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는 다~ 계획이 있다?

"모든 해석은 미지의 문헌을 읽는 시도일 뿐이다." - 칼 G. 융

by 미르mihr

# 이 글은 솔 출판사의 융 기본저작집 제1권 <<정신요법의 기본문제>> 중에서 <꿈 분석의 실용성> <꿈의 심리학에 관한 일반적 관점> <꿈의 특성에 관하여> 부분을 읽고, 필자의 사적 편견에 따라 주관적 해석으로 쓴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모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무의식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잠자는 동안 무의지적으로 만들어지는 꿈 역시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꿈 분석에 관심이 있다면 우선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그런데 분석이란 의식적인 것일 수밖에 없기에, 꿈-분석이란 무의식과 의식 간에 어떻게든 다리를 놓아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을 하기 위한 노력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관계 맺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아버지와 매우 관계가 좋은 한 아들이 있는데, 아버지를 깎아내리는 꿈을 반복적으로 꾼다고 해보자. 융이 소개하는 한 청년은 카레이서인데, 그의 꿈에서 아버지가 자꾸 술에 취해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절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우선 (프로이트식으로) 꿈이 '욕구의 소원 성취'라는 가정하에 분석한다면, 아들과 아버지의 좋은 관계는 겉보기일 뿐 실제로는 아니라는 해석을 해볼 수 있다. 이런 해석은, 꿈속의 '아버지'를 실제의 '아버지'로 간주한다. 반면 '술에 취해 사고를 친' 꿈속 사건은, 현실에서 표현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의 '상징'으로 간주한다. 일관성이 약간 부족해 보이지만, 꿈 자체는 해석에 대해 의견이 없으므로 이런 해석이 영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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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융은, 이렇게 '꿈속에 등장한 아버지'를 현실의 '실제 아버지'로 대체하여 해석하는 방식은 꿈의 상징의 범위를 너무 축소시키는 편협한 방식이라고 평가한다. 사실 다른 모든 건 상징으로 풀면서 인물만은 상징화시키지 않는 것은 약간 어색하긴 하다. 그러면 '꿈속의 아버지'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융의 '주관적 해석' 방법에 따르면, 그건 다름 아닌 바로 '나'다!


"꿈의 상은 정신적 요소들의 콤플렉스이다. 그것은 외적 자극하에서 스스로 형성된 것이며, 주로 주체 속에서 주관적 요소들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이 주관적 요소들은 주체에 특징적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객체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주관 단계의 해석은, 꿈의 모든 모습들을 꿈꾼 사람의 의인화된 인격의 특성들로 본다."


꿈속에 등장한 모든 인물이 자기 자신의 또 다른 특성을 의인화한 모습이라면, 위의 꿈에서 카레이서 청년의 꿈속에 등장한 '음주 운전으로 사고 낸 아버지'도 청년 자신의 특성일 것이다. 카레이서에게 음주 운전은 치명적이다. 융은 이 꿈을 꾼 청년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원인은 아버지와의 너무 좋은 관계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현실에서 실제로 그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너무 좋았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것을 보장해 주는 너무 좋은 아버지는 오히려 그 청년의 삶이 독립적이 되는 것에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융의 조언에 그 청년은 수긍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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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가지 해석 방식에서 도출되는 결론(?)적 메시지는 실상 '아버지로부터의 독립'으로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그에 이르는 방식은 아주 다르다. 우선 '소원성취'설은, 아들이 마음속-무의식으로 겉-의식과는 완전히 다른 '악'한 소원을 품고 있었다고 가정한다. 아니면, 착한 아들이 그런 소원을 품게 만든 의식적-겉보기에는 좋지만 실제-무의식적으로는 '나쁜' 아버지가 있었을 수도 있다. 이런 해석에 대해 꿈꾼 사람이 동의한다면 별 문제없겠지만, 만약 그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이 해석은 '나쁜' 해석이 될 수도 있다. 해석자는 자신의 권위로써 그 해석을 강요할 것이고, 만약 그런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단절될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자유로운 동의에 미치지 못하는 판단은 실제로는 옳지 않은 판단이다. 그것이 옳지 않은 이유는, 그런 판단이 환자의 발전을 미리 예정함으로써 환자를 마비시키기 때문이기도 하다. 환자는 설교를 통해 진실을 배워서는 안 된다. 환자는 오히려 진실을 향해 성장해가야 한다."


반면 '주관적 해석' 과정은 현재 현실에서 의식이 지닌 가치-아버지와의 좋은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해석에 대해 저항할 가능성이 줄어들고, 그러면서 동시에 현재의 좋은 관계에 대해 다시 숙고할 기회를 갖게 된다. '소원 성취'설의 의식이 바라보는 무의식은 감춰야 하는 '악'이고, 무의식에게 의식은 거짓말쟁이다. 그러나 '주관적 해석'설의 의식에서 바라보는 무의식은 아무것도 감추지 않으면서, 의식에게 지금 가야 할 제대로 된(?) 자신의 길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융은 이를 '무의식의 보상적 기능'이라고 명명한다.


"자가 조정 체계로서의 심혼은 신체의 삶처럼 평형을 갖추고 있다. 모든 과도한 과정이 발생하면 즉각 또는 불수의적으로 보상이 일어난다... 우리는 꿈을 해석할 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어떤 의식적 태도가 꿈에 의해서 보상되고 있는가?"


그러니 융이 바라보는 꿈과 무의식은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이라는 지향점을 갖고 있다. 이런 보상은 지금 한쪽으로 치우친 의식으로하여금 인격의 전체성을 향하게 하는 것이지 결코 도덕적인 기능은 아니라고, 융은 강조한다. 도덕이란 현재 사회의 지향점일수 있지만, 의식과 무의식이 지향하는 건 인류로서의 통합적 개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자연으로서의 인간과 현재 사회의 편견에 의해 배제된 인간의 특성까지 모조리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따져본다면 (내가 보기에는) 지금 현실의 도덕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일종의 (우주적) '윤리성'인 것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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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융의 '주관적 해석' 관점에 따라 꿈 해석을 하다 보면, 꿈이 아닌 현실에서의 나의 의식도 우리가 꿈에 대한 해석을 하듯이 해봐야만 하지 않는가라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지난 유형이론에서 살펴본 것처럼, 융에 따르면 현실에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특히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의식적 투사에 의해 바라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도둑 눈에는 도둑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도 있듯, 사람들은 자기 자신 이상의 세계를 발견하기가 대체로 어렵다.


"사람들은 이 세계가 우리가 보는 그대로라고 가정하곤 한다... 물질세계의 지각에 비해 인간에 대해 착각할 가능성이 몇 배 큰데도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순진하게 우리 자신의 심리학을 인류에 투사하고 있다. 나의 투사를 통하여 지각되는 어떤 인간은 하나의 이마고 Imago 혹은 상징의 운반체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언제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거나 또는 이해하고자 시도하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우리가 우리 속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 속에서도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융의 해석도, 프로이트의 해석처럼, 하나의 관점이고 이론이다. 우리가 실제로 모든 것을 '투사'로만 바라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때때로, 특히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그가 다른 사람과 세상에 자기 자신을 '투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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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자신을 세계에 투사한다면, 프로이트나 융의 이론 역시 자기 자신의 투사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저 인간은 속에 겉보기와는 완전히 반대의 마음을 품고 있어'라는 단정적-회의적 투사보다는, '저 인간이 내 안의 어떤 특성이라면?'이라는 질문적-철학적 투사가, 내겐 훨씬 더 흥미로워 보인다. 그 때, 타인에게서 내가 발견한 비난 거리란 실제로는 나의 '찌질함'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발휘해 타인에 대한 적의를 한 단계 누그러 뜨릴 수 있고, 그 에너지-리비도를 다시 나를 사랑하는 일에 투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마도 잠을 자는 동안 그의 기억이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정확한 감각을 찾으러 갔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더 이상 불행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도덕적인 수준은 낮아지면서, 그에게 다시금 나타나는 저 간헐적인 비열함으로 이렇게 외쳤다. "내 마음에 들지도 않고, 내 스타일도 아닌 여자 때문에 내 인생의 여러 해를 망치고 죽을 생각까지 하고 가장 커다란 사랑을 하다니!""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