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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mihr Sep 18. 2024

주름과 관절

사랑의 단상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원문)


La figure est

en quelque sorte un air d'opéra;

de même que cet air est

identifié, remémoré et manié

à travers son incipit


 ( << Je veut vivre ce rêve >>,

<< Pleurez, mes yeux >>,

<< Lucevan le stelle >>,

<<Piagerò la mia sorte>> ),


de même la figure

part d'un pli de langage

(sorte de verset, de refrain, de cantilation)

qui l'articule dans l'ombre.



(나의 번역)


(사랑에 빠져있는 말의) 형체는

그 첫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식별되고 기억되며 내용 전체가 그려질

오페라의 아리아를 닮았다


(<<이 꿈속에 살리라>>

<<울어라, 내 눈아>>

<<별은 빛나건만>>

<<내 운명을 선택하리라>>)


그러한 말의 형체는

( 소절, 후렴구, 서정적 독창부가 그런 것처럼)

어렴풋하게, 끊길 듯 말 듯 이어주는

언어의 주름 속에서 태어난다



(기억하고 싶은 단어)


* air : 1. 공기 2. 분위기, 의미 3. 아리아 (오페라 같은 음악에서)

          un air d'opéra 오페라의 아리아

* incipit : 서두, 첫 구절 ('세 아이i가 서두에 나온다'로 암기해 볼까? ㅋ)

* articuler :  관절로 잇다,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연결하다



(10줄 단상 fragments)


주름이 많아지고 관절이 아프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어서일까? 글에서 '언어의 주름(un pli de langage)'과 '어둠 속에서 관절로 잇는다(articuler dans l'ombre)'라는 두 표현이 돋보기처럼 다가온다.


주름은 접혀져 있어 그 안이 어떤지 보이지 않는 곳이다. 커튼이나 스커트의 주름은 풍성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언어의 주름도 표현을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주름이란 보이지 않는 것이므로, 말하고 싶지만 보이지 않게 생략된 말일테다. 언젠가 남편이 회사에서 받아온 상품권이 있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남편에게 "그때 그 상품권 남았나?"라고 물었는데, 남편은 "아니, 다 썼지." 하며 그냥 가 버린다. 하아~ 내 이마에 주름 하나가 더 늘어난다.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말과 정보전달을 위한 말은 서로 멀리 있도다.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이번에는 '관절로 이어져 있다'는 말에 대해 그림을 찾아 한참 들여다보며 명상해 보았다.  


관절로 이어진 뼈들은, 엄밀히 말해 붙어있다고도 그렇다고 떨어져 있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듯 하다. 유연하게 잘 움직여지는 관절은 그 사이에 물렁한 것들이 풍부해서 서로 일정한 거리가 유지된다. 늙는다는 것은, 그 물렁함의 상실로 인해 단단한 것이 서로 부딪혀 꼼짝 못 하게 되는 일인 것인가.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오페라의 아리아들을 감상해 본다.


끝 간 데 모르고 점점 치솟으며 '울어라 내 눈아' 외치던 마리아 칼라스의 아리아는 어느 순간 심연 속에 빠져들어 고요해지고, 겸허하게 '내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던 파트리샤 프티본의 목소리는 다음 순간 운명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 듯하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신(들)만이 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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