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해왔을까

책임이 성격이 된 사람의 이야기

by 이레

책임이 성격이 된 사람의 이야기

난 지독히도 책임감이 강하다.

책임의 완벽주의.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

내가 속해있는 환경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순간이 오면 나는 가장 먼저 안다.

그걸 견디는 일이 미치도록 힘들다.

그래서인지, 내가 했던 선택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까.

그냥저냥 버티기만 해도 월급은 나오고,

학교만 나가면 학위는 나오는데.

왜 나는 어디를 가든 나서게 될까.

왜 적당히가 안 되고, 왜 보통으로 살지 못할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순간을 견디지 못해 결국 그 자리에서 벗어나 버린다.


아마도 자라온 환경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실패 후의 회피.

그 책임을 가족이 떠안아야 했던 시간들.

진흙탕임을 알면서도 함께 들어가자고 하던 아버지.

나는 손을 놨다. 이기적인 결정이었을까.


그 자리에 남은 가족들.

힘들어하는 엄마.

어린 동생.

모두를 뒤로 두고 혼자 나온 죄책감.

그렇게 나는 내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또 한 번 책임져야 했다.


그런데 힘없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많은 돈이 있어야 행복한 걸까.

나는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반복해서 말하셨다.

“너는 절대 너희 아빠처럼 사업하지 마라. 월급이 최고다. 안정이 최고다.”

그 말이 맞다. 쉬운 길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보통’이 힘들었을까.


나는 돈이 무섭다.

정말로 무섭다.

그리고 너무 싫었다.


그래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에게 돈 관리를 넘겨봤다.

권한을 넘기는 게 두려웠지만 한두 달 참고 지켜봤다.

남편도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믿어주자 남편도 책임을 지기 시작했다.


공감하지 못하던 사람이 공감하기 시작했고,

대화가 안 되던 사람이 대화가 되는 사람이 되었다.

기댈 곳 없다고 느꼈던 나에게 기댈 사람이 생겼다.


내가 퇴사한다고 말하면 남편은 언제나 “그래, 괜찮아”라고 말한다.

예전엔 그 말이 너무 무책임하게 들렸다.

“후폭풍을 모르니까 저런 소리 하는 거겠지.”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사람에게도 책임이 생겼다는 걸.

내 삶을 함께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근무 중에 남편에게 전화해 말했다.

“오빠, 나 도저히 안 되겠어. 퇴사할래.”

남편은 여전히 똑같이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해. 괜찮아.”


그 말이 이번엔 다르게 들렸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진심으로 위로가 되었다.

아, 우리가 진짜 부부구나.

우리 가족은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주는 사랑이었구나.


이제는 내 선택에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레는 잘할 거야.”

“뭘 해도 될 사람이야.”

예전엔 그 말이 다 인사치레처럼 느껴졌는데,

이번엔 이상하게 진심이 느껴진다.

이번엔 정말 진심으로 응원받는 것 같다.

잘 살겠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