 읽으며 나를 향해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아, 모든 아이에겐 자신만의 배우는 시기가 있음을.




  뉴스에서는 4살 때부터 영어 유치원 ‘고시’를 위해 어린아이들을 공부로 내 몬다고 하고 어느 학원은 초등학교부터 ‘의대 입시반’을 운영하며 아이가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 공부를 시킨다고 한다. 사실 아이가 안정적이고 좋은 미래로 갈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이고 확실한 길은 ‘공부’인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부모는 힘들게 번 돈을 교육으로 투자하는 거겠지.


고작 부모된 지 5년 차인 초보 엄마인 나는 이제 겨우 학습지 하나 시키고 한글을 시작하면서도 이렇게 힘들다고 투덜거리는데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본격적인 경쟁 레이스를 펼치게 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아이’라는 것. 아이가 원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함께 고민해 보고 찾아보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임을 깨달았다.


물론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면 과감히 끊을 줄도 알아야 한다 생각한다. 오늘 싫던 게 내일은 또 좋아질 수 있는 것이 아이의 마음이니까.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만 하면 끝인 줄 알았던 아기 시절을 벗어나 이제 아이는 사회 구성원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업을 갖고 사는 것도 물론 더없이 좋지만 나는 아이가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신이 바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또 뭘 잘할 수 있는지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 바로 부모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겠지. 아마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난 또 줏대 없는 갈대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흔들릴 것 같다. 그때마다 한글 하나 떼는 것에도 감사해하던 오늘을 떠올려야겠다.


부모는 오늘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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