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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oreau Aug 22. 2023

습관에 맞서는 습관

에픽테토스 느리게 읽기


만약 주변에 에픽테토스 같은 사람이 실존한다면, 그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까? 아마도 인기는커녕 미움을 독차지하기 십상이지 않을까? 우리는'먹고살기' 바빠서,  '옳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겨를이 별로 없다. 행여 잠깐 고민을 했다 해도, 결정적 순간에는 '그럴듯하고 쉬운' 쪽으로 기울기 쉽다. 더 많은 이들이 가는 잘 닦인 길이라 스스로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갈 수 있으며,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더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도 있기에.


철학자(와 같은 이)를 바라볼 때에도 우리의 생각은 마찬가지로 작동할 것이다. 내가 (옳은 일도 못하고, 의지도 약해서) 철학자 보다 못한 인간처럼 느끼기보다는, 세상 물정도 모르고 옳은 소리만 늘어놓는 철학자가 백치인 쪽이 (그렇게 살지 않는) 많은 이들에게 훨씬 더 '그럴듯하고 쉬운' 생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결점) 중에서 어떤 것들은 쉽게 인정하는 반면, 다른 것들은 그렇게 쉽게 인정하지 않는 법이네.... 이런 원인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부끄럽다고 상상하는 것은 무엇이든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네. "


만약 우리가 에픽테토스와 같은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건 (무의식적으로) 부끄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생각대로 살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고 세상에서 좋아 보이는 걸 추구하는 부끄러움. 그는 생각대로 자신의 행동을 끌고 나가는 의지가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한 나약한 의지의 소유자라는 부끄러움. 폭군들이, 가진 것이라곤 펜 밖에 없는 철학자들을 추방시키는 이유도 아마, 그런 부끄러움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런데 의지가 강해보이는 철학자들이야말로, 인간이 의지가 얼마나 약한지 잘 아는 사람들이다. 에픽테토스가 강조하는 '우리에게 달려있는 일'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이렇게 저렇게 휙휙 바꾸어 행할 수 있는, 매우 자유로운 의지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행여 우리가 그렇게 오해할까봐 그는 매번 운동선수의 예를 들어가면서, 철학적 사고를 위한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연습과 훈련을 강조한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고도 훌륭한 생각과 의지를 지키기를 원하는 건, 도둑놈 심보나 다름없다.


"칭찬이 무엇이며, 비난이 무엇이며, 각자의 자연 본성이 무엇인지에 관해, 언제 누구에게서 들은 적이 있느냐? 또 어떤 종류의 칭찬을 구해야 하며, 어떤 종류의 비난을 피해야 하는가? 언제 그가 이러한 원칙에 따라서 이런 훈련 과정을 거친 적이 있느냐? 그런데 그가 공부하고 배운 분야에서는 남들보다 뛰어나지만, 훈련을 받지 않은 분야에서는 그가 다중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왜 너는 아직도 놀라는가?"


스피노자는 아예, 인간에게는 행위에서나 정신 속에서나 '자유의지가 전혀 없다'라고 대놓고 말했다. 행동은 그렇다 쳐도 정신 속에도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에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누군가가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은 두 직각의 합과 같다'라는 생각을 확신하려면  정신 속에 '삼각형'이나 '직각' 등에 대한 개념이 우선 먼저 있어야만 한다. 그러니 누군가, '나는 아주 자유롭게 생각한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자기 생각을 이끈 필연적인 과정들에 대해서 (훈련하지 않아) 무지한 것일 뿐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즉 자신의 자유의지로 어떤 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단지 그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의식하면서 그것을 결정한 원인들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의 표시이다." (스피노자, <<윤리학>> 2부, 정리 35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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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강한 의지'로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의지의 소유자가 전혀 아니고, 짬날 때마다 자기 안의 의지를 단련하는, 전혀 자유롭지 않은 이들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미리 마음먹은 대로 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은 대체로 (제멋대로 날뛰는) 분노나 정념이다. 에픽테토스는 이러한 정념을 부정적인 것으로, 그래서 마치 금지해야 하는 것처럼 언급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세밀하게 들어보면 그것들을 그저 금지하는 게 아니다.   


"네가 화를 낼 때, 현재 이 나쁨이 너에게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네가 그 습관을 강화했으며, 말하자면 너는 불에다 새로운 땔나무를 던져 넣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하네.... 화내는 일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네 습관을 키우지 말고, 습관이 먹고 자랄 수 있는 어떤 것도 습관 앞에 던지지 말라. 무엇보다 먼저 침착하고, 화를 내지 않았던 날을 세도록 하라."


철학의 '신약시대'를 연 스피노자는 우리가 제어하기 어려운 정념을 그 자체로는 전혀 악이나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신체 안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기에 그게 무엇인지 알아야 할 뿐이다. 인간들은 대체로 (무의식적으로) 정념에 휘둘린다.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 알려는 사유의 노력을 시작하면, 더 이상 거기에 끄달리지 않으리라! (무의식의 의식화) 그래서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가 '슬픔을 인식하(려하기 시작하)면 그건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다.'

 

"의지와 지성은 동일하다"(스피노자 , <<윤리학>>2부 정리 49의 따름정리)


*


에픽테토스는 조급한 이들에게 철학은 '시간이 걸린다'라고 매번 강조한다. 그 시간은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긴 시간이라도 그저 흘려보내기만 한다면, 그건 평상시 나를 장악하고 있는 '그럴듯하고 편안한' 길을 택하는 그 생각이 강화되는 시간일 뿐이다. 고된 노동으로 뒤틀린 뼈와 근육을 그대로 오래 두면, 그 상태가 굳어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러니 지금과 다르게 되고 싶다면, 어떻게든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꼼지락거리기를 시도해야 한다.  


"사물들의 그럴듯함이... 우리에게 고충을 안겨주는 습관이라면, 우리는 그것에 맞서는 치료법을 발견하도록 시도해야만 하네. 그러면 습관에 맞서기 위해 어떤 치료법을 찾을 수 있겠는가? 반대되는 습관.... 그것(고충을 안겨주는 습관)에 맞서는 반대되는 습관을 만들어 습관에 맞서도록 하는 것이네."


에픽테토스나 스피노자나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철학자들이 왜 그렇게 많은 말을 하고 또 어려운 글을 썼을까. 그건 다른 이들에게 말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실상 자기 자신에게, 끝없이 감정에 끄달려 유혹에 빠지고 싶어 하는 스스로의 정신을 향해 새겨 넣는, 정신을 운동시키기 위한 신체적 연습과 훈련이었을 것이다. 그런 글이 재미가 없어 보일진 몰라도, 그런 운동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을 따라 꼼지락대게 만드는 이상한 힘은 있다!


"우리가 우리의 감정에 대하여 완전한 인식을 갖고 있지 않은 동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올바른 생활규칙이나 일정한 생활지침을 구상하고 이것을 기억에 남겨 인생에서 흔히 마주치는 개개의 경우에 끊임없이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의 표상력은 그러한 생활규칙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 규칙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 <윤리학> 5부 정리 10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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