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425~428
억압 체계 안에서, 억압당하는 자가 항상 능동적인 자리를 취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마조히즘이 아니라, 바로 미시적 짜임이다. 부유한 나라의 노동자들은 제3세계에 대한 착취, 독재자들의 무장, 대기 오염에 능동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C'est elle(micro-texture) - et non pas le masochisme - qui explique qu'un opprimé peut toujours tenir une place active dans le système d'oppression : les ouvriers des pays riches participant activement à l'exploitation du tiers monde, à l'armement des dictatures, à la pollution de l'atmosphère.
기독교도가 아니더라도, 일단 이 세계에 태어난 이들은 누구나 '원죄'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결백하다는 믿음은 무지의 소치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이런저런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때때로 '속죄'할 수 있다. 그중 가장 혁명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한 정치적 행위는 (미시적) 욕망의 방향 바꾸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