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열심히 살지 마세요”

by 미르mihr


1.


어둑어둑한 새벽, 친구 1의 잠꼬대 소리에 눈을 뜨니 친구 2는 벌써 일어나 아직 어두운 방안을 서성이고 있다.

“너희들 뭐 하냐? “

“아침 먹으러 가야지”

“몇 신데?”

“5시 20분”

“이 시간에 밥이 넘어가니?”

“절에 왔으면 절법을 따라야지!”


내 친구들이 이런 사람들일 줄이야. 준법(?) 정신이 투철한 친구들 덕분에 눈 뜨자마자 선운사의 아침 공양까지 야무지게 챙기면서 여행의 두 번째 날이 밝아왔다.



2.


템플스테이 마지막 프로그램인 스님과의 차담. 참가자들이 모두 내향인인지 아무런 말이 없자 스님이 불교와 부처에 대한 간단하고도 명확한 설명을 하셨다. 말을 마치시며 혹시 질문할 게 있는지 묻자, 젊은 여성 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늘 걱정과 불안이 너무 많은데 어쩌면 좋을까요? “

(스님) “오늘 사세요, 아 그렇다고 오늘 살면 안 됩니다. “


그 담부터 줄줄이 이어진 질문.


“저는 인간관계가 좁은데 남자 친구는 제가 싫어하는 사람 하고도 잘 지내서 질투도 나고, 그와 저 자신을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느껴요 “


(스님) “내 남자라도 금방 남의 남자 됩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본인에게 맞추라고 자꾸 그러면 말이죠. “


“직장에서 일 못하는 부하 직원에게 나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따끔하게 말을 못 하고 그냥 제가 그 일들을 처리해줘 버리는 게 너무 힘듭니다.”


(스님) “좋은 사람 되고 싶으면, 일 대신하고 그냥 잊으세요. 그런데 계속 그러면 본인은 회사 사장에게는, 일 제대로 안 하는 나쁜 사람입니다. 책임을 다하고 스트레스받지 않으려면, 그 사람에게 화내지 말고 차분하게 끊임없이 다시 업무지시를 하세요”


“아무 약속 없는 한가한 휴일 날도 집에서 알차게 지내고 싶은데 누워서 꼼짝을 못 하겠어요”


(스님) “그냥 계속 누워계세요. 그 정도면 평소에 너무 열심히 일해서 쉬어야 되는 게 맞아요. 너무 열심히 살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을 향해) 다른 분들은 아니니깐, 열심히 사세요! “




3.


고창 청보리축제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 1이 반드시 청보리밭을 보러 가야 한다고 했다. 꼭두새벽에 일어난 데다, 스님과의 차담 후 도솔암까지 긴 산책을, 셋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마친 뒤라 나는 친구 1에게 다시 확인했다


“날도 뜨거운데 보리밭을 꼭 가야겠니?”

“응”

“그래, 그럼 가야지”


그랬더니 난생처음 보는 연초록의 바다가 나타났다. 그 위로 고운 자태의 옷차림과 색색의 양산들이 떠다녀서 내 마음도 따라 둥실거렸다. 또 내 예상과 달리 청보리밭에는 땡볕을 잊게 하는 푸른 바람이 무척 시원했다.




4.


아침은 절밥을 먹고, 점심은 고창에서 유명하다는 새우탕과 밥을 먹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저녁마저 ‘밥’을

먹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입이 짧은 나는 연이어 두 끼 밥을 먹자, 밥알이 꼴도 보기 싫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계속 보고 싶으니까, 그냥 또 공주에서 유명하다는 생선구이집을 갔다. 대신 내 앞에 놓인 애꿎은 밥공기를 째려보면서 뚜껑도 열지 않은 채, 생선을 안주 삼아 맥주만 홀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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