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 409~412
욕망은 왜 스스로 억압되기를 바라는가, 욕망은 어떻게 자신의 억압을 바랄 수 있는가? 이런 총체적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미시-파시즘 밖에는 없다... 욕망은 결코 미(未) 분화된 충동적 에너지가 아니라 정교한 몽타주와 고도의 상호 작용을 통한 엔지니어링의 결과다.
Il n'y a que le micro-fascisme pour donner une réponse à la question global : pourquoi le désir désire-t-il sa propre répression, comment peut-il désirer sa répression?... Le désir n'est jamais une énergie pulsionnelle indifférenciée, mais résulte lui-même d'un montage élaboré, d'un engineering à hautes interactions.
내가 원하는 것, 그중 어떤 것도 실상 내가 진짜 원하는 - 나 자신이 생성해 낸 - 욕망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저 자동기계란 말인가? 어쩌면 그저 자동기계의 한 부속품일 수도 있겠지. 그렇다 할지라도 모든 자동기계는 오작동의 여지가 있다. 생성적 욕망을 원한다면, 오작동의 여지를 포착하기 혹은 오작동을 유발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