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9

<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295~298

by 미르mihr



욕망 안에 내재하는 기쁨, 그런 것은 정말로 있다. 마치 자기 자신으로, 또한 자신의 관조로, 스스로를 가득 채우는 것처럼 보이는 이 기쁨은, 어떠한 결핍이나 불가능성도 내포하지 않으며, 쾌락과 오래 겨루지도 않는다. 쾌락의 강렬도를 분배하고, 그곳에 불안과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침투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바로 이 기쁨이기에 그렇다.


C'est qu'il y a une joie immanente au désir, comme s'il se remplissait de soi-même et de ses contemplations, et qui n'implque aucan manque, aucune impossibilité, qui ne se mesure pas davantage au plaisir, puisque c'est cette joie qui distribuera les intensités de plaisir et les empêchera d'être pénétrées d'angoisse, de honte, de culpabilité.






앞 뒤 문맥과 함께 원문을 살피다 보니, 아무래도 (유일한) 국역본 <<천 개의 고원>> 책에서 밑줄 친 곳 번역이 잘못된 듯하다. 그래서 책에는 "쾌락으로 측정할 수 없다"라고 쓰인 것을, 여기서는 "쾌락과 오래 겨루지 않는다"로, 내맘대로 고쳐보았다. 물론 나의 철학 실력처럼, 프랑스어 실력은 형편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이게 오류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아무래도, 국역본 번역자에게 '쾌락'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있어서 오역을 한게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든다.


'mesurer'는 측정하고 헤아린다는 뜻. 그런데 여기서는 재귀대명사 'se'와 함께 썼기에 그 행위가 다시 주체로 돌아온다. 측정'하는' 게 아니라 측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런 뜻으로 쓰였다면, 뒤에 측정되는 대상인 쾌락(plaisir) 앞에 전치사 'par'(~을 가지고)나 'avec' 등이 와야 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 쓰인 전치사는 'à'(au = à + 정관사 le)다. 'à'에는 여러 의미가 있으나, 수단이나 도구로서의 의미는 찾을 수가 없다.


사전을 뚫어지게 다시 보니 mesurer 맨 아래 쪽에, 대명동사로 쓸 때의 두 번째 의미로 '겨루다, 싸우다, 경쟁하다'가 있다. 그리고 예문을 보니 바로 거기에서 전치사 'à'가 함께 쓴 문장이 나와 있다. 측정하는 것과 겨루는 것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건가. 잠시 따져들어가 보니, 어떤 대상을 향한 채로(à) 자기 스스로를 측정해 보는 행위라면, 그 대상과 주체가 겨루고 있는 게 맞는 것도 같다.


어쨌든, 내적 기쁨이라는 것은 쾌락과 겨루는 것이 아니며, 쾌락으로 측정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번역은 잘못되었을지언정)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적 기쁨은 쾌락보다 한 수 에 있는 것이지, 그 반대 편에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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