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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Jul 11. 2023

엄마는 왜 일 안 해요?

- 전업주부도 직업이 될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올까?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온 뒤 간식을 주고 부엌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이가 대뜸 물었다.


“엄마는 왜 일 안 해요?”


그 말을 듣자 괜히 가슴 한편이 뜨끔하면서 뭔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고작 만 5세 아이의 악의 없는(?) 질문에 나는 뜸 들이며 “엄마는 너 키워야 하니까 일을 안 하지.”라고 얼버무리며 말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내 대답에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나도 유치원 가니까 엄마도 일하면 되잖아. 엄마도 일해.”라고 말하며 하고 있던 놀이를 계속하였다. 말을 더 붙일까 하다가 내가 말해봤자 아이는 듣지 않을 걸 뻔히 알기에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에도 아까 아이가 한 말이 계속 떠올랐다.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해보았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짚이는 게 있었다. 사실 요즘 남편이 승진 시험을 앞두고 있어 여러모로 바빴다.


남편은 저녁에 퇴근해서 밥만 먹고 후딱 독서실에 갔고 주말에도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였다. 물론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제일 힘들고 바쁜 건 인정하나 나 역시도 남편만큼이나 바빴다. 평일 저녁, 그리고 주말 동안 남편이 없으니 홀로 아이를 봐야 했다. 특히 아빠와 유대관계가 유달리 좋은 아들에게 아빠가 왜 주말에 시간이 없는지, 왜 이제 아이와 놀아주지 않는지 설명하는 것도 일이었다.


나는 아이가 왜 아빠가 이제 자신과 놀아주지 않냐는 질문에 아빠는 지금 중요한 시험이 있어 공부를 하러 갔고 그 시험을 붙어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아빠가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덧붙인 이유는 열심히 일을 하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아이도 그런 아빠의 고생을 알아야 돈을 함부로 쓰지 않을 것이라는 나만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가르침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아이가 미워졌다. 누가 시켜서 낳고 키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5년 동안 내 몸과 마음을 갈아가면서 아이를 키웠는데 이제 자기는 클 만큼 커서 (고작 다섯 살인 주제에) 엄마가 필요 없으니 일을 하러 가라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말이라지만 괘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왜 나는 아이의 순수한 질문에 이토록 부끄러움을 느꼈을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아기를 낳고 24개월에 어린이집에 보낼 때쯤 코로나가 터졌다. 어린이집은 무기한 입학을 연기하였고, 틈만 나면 어린이집 문을 닫았다. 그래서 4살 때까지 꼼짝없이 아기를 홀로 돌봤다.

남편은 밤에도 일을 하러 가고 주말에도 일을 하러 가야 하는 교대근무를 하는 직장인이었고 남편 따라 타지에서 아이를 낳고 키웠기 때문에 양가 부모님의 도움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남편이 무척 가정적이었고 나의 ‘희생’이 있기에 자신이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며 늘 나를 북돋아주었기에 힘들었지만 버틸 수 있었다.


아기를 키우면서 사실 이런 생각도 했었다. 와 이렇게 힘들게 애를 키우는데 나중에 애 좀 컸다고 누가 일하러 가라고 하면 그게 사람이겠냐고. 만약 남편이 이제 애 컸으니 돈 벌러 가라고 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만큼 나 홀로 육아는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웃기게도 아이가 조금씩 크고 유치원에 가면서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예전보다 몸이 편해졌다는 것이 괜히 눈치가 보였고 남편이 가끔씩 회사 동료 와이프들이 어디서 일 한다는 소리를 하면 나한테 일 하라는 말을 돌려서 하는 소리인가. 생각하였다. 시어머니는 나만 만나면 너는 애가 유치원 가고 집에서 뭐 하느냐는 질문을 넌지시 던지셨다.


지난 4년 동안의 내 고생과 힘듦은 어느새 과거가 되었고, 주위 사람들은 이제 애가 어느 정도 컸으니 어서 너도 다시 세상에 나가라고 은근히(?) 등을 떠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업주부를 보며 편해 보인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가끔 “애 보내놓고 집에서 뭐 해요?”라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기도 한다.


사실 집에 있다고 해서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꼭 빨래를 돌리고, 집에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장을 보러 다니고, 청소기를 돌리며 정리를 한다. 그러다 아이가 아프면 집에서 가정보육을 하며 아이를 온종일 돌본다. 아이가 어릴수록 자주 아프기에 꼭 24시간 대기조 같다.


전업주부가 돈을 벌지 않는다 뿐이지 ‘노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전업주부를 ‘노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선은 나를 알게 모르게 옥죈다. 어쩌면 나조차도 전업주부를 ‘노는 사람’으로 인식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실 아이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너가 입는 옷, 너가 먹는 밥, 너의 모든 것을 엄마가 다 준비해주는데 그게 할 말이냐고 따끔하게 야단치고 싶지만 또 그렇게 말하기에는 괜히 서운하다. 그런 말을 내가 하기보단 나의 남편이, 또 다른 나의 가족이 해줬으면 싶다.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아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집에 있다고 해서 집에서 ‘노는’ 사람으로 눈치 받지 않는 사회는 언제쯤 될까? 돈을 벌지 않는 노동은 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관념상 아마 쉽게 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한 번씩은 꿈꿔본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만큼 집에서 우리 가족을 돌보는 전업주부들이 대우받는 세상을.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전업주부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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