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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oreau Aug 18. 2023

인상아 기다려라, 내가 좀 보자꾸나!

에픽테토스 느리게 읽기


에픽테토스의 말대로 '인상을 음미'하려면, 우선 그가 말하는 '인상'이 무엇인지부터 음미해 봐야 할 것 같다.


"우리에게 생기는 인상에는 네 가지가 있네. 즉 1) 존재하면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2)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거나 3)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거나 4)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네."


지금은 무엇보다 '갬성'이 중요한 시대다. 내 느낌이 거의 진리로 믿어지며 다른 무엇보다도 행복하고 좋은 느낌을 추구하며, 그런 느낌을 위해 아낌없이 지불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픽테토스를 비롯한 의심 많은 철학자들은 그렇게 당장에 느껴지는 느낌을 다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느낌에 대해 그냥 무작정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들의 의심에는 철학자다운 철저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


"인간 신체가 외부 물체로부터 자극받아 변화된 관념은 인간 신체와 외부 물체의 본성을 포함한다. 이것으로부터 인간의 정신은 자기 신체의 본성과 더불어 극히 많은 물체의 본성을 지각한다. 또한 우리가 외부의 물체에 대해 갖는 관념은 외부 물체의 본성보다도 우리 신체의 상태를 보다 많이 나타낸다." (스피노자, <<윤리학>> 2부 정리 19의 따름 정리 1,2)


느낌이란 외부의 사물과 마주친 내 신체가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내 몸과 내 정신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각자의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인 이 느낌이란 건,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외부 사물이 지닌 실제 그대로의 특성을 감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마침 휴가 계획이 잡혀있는 날에 내리는 장대비와 아무런 일 없이 집에서 뒹굴거려도 좋은 날 쏟아지는 장대비에 대해 우리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이렇듯 나를 둘러싼 조건과 내 신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외부 사물에 대한 느낌을 철석같이 믿을 수는 없다.


*


그렇다면, 우리의 감각이라는 건 언제나 우리를 속이므로 이 세상에 믿을 건 하나도 없나? 그러므로 주관적인 내 느낌을 (따라서 주관적일 다른 사람의 느낌 역시) 완전히 무시하고 살아야 하나? 아마 지금도 그런 주장을 펼치는 이들이 있을 것인데, 에픽테토스 당시의 회의주의자들도 그랬던가보다. 이 세상에 객관적인 사물-진리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불완전한 감각을 지닌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따라서 보편적 진리란 아무것도 없으니 세상의 아무것도 믿지 말라고 말이다. 냉정하나 유쾌한 노예 선생 에픽테토스는 그들을 향해 이런 우스개 소리를 남겨놓았다.


"인간아,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음식을 먹을 때 너의 손을 어디로 가져가느냐, 너의 입으로 아니면 눈으로?

인간 삶의 구심점은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내가 이 사람들의 노예였다면,...'목욕탕에 올리브기름을 조금 부어라, 어린 노예야' 나는 생선 소스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 위에 부었을 것이네...'난 올리브기름과 구별할 수 없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것과 아주 똑같았습니다."


에픽테토스와 스피노자 같은 철학자들이, 감각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 해서 그렇다고 감각을 완전히 불신하는 건 아니다. 그 역시 철저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 만약 내가 아무것과도 마주치지 않으면, 내 안에서 감각은 생겨날 리 없을 것 아닌가? 따라서 내 느낌 속에는 물론 나에 관한 진실이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외부 사물에 대한 진실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감각이라는 '혼합물'에서 어떻게든 각각의 요소들을 '추출'하려 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진실에 다가갈 수 있지 않겠는가.   


*


그런데 왜 힘들여 그런 '추출' 작업을 해야만 하는 걸까? 논리적인 철학자들에 따르면, 사물이 서로 반응한다는 건 서로 결합 가능한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뜻이고, 그것으로 서로 결합하면 새로운 사물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자전거를 못 타던 내가 어느 날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을 때의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은, 내가 드디어 자전거와의 공통점을 찾아냈다는 걸 말해준다. 나쁜 느낌 역시 마찬가지다. 예컨대 큰 물고기에게 먹히는 작은 물고기 역시 그 둘 간의 공통점 탓에 먹힌다. 그러니 외부 사물과의 공통점 찾기는, 진실로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통해, 더 큰 능력을 위한 결합이나 (만약 내가 작은 물고기라면) 실존의 보존을 위한 회피를 가능하게 한다.


"모든 것에 공통적이며, 부분 속에도 전체 속에도 똑같이 존재하는 것은 적합하게 파악될 수밖에 없다. 이것으로부터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어떤 관념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스피노자, <<윤리학>> 2부 정리 38과 따름 정리)


"신체가 다른 사물과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신은 보다 많은 것을 타당하게 지각하는 데에 더 유능하다." (스피노자, <<윤리학>> 정리 39와 따름 정리)


우리는 (무한한 신의 서로 다른 부분이라서) 타자에 대해, 그와 나의 공통적인 본성에 대해 결코 다 알 수 없지만, (하나인 신의 부분이라서) 분명히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런 부분 부분들은, 몸에 바퀴가 없어도 자전거를 탈 수 있고 아가미가 없어도 물에서 수영할 수 있는 것처럼, 관심과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만큼 늘어날 것도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감각을 불신하는 회의주의자는 자기 의심 앞에서 멈춰 선 자들이다. 세계에 대한 의문을 멈춘다는 건, 달리 표현하면 '나는 다 알았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그는 (본인이 고백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신이라 생각하는 (자만에 빠진) 자일 것이다. 혹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면, 그는 (본인이 고백하지 않더라도) 매우 상처 입고 무력해져 스스로를 좁은 세계 에 가두려는 자다. 그러나 신의 아들이자 신의 일부인 철학자들은 거기에서 결코 멈추지 않는다. 완전하지 못한 감각을 지닌 게 인간이라면, '감각이 언제나 완벽하게 불완전하다'는 것 역시 하나의 인상일 뿐이니까 말이다.


"네가 이러한 생각으로 외적 인상에 맞선다면, 너는 인상을 압도할 것이고 그것에 의해 휩쓸려 가지도 않을 것이네. 무엇보다도 먼저 그 격렬함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네. '내 인상아, 잠시 기다려라. 네가 누군지, 네가 무엇에 대한 인상인지 내가 좀 보자꾸나. 내가 너를 시험해 보도록 하라'라고 말하게. 그런 다음, 그것이 너에게 뒤따를 모든 것을 상상하게 해서 너를 이끌도록 허용하지 않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너를 사로잡고 그것이 원하는 곳으로 인도할 것이네."


*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의심할 수 있을까? 그들의 의심은 실상, (무한한 세계-신을 향한) 사랑에서 나오는 의심이다. 그러니 그 의심이란, 우리가 누군가를 못 믿을 때 하는 의심이 아니라 누군가를 너무 사랑할 때 그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 쪽에 가까울 것이다. 특정한 인간만을 사랑하는 보통 사람들은 어느 순간, 다 알았다 여기면서 (실은 익숙해졌을 뿐이지 다 안 것은 아닌데도) 호기심을 거둔다.


그러나 무한한 신에 대해 아는 철학자들에게는, 타인은 물론이고 자기 역시 신의 일부이므로 그 안에서 알아내야 할 것이 무한하다. 그들의 단군 할아버지 격인 소크라테스는 "검토하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 말했다 한다. 그가 말한 "검토하지 않는 삶"이란, 자기 자신과 자기가 사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진 삶일 것이고, 그렇다면 그건, 세계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삶일 것이고 그리하여, 자신에게 진짜 좋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노예처럼 사는 삶일 것이다.


"감정이나 의견에 의해서만 인도되는 사람과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과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쉽게 알 것이다. 전자는 (자기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자기가 모르는 것들을 행하는 반면, 후자는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것들 이외의 것에는 따르지 않기에 자신이 가장 많이 욕구하는 것을 행한다. 그러므로 나는 전자를 노예라 부르고, 후자를 자유인이라고 말한다." (스피노자, <<윤리학>> 4부 정리 66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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