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내려놓기 위한 첫 용기, 퇴사

책임을 내려놓기 위해 퇴사했다

by 이레

아이러니하다.
세상은 책임감 있게 살아가라고 말하는데,
나는 책임을 내려놓기 위해 퇴사를 선택했다.


나는 늘 책임을 먼저 떠안는 사람이었다.
빠르게 익히고 더 많이 하고, 빈틈이 보이면 메꾸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은 결국 내가 했다.
그게 익숙했고, 때론 그것 때문에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그 습관이 장점이기보다
나를 갉아먹는 ‘패턴’이 되어버렸다.


나는 대리였고 팀장이 있었다.
처음엔 둘뿐인 팀이었고, 불편할 것 없었다.
팀장을 이해하지 못할 순간이 있어도
“괜찮아, 내가 조금 더 하면 되지.”
이렇게 넘겼다.


문제는 신입이 들어오고 나서였다.
교육은 팀장의 역할이었지만
신입은 첫날부터 야근을 했다.
한 달 내내, 매일.
팀장도 신입도 힘들어했고, 결국 내가 나섰다.

내가 교육을 맡자 팀 안의 다른 실무는 누구 몫이 되었을까.
또 나였다.

그제야 알게 됐다.
이건 팀장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이 흐릿한 조직,
그리고 “책임감 있는 사람에게 모든 무게가 몰리는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나는 단지 그 구조 속에서 가장 빨리, 가장 많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계속 짊어질 이유는 아니었다.


어느 날 팀장에게 물었다.
“제가 교육을 맡았으면, 팀장님은 실무를 맡아주시면 어떨까요?”

돌아온 대답은 “나는 손이 느리고, 나이가 있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나는 또다시 남이 내려놓은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있었구나.

그리고 더 이상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 책임을 내려놓는다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맞다.
나는 그 어려운 일을 드디어 했다.

퇴사는 도망이 아니라
내 삶의 경계선을 다시 긋는 일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내 몫이 아니다.”
“이 책임은 더 이상 내가 가져서는 안 된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숨이 쉬어졌다.


남편에게 퇴사를 말했을 때
그는 늘 했던 그대로 “그래, 괜찮아”라고 말했다.

예전엔 그 말이 무책임하게 들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 사람에게도 책임이 생겼다는 걸,
이제는 나 혼자 짊어지는 싸움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책임을 내려놓자
누군가는 책임을 함께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퇴사한 지금, 나는 한 가지를 깨닫는다.

책임을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진짜 내 삶에 책임을 지는 첫걸음이었다.

누구의 빈틈을 메꾸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
이제 그 역할을 내가 하기로 했다.


잘 해낼 것이다.
이번엔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 책임질 것이니까.


이전 01화나는 왜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해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