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비 분수에 첫 번째로 갔을 때, 아뿔싸 우리 중 누구의 주머니에도 동전 한 닢이 없었다. 로마에서 여행자들이 트레비 분수에 가는 이유는 어깨너머로 동전을 던지기 위해서, 그래서 로마에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함인데 말이다. 우리는 웅장한 분수 앞에서 다른 많은 여행자들이 어깨너머로 동전을 던지면서 사진 찍는 것을 구경만 하다가, 다음 날을 기약하며 돌아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뜬 우리는, 가장 먼저 트레비 분수에 가서 동전을 던지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트레비 분수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우리는 세수도 안 하고, '츄리닝 룩'으로, 아침 산보를 시작했다. 같은 곳을 며칠 동안 지나다녔더니, 숙소도 이젠 우리 집 같고 미로 같던 골목들도 그냥 우리 동네 같아서 이제는 구글맵을 켤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여행자들이 없어 고요한 아침의 골목길을, 가게문을 열 준비를 하는 사람들과, 또 밤새 더럽혀진 골목길을 청소하는 차들과 마주치면서 걸었다. 그래도 카푸치노는 마셔주고 하루를 시작해야 하니까, 가는 길목에서 이른 시간에 문을 연 자그마한 카페를 찾아들어갔다. 들어가 놓고 보니 카페긴 카페인 것 같은데 아무런 실내 인테리어가 없어서 놀랐다. 그런데 또 먹음직스럽게 진열된 크로와상을 비롯한 각종 빵들의 메뉴판의 가격표를 보니 너무 저렴해서 한번 더 놀랐다. 아, 드디어 현지 사람들만 아는 저렴한 맛집을 발견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침을 흘리며 각자의 취향에 따라 빵과 음료를 주문했다.
그런데 주문한 음료를 받으면서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세 번째로 놀랐다. 카푸치노와 핫초코를 내려주는 이가, 우유 거품 위에 초코잼과 딸기잼을 붓 삼아 그냥 먹어 없애기가 너무 아까울 정도로 예술적인 캘리그래피 작업을 즉석에서 펼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고, 우유 거품 캘리그래피 장인의 인스타를 팔로우하고 태그 하느라 바빴다.
그 모든 요란한 의식을 마치고 드디어 아름다운 작품을 맛보았을 때, 우리는 네 번째로 또 놀라고 말았다. 아니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어떻게 이렇게 맛이 없을 수가!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라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데, 웬만큼만 맛이 있어도 이렇게 예쁘면 조금은 맛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캘리그래피 장인과 이때껏 나눈 눈웃음과 감탄사들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웃으면서 음식을 남김없이 먹고, 또 맛있었다고 인사하면서 나와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20여 년 전의 트레비 분수의 기억도 분수 그 자체가 아니라 '너무 맛없는 피자'였는데, 내가 그걸 깜빡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날을 또다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지금도 그 장인의 인스타를 팔로우하고 있다. 그런데 가끔 인스타를 통해 그의 솜씨를 또다시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 감탄스러워서, 내가 기억하려는 맛과는 상관없이 그저 '좋아요'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 그래 맛이 좀 없으면 어떠냐, 다시 생각해 보면 로마에서 가본 중 가장 싼 집이었으니 장인의 솜씨 관람료라고 치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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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놀랍도록 맛없는 음식 품평을 하면서 몇 걸음을 옮겨 바로 트레비 분수에 도착한 우리는 또 놀랐다. 전날 우리를 매료시켰던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던 분수의 물줄기는 멈춰서 있고, 분수 옆에는 경찰차와 커다란 작업트럭 그리고 현금 운반 차량 등이 어수선했다. 무슨 일인가 다가가 보니, 작업자들이 펌프와 호스가 연결된 기계로 분수 안에 쌓인 동전을 긁어내는 중이었고 분수에 가까이 갈 수 없도록 접근 금지 줄이 쳐 있었다.
구글로 검색을 해보니 트레비 분수의 영업시간은 아침 9시로 되어 있다. 우리는 15분이나 미리 도착해 버린 것이고, 이미 맛없는 카페에서 아침도 해결한 터라 달리 갈 곳도 없어서 '15분쯤이야'라며 수다를 떨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당연히 그들의 동전 수거작업을 자세히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허술해 보이는 기계가 동전만 빨아들이고 물은 다시 뱉어내는 것도 신기했는데, 작업복을 입고 왔다 갔다 하는 여러 명의 사람들 중 오직 한 명만 실제로 일하고 있는 모습도 신기했고(그러나 나중에 보니 우리가 가는 대부분의 곳에서 그런 식으로 일을 하더라!), 그런데도 일하는 사람이나 옆에서 수다만 떠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나 모두 유쾌하고 즐거워 보이는 것은 더욱 신기했다.
한국보다야 로마의 겨울이 따뜻하긴 하지만, 그래도 겨울이고 게다가 이른 아침이고 거기에다가 분수 물 앞에 서 있으려니 점점 몸에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9시 15분. 구글이 알려준 영업 시작 시간인 9시가 넘어갔는데도, 대체 일을 하는 건지 웃고 떠드는 건지 모르겠는 사람들은, 이젠 우리 말고도 분수를 보러 온 여행자들이 꽤 있는데도, 계속 같은 속도로 느긋할 뿐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반면에 우리 셋은 초조해져서, 주머니 속에 준비해 온 동전을 만지작거리면서 대책 회의를 시작했다.
"어떡하지? 인제 추운데..."
"그러게 (호스가 쓸어간 쪽을 가리키며) 저쪽에다가 그냥 던질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해놨는데, 던져도 되나? 저기 경찰도 있는데..."
"게다가 동전을 던지자마자 저 기계가 쓸어가 버리면 너무 허무하잖아."
"좀 빨리 간들 어때?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쓸려 갈 운명인데 "
"그러면 로마에 다시 못 오는 거 아냐?"
"에이... 설마, 어차피 다 뻥인데... 오고 싶으면 그냥 또 오면 되지"
그렇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다는 건 어차피 미신이다. 그런데 미신이란 건, 그걸 따르지 않는 이의 기분을 찜찜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갖기에, 또한 미신이다. 우리처럼 분수가 작동하기를 기다리던 몇몇 여행자무리들은 잠시 기다리다가 사진을 찍고 자리를 뜨는데, 우리는 전날의 동전이 모두 수거된 순수한(?) 분수 속으로 맨 처음 동전을 던져 넣겠다는 일념을 불사르며,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분이 더 지나도록 그들은 계속 웃고 떠들기만 하는 게 아닌가. 더 그러고 있다가는 동태가 될 것만 같아, 우리는 세 번째 방문을 기약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수거 작업은 대체 몇 시에 끝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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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을 지키는 데 여유로운(?) 로마 사람들은, 길을 건널 때도 신호'따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보행자 신호에 빨간불이 들어와도, 건널목이 아니어도 (조금만 더 가면 저기 건널목도 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거침없이 찻길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자동차를 향해, 칠 테면 치라는 듯!) 그런데 달려오던 차들은 그런 사람들을 보고 속도를 서서히 줄이지 않는다. 차들은 사람들 바로 코 앞까지 와서 (빵빵대거나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하지도 않고) 그저 얌전히(?) 급정거를 해 준다. 그 모습이 내겐 마치 차들이 사람들을 향해, '어디 건널 테면 건너봐, 어쭈 건너려고? 용기 있네, 그럼 그러셔!'라고 말하는 듯했다.
우리에게 처음 며칠은 길을 건너는 일이 제일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피곤한 일이었던 것 같다. 분수에 동전을 넣는 것과 달리, 차들이 쌩쌩 달려오는 길로 제일 먼저 뛰어들 용기가 없었던 우리는 매번 길을 건널 때마다 몸을 던져 달리는 차를 멈춰줄 용감한 그 누군가를 기다려야만 했기에. 기다리던 용감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따라 재빨리 규칙을 어기는 쾌감을 맛보면서, 이럴 거면 신호등은 왜 만들어 놓았을까 궁금해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난 뒤에는 우리도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인 양 자연스럽게 무단횡단을 하면서 아무런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로마 사람이 다 된' 어느 날 또 무단횡단을 하던 중에,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는 둘째가 이런 말을 툭 내뱉었다.
"여기 있으니깐, 그동안 내가 열심히 한 일들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세상 다 살아본 사람들이나 할 법한 소리가 열여섯 살 아이의 입에서 나와 좀 당황한 나는 그 순간에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냥 혼잣말처럼 했던 것이니, 누군가의 특히나 (옛날 사람인) 엄마의 대답을 바라고 말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들었던 나의 뇌리에는 그 말이 계속 맴돌아 응답하기를 바라기에, 내 대답을 '읽을'지도 모르는 먼 훗날의 상상 속 딸에게 나는 그 로마의 어느 길목에서 만난 카라바조의 그림을 내밀어 본다.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도피 중인 성가족에게 천사가 나타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천사의 밝은 얼굴과 몸 쪽에서는 아버지 요셉이 똑바로 앉아 천사를 향해 악보를 들고 있다. 반면 어둡게 채색된 천사의 날개가 향한 쪽에서는 아기인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곤히 잠들어 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고난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려면, 이런 밝음과 어두움의 조화가 필요할 것이다. 둘 다 잠들면 외부에서 위험이 닥쳐올 것이고, 그렇다고 모두가 긴장 속에서 깨어있으려면 빨갛게 충혈된 눈은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이고 서로에게 신경질적이 되어 외부의 위기가 닥치기도 전에 내적인 파국에 이를지 모른다.
잘잘한 사기도 잘 치고, 약속시간을 가뿐히 무시하고, 무단 횡단도 잘하는 용감한 로마 사람들은 어쩌면 그늘진 천사의 날개 쪽에서 좀 자두는 게 어떠냐고 몸과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로마에 즐비한 웅장한 유적들 이를테면 판테온과 콜로세움과 바티칸은 결코 어두운 잠 속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런 어두운 잠이 없었다면 결코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삶에서 뭔가가 부질없다고 느껴지는 건, 그게 정말 그 자체로 부질없는 게 아니라 다만 거기에 너무 치우쳐 살아가고 있었다는 뜻일 게다. 그러니 로마의 용감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지금 얼마나 밝음에만 치우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지 알려주는 표식이지, 밝음을 중요시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 자체가 부질없다는 표식은 아니지 않을까?
*
세 번째로 갔을 때 우리는 수많은 여행자 틈에서, 그들처럼 '다시 로마에 오기를!' 빌면서, 트레비 분수 속으로 동전을 던져 넣었다. 미신이라더니, 그것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 우리는 남은 동전으로 발걸음이 멎는 곳다마 만나는 성스러운 성당 안의 촛불을 밝혔다. 그리고 신자도 아니면서, 그 앞에 서 성모 마리아를 따라 혹은 참회하는 마리아를 따라 눈을 감고 빌었다.
'제발~ 언젠가 또다시 로마에 오게 해 주세요!'
언제나 느린 나는, 이제야 거기에 또 늦은 기도 하나를 보태본다.
'일상의 삶이 밝음으로 치우칠 때마다, 그늘 속 달콤한 휴식 같은 '자기 자신의 로마'를 찾아내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