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로 Moreau Aug 28. 2023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단 말인가요?

에픽테토스 느리게 읽기

철학에 대해 진지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철학이라는 걸 느지막이 알게 된 게 어쩌면 다행이라 여겼다. 무엇이든 이성적으로 진지하고 냉정하게, 또 깊게 오래 생각하는 철학자들은, 결코 누군가에게 반해버리거나 사랑에 '빠져' 허우적 대지는 못하리라. 그러니 만약 나도 일찍이 그런 철학자들을 닮으려 했다면, 내 지난날의 뜨거운 마음들은 결코 불가능했을 것 아닌가. <친애에 대하여> 강의 중에 그는 이런 말을 한다.

 

"... 하지만 그들 사이에 목걸이가 다가왔네. 목걸이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의 유대를 끊는 힘이었네. 그것이 그 여자를 아내로 남아 있지 못하게 하고, 어머니가 어머니로 남아 있지 못하게 한 것이네."


사랑의 선물이 아닌, 오히려 사랑의 유대를 끊어버린 그 목걸이는 다름 아닌 그리스 신화 속 하르모니아(조화로움) 여신의 황금 목걸이다.


*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자기 어머니와 결혼해버리고 말았던 오이디푸스에게는, 딸 (그와 어머니가 같으니, 딸이자 누이라 해야 정확할 것이다.) 안티고네 말고 아들도 (역시 이들도 그와 어머니가 같으니, 아들이자 형제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둘이나 있었다. 아무도 못 푸는 수수께끼를 맞혔지만, 자기 부모는 못알아 맞혔던 그는, 자기 손으로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채 죽을 때까지 떠돌아다닌다. 그때 (착한) 딸 안티고네는 그런 초라한 장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함께 고생을 짊어진 반면, (못된) 두 아들은 아버지가 사라진 테바이에 눌러앉아 서로 번갈아가며 왕노릇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먼저 왕노릇을 시작한 형 에테오클레스는 동생이 다스릴 차례가 되자, 그를 추방해 버렸다. 배신당한 동생 폴뤼네이케스는, 자기 나라의 보물로 전해 내려 오는 '하르모니아의 황금목걸이'를 훔쳐 강대국 아르고스로 달려가, 자기 나라를 공격해 달라 청한다. 아르고스 왕 아드라스토스가 고민하자 곁에 있던 지혜롭고 용감하기로 소문난 예언자 암피아라오스는 이런 말로 왕을 만류한다.


"외국의 군대를 끌고 들어와 조국의 도시와 조국의 신들을 없애버리는 것이 과연 신들의 마음에 들고, 후세 사람들이 듣고 전하기에 아름답고 훌륭한 행동이겠구려! 제 어머니의 원천을 말리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소?" (아이스퀼로스, <<아이스퀼로스 비극전집>>)


그러나 폴뤼네이케스의 복수심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수소문 끝에, 예언자가 아내의 말에 절대복종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예언자의 아내 에리퓔레는 왕의 누이다. 서로 갈등 끝에 화해했던 왕과 예언자는 사돈의 정을 맺으며,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마다 무조건 왕의 여동생이자 예언자의 아내에게 판결을 맡기자고 평화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폴뤼네이케스는 바로 그 에리퓔레를 찾아가 목걸이를 바치면서, 제발 테바이 원정을 성사시켜 달라 청한다.


문제의 목걸이는 테바이의 시조 카드모스가 여신 하르모니아와 혼인할 때,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손수 만들어 선물한 것이다. 신의 솜씨로 만들어 낸 그 목걸이의 소유자는 평생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보장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목걸이에는 대장장이 신의 저주 또한 서려있었다. 왜냐하면 여신 하르모니아는 대장장이 신의 아내 아프로디테가, 전쟁의 신 아레스와의 밀애에서 얻은 딸이었기 때문이다.


목걸이 주인인 하르모니아는 대장장이 신의 저주를 알아채고 목걸이를 남겨 둔 채, 오래전 테바이를 떠나 행복의 나라로 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에리퓔레의 선택은 여신과는 달랐고, 결국 남편 암피아라오스를 전쟁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자기가 했던 약속 때문에, 죽을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전장으로 향하던 예언자는 아들에게, 후일 어머니를 죽여 자신의 원수를 갚을 것을 당부한다. 그리하여 암피아라오스가 원정에서 돌아오지 못하자, 에리퓔레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자기 아들의 손에 죽게 된다.


*


이야기를 읽다 보니, 사실상 목걸이가 불화를 가져왔다기보다는 이미 불화가 싹튼 곳에 목걸이가 도착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전장으로 향하는 예언자가 아들에게 '어머니를 죽이라'라고 당부하는 모습을 보라! 객관적인 업무(?)상으로는 "제 어미의 원천을 말리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했던 지혜로운 사람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역시 불화의 불씨를 더 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아내 에리퓔레가 목걸이를 선택한 것도 어쩌면, 이미 불이 붙은 불화의 씨앗이 핑곗거리를 만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와의 불화가 시작될 때, 모두에겐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이미 불화할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외적 원인들은 아마도 힘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은 왜 잘 지내던 누군가와 불화할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일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에픽테토스에 따르면, 그건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이 변한 게 아니라, 내게 있던 그의 소용이 다한 것이다.


" '그렇지만 그녀가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돌봐 주면서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단 말인가요?'

  '노예여, 그녀가 해면으로 신발을 닦을 때나 짐을 나르는 자신의 짐승을 문지를 때 하는 것처럼 너를 돌봤는지 어찌 알겠느냐? 그리고 네가 더 이상 보잘것없는 도구로도 사용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녀가 너를 깨진 접시처럼 버리지 않을 것임을 네가 어떻게 알겠는가?"


인상을 음미하는 훈련 즉 이성적 사고에 대한 훈련을 해본 적 없는 보통의 사람들은, '소용됨'과 '사랑함'을 거의 동일하게 여긴다. 그래서 30년 전에는 사랑하던-소용이 많던 사람이 지금은 미운 사람-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으로 변하는 게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므로 '소용됨'과 '사랑함'에 대한 구분을 엄밀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변하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좋은 것들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들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네. (사람은 누구나 좋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마음에 담아두려 하니까)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쁜 것들로부터 좋은 것들을 구별할 수 없고, 또 양자로부터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들을 구별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가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은 단지 지혜로운 자에게만 속하는 것이어야 한다네."


*


그렇다면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진실한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 역시 외적인 것들이 아닌 (자꾸 반복되어 또 좀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 달려있는 것인 의지에 대한 사랑뿐이다. 그가 어디에 자신의 이익을 두고 있는가? 그녀가 나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 노우노우, 그것은 그의 내적 의지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자기에게 달려있는) 스스로에게 성실함을 이익이로 여기는 이는, 그녀에게도 (자기 자신에게 하듯) 항상 성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자기에게 달려있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 것을 이익으로 여기는 이는, 그녀에게도 (자기 자신에게 하듯) 항상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자기에게 달려있는) 고귀한 것을 존중하여 스스로 고귀해지고자 하는 이는, 그녀에게도 (자기 자신에게 하듯) 고귀함을 알리고 발견하려고 애쓸 것이다. 달콤한 말이나 반짝이는 목걸이가 아니고!


"사실상 믿음(성실성)이 있는 곳보다, 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곳보다, 또 고귀한 것에 대한 존중이 있는 곳보다, 또 이것들 이외에 다른 어느 곳에서 친애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가 그런 식으로 행할 때, 그는 우선 자기 책망, 내적 갈등, 불안정한 마음과 자기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는 항상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는 솔직해지고 열린 마음을 지니게 될 것이네. 반면에 '자기와 같지 않은'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온화하며, 참을성 있고, 친절하게 대할 것이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에 관해 오류에 빠진 그 사람을 용서할 것이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철학자가 아닌지라,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서 사랑의 징표인 '황금 목걸이'를 받고 기쁨으로 폴짝 뛰어오르고 싶다고요...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노예여, 목걸이가 무엇인가? 목에 멋지게 두르려는 것인가? 아니면 혹시, 지금 (사랑을 의심하는) 괴로움 속에 있는 네 목을 조르기위한 것인가? (그렇다하더라, 그대를 용서하노라~)"




매거진의 이전글 습관에 맞서는 습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