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여행지의 '전망대'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로마와 피렌체에서는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졌다. 그 전망대가 대성당들의 쿠폴라라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는데, 겉보기에는 그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저 높은 지붕 꼭대기에 이르는 길은 대체 어디에 어떤 식으로 숨어있는 걸까. 게다가 그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오로지 두 다리로 걸어야만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케이블카 같은 것에 수동적으로 매달린 채,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나의 예상은 항상 빗나간다.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의 높이는 138 미터라고 한다. 피렌체 대성당의 높이는 85 미터라고도 한다. 그러나 숫자는 내게 그저 숫자일 뿐, 수많은 높은 건물을 보아온 내 눈으로, 겉보기엔 둘 다 별로 높아 보이지 않았다. 예배당 안에서 올려다본 돔은 아름답고 웅장했을 뿐, 아찔하진 않았다. 그러나 예배당의 돔 가까이에 이르러 아래의 예배당을 내려다보는 건, 내가 신이 아니라 그런가, 정말 오싹했다. 만일 그 높이의 산이라면 수많은 언덕과 바위와 나무가 받쳐주었을 것이고, 만일 그 높이의 케이블카라면 유리와 쇳덩어리 안에 들어가 보호막을 쳐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배당의 둥근 돔 바로 근처의 폭 좁은 통로에서 내려다보이는 예배당은 그저 아득할 뿐이다.
이런 아찔함을 통과하고 나자, 이번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미로 같은 길을 '끝없이' 걸어야 했다. 물론 그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 그러나 좁고 구불구불해서 한 치 앞만을 보며 올라가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런 예측을 할 수 없기에 실제로 끝이 없는 무한처럼 느껴졌다. 나는 헉헉거리며 부지런히 앞에 가는 사람들을 따라갔다. 어차피 외길이고, 다른 곳으로는 못 가도록 화살표가 되어 있기에 길을 잃을 위험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건 이성적인 생각일 뿐, 그들이 사라지면 길을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 아니면 그런 길을 외따로 걷는다는 게 그냥 좀 두려웠다.
그러나 460 계단이 넘는다는 피렌체의 쿠폴라 오르는 길에서는, 중간에 잠깐잠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를 추월하는 건장하고 유쾌한 젊은이들과 옷깃을 스치면서, 또 나처럼 멈춰 선 비슷하거나 더 나이 든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눈웃음도 나눌 수 있었다. 인생길에서도 헉헉대며 계속 전진만 하는 것보다는 때때로 멈춰서는 게, 외로움과 두려움을 쫓는 방법일 테지.
그렇게 쿠폴라 꼭대기에 오르니, 사방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아찔하고 두렵고 육체적 한계를 경험했던 그 모든 순간들은 순식간에 잊을 수밖에 없다. 물론 발 바로 아래는 여전히 아찔하다. 그래서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 쿠폴라 꼭대기에는 새장처럼 안전망이 쳐있다. 그러나 그 철망 때문에 그림 같은 풍경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창살 사이로 손과 카메라를 들이밀어야 한다. 만약 창살 아래로 폰을 떨어뜨리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들자 손이 진짜로 더 떨려와서, 나는 사진 찍던 폰을 정말로 떨어뜨릴 뻔했다. 다행히 피렌체 대성당의 쿠폴라에는 창살이 없어서, 사방으로 트인 경치를 오히려 더 안전하게 감상하고 촬영할 수 있었다. (물론 경증의 고소공포증을 호소하던 큰 아이는 쿠폴라 벽에만 찰싹 달라붙어 있었지만!)
대성당 쿠폴라 위에 서서, 마치 신이 아래 세상을 굽어보듯, 모든 걸 내려다보다가 나는 그게 참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0층이나 되는 빌딩도 수두룩한 세상에서, 고작 성당 지붕보다 높은 건물이 없다는 건 사실 요즘으로선 그건 굉장히 신기한 일이 아닌가? 아무리 관광수입으로 살아가는 곳이라 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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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피렌체의 골목길을 걸어 다니는 동안에는 시내에서 가장 높은 쿠폴라의 둥근 지붕을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둥근 지붕을 보면 볼수록, 나는 엉뚱하게도 그들의 불편한 비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엔 집을 떠나면 가장 불편하고 그래서 가장 그리워지는 게 다름 아닌 우리 집 비데다. 비데를 사용하게 된지 고작해야 십년일 텐데, 내 몸은 거기에 길들고 의존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버튼만 누르면 적절한 온수와 수압으로 쾌적한 '일 보기'를 가능하게 해주는 우리 집 비데와는 천지차이로, 그들의 비데는 그냥 변기와 비슷하게 생긴 세면대에 수도꼭지가 하나 달려있을 뿐이다. 불편한 그 비데를 잘 써보려고 시도하는 내내, 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우리의 비데'맛'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우리 돈보다 훨씬 비싼 '유로'의 나라에서, 대체 왜 이런 비데를 쓰는 것인가.
사실 로마와 피렌체에 머무는 동안 불편했던 건 비데만은 아니었다. 쿠폴라의 둥근 지붕보다 낮아야만 하는 이곳의 집들은 대체로 수백 년씩 묵은 옛 건물이다. 물론 외관을 새로 칠하고 내부를 보수하기는 했어도, 오래된 숙소 건물의 계단이나 난간의 돌에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처음엔 때인가 싶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본 결과 오래된 돌 자체의 색이었다. 현대식 인테리어를 입히긴 했어도, 건물의 골조들 역시 옛것 그대로일 것이다.
우리가 묵은 작은 (이름만) 호텔에서 셋이 연달아 샤워를 하면, 마지막 사람은 끝에 가서 냉수 샤워를 했다. 또 고풍스러운 욕실 벽에 매달린 드라이어는, 우리 집에서 쓰는 드라이어의 가장 약풍보다도 못한 바람을 그마저 아코디언처럼 생긴 드라이어 줄의 이리저리 난 틈으로 분산시키며 뿜어줬다. 난방 역시 우리가 하고 싶을 때가 아니라, 이른 새벽과 저녁 무렵 단 두 차례만 작동했다. 우리에게는 그런 난방기를 켤 권리는 없고, 꺼버릴 자유는 있었다.
그런데 그런 숙소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나는 감탄하고 말았던 것이다. 편리한 우리 집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파란 하늘이, 훨씬 더 넓게 펼쳐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건 모든 집들이 대성당의 쿠폴라보다 낮아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낮은 지붕 위에는 가녀린 안테나들이 있는 듯 없는 듯 꽂혀있었는데, 그 때문에 내게는 '혹시 이탈리아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없나?'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검색해 보니, 이탈리아는 원자력 발전소를 일찌감치 폐쇄한 나라였다. 이들은 1986년 체르노빌의 원폭 사고 후에 국민투표를 실시해 90%의 찬성으로 당시 가동 중이었던 원전 4기를 모두 폐쇄했다고 한다.
그런 사고의 충격을 잊을 무렵인 20년 후 원전 재가동 논쟁이 일어났지만, 마침 그때는 2011년이었고 또 마침 후쿠시마에서 쓰나미로 원전의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났고, 그래서 또다시 실시한 투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촛불집회로 대통령을 몰아낸 역사를 가진 우리는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자거나 폐쇄하자거나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의견을 표명할 기회를 아직 갖지 못하는 나라, 싸게 전기를 쓰게 해 주는 편리하기만 한 원자력 발전소가 정말 위험한지 어떤지는 잘 알기 어려운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탈리아보다 소매치기는 적은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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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원자력 발전소 대신 수천 개에나 달한다는 소규모 수력 발전소들에 의지해 살아가는 이탈리아인들이 모두 무슨 대단한 생태주의자여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주 수입원인 관광업의 근원이 되는 문화 유적들이 파괴될까 봐 그랬을지 모른다. 또 그들 모두가 신앙심이 깊어서 쿠폴라보다 높은 건물을 짓지 않는 게 아니라, 돈이 되는 유적들이 자꾸만 발굴되는 땅을 높은 건물을 위해 깊게 파헤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사람은 자기가 배치해 놓은 사물에 의해 다시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재형성하게 마련이니, 그들의 신심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과는 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곳에서는 가장 위층에 오를 수 있는 이들이 하늘 풍경과 따뜻하고 밝은 햇살을 독차지한다. 그러나 성당의 쿠폴라보다 낮은 지붕아래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에게 무상으로 받는 그런 선물을 더 골고루 함께 나눌 수밖에 없다. 그런 상태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신을 믿건 안 믿건, 바로 그런 걸 '종교심'이라 부를 수 있는 게 아닐까. 좁은 골목길의 낮은 지붕 아래에서 불편하게 머무는 며칠 동안, 내 귀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쿠폴라의 종소리가 내려앉았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으로 돌아와 보니, 매일매일 그런 은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의 마음 역시, 신을 믿건 안 믿건, '종교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십수 년 만에 경주에 다녀왔다. 어디가나 비슷하게 볼 수 있는 황리단 길과 경주 남산보다 높이 솟아있는 경주랜드를 보니, 쿠폴라보다 낮은 지붕들과 그 사이에서 잔잔한 즐거움을 주던 회전목마가 생각났다. 경주 앞바다의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아직 원전 5기가 돌아가고 있고, 석굴암을 품고 있는 토함산 너머에는 경주 사람들 90%의 찬성으로 유치되었다는 방사능 폐기장이 있다. 우리 머리 위에서는 아직도, 용감하게 위험을 무릅쓰도록 정신을 잃게 만드는, '편리함과 발전'이라는 쿠폴라의 종소리가 힘차게 울리고 있는 것인가!
** 이탈리아의 쿠폴라와 비데, 또 비데와 원자력 발전소 간에는, 필자의 연상, 추측, 느낌과는 달리, 실상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을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자동 비데를 설치할 수 없는 이유가 물 속의 석회질이라는 '썰'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