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틈만 나면 여행책을 들여다보던 때가 있었다. 아마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상황의 보상심리였을 것이다. 그때 ‘론X 플X닛’ 시리즈가 내겐 가장 흥미진진했는데, 그 안에는 여행지의 아주 세밀한(그때는 아직 구글지도 같은 게 없던 시절이었다) 지도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들이 놀랍도록 자세하고도 빼곡하게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두툼한 ‘전화번호부’처럼,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언제나 새로운 정보를 찾아낼 수 있는 그 몇 권의 책들은 내게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 책에서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체험으로 ‘쿠킹 클래스’를 소개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 책의 저자들은 주로 서양 여행자들인데, 동양의 어떤 지역을 여행한다면 반드시 ‘쿠킹 클래스’를 체험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다면 그곳을 진정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여행 중 ‘쿠킹 클래스’라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여행지에서 맛집을 찾아가 사 먹는 게 아니고, 또 여행지의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사발면과 고추장을) 싸 가서 먹는 것도 아니고, ‘쿠킹 클래스’라니?
그때까지 내게 여행이란, 최대한 짧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효율적으로 많은 곳을 돌아보는 가성비가 중요한 것이었기에, 여행지에서 반나절이나 하루의 시간을 ‘쿠킹 클래스’에 들이는 일은 왠지 낭비 같았다. 게다가 나는 그때 결혼해서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하기 싫은 날에도 매일매일 의무적으로 쿠킹(?)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런 체험은 결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여행지에서 쿠킹 클래스 체험’이라는 관념은 내게 깊은 인상을 줘서 아마 내 무의식 속에 깊게 드리워져 있었던 것 같다. 손바닥 만한(!) 피렌체에서 일주일은 머물러야겠다고 결정했을 때에, 나는 자동적으로 그곳에서의 ‘쿠킹 클래스’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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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국의 낯선 마을에서 체험할 쿠킹 클래스의 이미지를 미리 그려보았다. 서로 전혀 다른 곳에서 모인 (다양한 문화와 인종의) 여행자들이 처음으로 그 마을의 독특하고 낯선 요리를 배우면서, 서로 도와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그렇게 드디어 완성된 요리로 왁자지껄 파티를 하며 즐겁게 맛을 본다. 물론 같이 사는 사람들과 한국말로도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내가, 서툰 영어로 세계인과 대화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다. 나는 그저 이국의 땅에서 우연히 모인 다른 이들의 몸짓과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면) 듣고 그 낯설지만 화기애애할 분위기를 즐기면 된다.
피렌체 도착 후 마침 비가 주룩주룩 내려 어딜 가기에도 애매한 날, 또 마침 우리가 묵던 호텔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길래 찾아간 쿠킹 클래스에서는, 예상보다 젊은 (남자) 요리 선생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요리 재료는 고작 네 세트였다. 선생은 우리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며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를 하더니, 우리 말고도 오늘 쿠킹 클래스를 예약했던 또 다른 (달랑) 한 명이 오지 못하겠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원치 않게, 우리만의 ‘프라이빗’한 요리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날의 요리는 세 가지 종류의 파스타였고, 수업은 밀가루 반죽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나도 집에서 파스타를 해 먹기도 했지만 그건 밥 하기 좀 귀찮은 날에, 이미 공장에서 만들어 놓은 면을 사다가, 사재 소스에 토마토와 채소를 조금 더 추가하는 식으로 간단히 해 먹던 음식이 아닌가. 그러나 파스타의 본고장 이탈리아의 파스타 수업이니, 파스타 면과 소스 모두 처음부터 직접 만드는 것이 당연했다. (밀부터 재배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게다가 고작 세 명인 학생 중 나이도 가장 많으면서 요리 경력이 오랜 학생이기에, 젊은 선생은 나를 주시하는 눈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정말 요리 수업만큼은 ‘열심히’ 받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냥 분위기를 즐기며 묻어가고 싶었을 따름인 나는, 온 힘을 다해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고 있지도 않은 장인 정신과 세심함을 쥐어짜가며 밀대질을 해야만 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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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외할머니가 밀가루 반죽을 밀어 칼국수를 만들어 주던 모습을 그저 보기만 했던 나로서는, 요리 선생의 반죽 시범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젊은 남 선생과 나의 손아귀 힘도 천지 차이일뿐더러, 이 나이가 되어 처음 써보는 밀대로 일정하게 반죽의 두께와 모양을 만들어 내기도 어려웠다. 그래, ‘이탈리아 정통 파스타 만들기’니 당연히 우리에겐 어렵겠지. 그래도 육체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건, 이렇게 ‘프라이빗’하게 계속 나를 바라보면서 (한국말이었다 할지라로 괴로웠을 텐데)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선생과 몇 시간을 보내며, 나 또한 무슨 말이든 (한국말이었다 할지라로 괴로웠을 텐데) 영어로 이야기를 나눠야만 한다는 데에서 오는, 정신적 어려움이었다.
영국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젊은 선생의 영어는, 비록 발음이 좀 알아듣기 어렵긴 해도, 유창했다. 그러나 매일 의무적으로 요리를 하며 살아가는 나의 영어 실력은, 십수 년 전 토익시험 정도 치른 게 전부다. 아이들 역시, 발도르프 같은 교육에나 심취하고 ‘사교육 걱정 없는 X상’ 같은 단체를 지지하고 후원했던 엄마 덕분에, 어릴 적부터 산과 들로만 뛰어다녔기에 원어민과 영어로 대화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우리 셋의 MBTI는 모두 I(내향)다. (남편마저도 I다!) 다른 이가 먼저 말을 걸어오면 최선을 다해 대응하지만, 결코 자기가 먼저 다가가거나 대화를 먼저 시도하지는 않는 우리 가족은 넷이 함께 있을 때에도, 각자의 내면세계에 충실하기 때문에, 마치 아무도 없는 양, 매우 고요한 경우가 많다.
그런 우리는 요리 선생이 시범을 보이고 나면 그걸 따라 하면서, 동시에 각자의 내면세계로 침잠해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선생처럼 더 예쁘게 더 완벽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러느라고 사방이 고요해지면, 요리 선생은 그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나름 재밌고 유익한 이야기를 생각해 내서, 유창한 그러나 이상하게도 잘 들리지 않는(아마 이탈리아식 강세 때문이리라고 핑계를 대본다) 영어로 계속 혼자서 말을 이어간다. 그러면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러운 데다가, 비록 MBTI는 I지만 나이도 가장 많은 데다가 말을 걸어오는 이들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지닌 나는, 초반에는 그의 말을 알아듣고 그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그에 대해 일일이 응답을 해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나에게 낯선 발음을 더 많이 쏟아내고, 그런 그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것 같은 (숨길 수 없는) 나의 표정 때문에 그는 다시 더 많은 말을 하고, 그러면 나는 내게 쏟아져내리는 더 많은 말을 또다시 더 많이 못 알아듣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순간에 이르러 나는, 그의 말을 그냥 '안' 알아듣겠다고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실은 포기했다 ㅠㅠ) 대신 나는 그의 말을 (마치 음악처럼) 그냥 받아들이면서 즐기기로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순간부터 나를 괴롭히던 정신적 어려움이 사라지면서, 그 요리 선생이 마냥 기특하고 귀여울 뿐이었다.
젊은이가 (진짜인지 아니면 그저 상술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릴 적 요리해 주시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쿠킹 클래스를 열고 있는 것도 기특하고, 내가 본 보통의 젊은 남자들 같지 않게 요리를 하면서 동시에 주변 정리를 계속 깔끔하게 해내는 것도 기특하고, 따라 하기 어려워하는 우리에게 몇 번씩 시범을 보여주면서 그저 '잘했다 훌륭하다'라며 인내심을 갖고 웃어주는 것도 기특했다. 열두 명이 정원인 수업에 달랑 세 명이 와도, 그 셋이 자기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고 대꾸를 제대로 안 해줘도, 친절하게 웃으면서 최선을 다해 자기 할 일을 해내는 것도 기특했다. 마냥 침묵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나의 최선을 다해 내가 영어로 할 수 있는 몇 마디의 어떤 말들을 두서없이 뱉어내긴 했겠지만, 실은 그렇게 응답한 내 모든 말의 의미는 그저 '당신, 참으로 기특하도다'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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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낱말은 각각 저마다의 모양과 의미와 뉘앙스를 품고 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최선을 다해 단어와 표현을 골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을 재현해 보려고 애쓰면서,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말과 표현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다른 이와 말로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 무한한 시간을 내어줄수 있다면, 서로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소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짧은 순간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대화는, 지나고 보면 대체로 단어의 선택과 말하는 어조와 내가 그 말을 통해 하려 했던 의도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 재밌는 건, 그런 오해와 불통의 원인이 무엇이었나를 되짚어보면, 대게 어떤 단어의 뜻 하나를 (꼬투리 삼아) 붙들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속에 등장한 특정한 하나의 말과 그 의미와 의도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보통은 오해의 늪으로 더 빠져들고 만다.
읽기와 쓰기를 즐거워하는 나는,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는 노래를 듣는 게 대체로 어렵다. 그런 노래를 듣다 보면 노래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노랫말을 분석하거나 그 뜻과 주제와 그 말이 지닌 의도와 가치관과 그걸 들을 이들이 받을 영향까지 무의식적으로-저절로 이미 생각하고 있으니, 대체 무슨 노래를 듣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소통을 시도하는 어떤 순간은, 책 읽기보다는 노래를 듣을 때의 마음가짐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상대의 말을 한 토막씩 자르고 분석하고 단편단편을 이해해서 종합하려 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음조와 리듬과 빠르기를 느끼고 변이 되는 주제와 반복구와 클라이맥스를 알아채기.
노래를 제대로 못 듣는 나는 평소 이런 마음을 먹질 못하는데, 그 요리 수업에서는 다행히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노래처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시작할 때의 곤란했던 마음과 달리, 즐겁게 수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때 그 젊은 요리 선생은 내가 실없는 말들 속에 내내 숨겨둔 '당신, 참으로 기특하도다'를 알아챘을지 궁금하다. 또 그 젊은 요리 선생이 내가 알아들을 수 없던 수많은 말속에 숨겨두었을 말을, 나는 제대로 알아들었던 건지도 궁금하다. 아마도 그건 '멀리서 온 내성적인 당신들, 참으로 고생이 많다'일 것 같지만, 그와 다시 만나 정답을 맞혀 볼 수는 없으므로 그저 평생 잊지 못하고 궁금해할 밖에!
아참, 쿠킹 클래스에서 우리가 만들어 낸 세 가지 정통 파스타의 맛은 어땠느냐면, 아, 정말 '너무너무너무' 짜고 느끼했다! 우리의 친절한 요리 선생은 '멀리서 와 고생하는' 우리를 위해 자신이 아끼는 비싸고 좋은 치즈를 아낌없이 갈아 넣어 주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치즈가 평소 우리가 먹던 치즈보다 훨씬 짜고 훨씬 느끼하다는 걸 그 때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이탈리아 정통의 맛을 알려주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이 또한 '너무 기특해서', 나는 그를 결코 말릴 수가 없었다. 그렇더라도 또 이렇게 '프라이빗'하지만 않다면,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묻어갈 수만 있다면, 새로운 노래를 듣기 위해서라도, 나는 또 다른 '쿠킹 클래스'를 찾아갈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