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475~478
우리 마법사들은 바로 이런 식으로, 논리적 질서가 아니라 탈논리적인 적합성이나 일관성에 따라 작업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도, 그가 신이라 할지라도, 미리 말할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C'est ainsi que nous opérons, nous sorciers, non pas suivant un ordre logique, mais suivant des compatibilités ou des consistances alogiques. La raison en est simple. C'est que personne, même Dieu, ne peut dire d'avance.
어느 날, 동화 속에서처럼 마법사가 나타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면 나는 어떤 소원을 말해야 할 것인가?
돈이나 집 같은 재산? 그런 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고, 다른 이들의 표적이 되는 위험을 가져올 수 있으며, 내가 그것들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패스. 그렇다면 변치 않는 미모라든가 뛰어난 신체적 능력? 그 역시, 요즘 요가 수련을 열심히 해보니, 하루하루 나의 노력에 따라 향상(?)되고 변하는 모습 그 자체를 지켜보는 즐거움을 앗아가기 때문에 패스.
"마법사여, 나는 소원을 미리 말할 수 없소이다. 그대가 진정한 마법사라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요. 그러니 그냥 내 옆에 조용히 붙어서 내게 소원이 생겨나는 순간마다 이뤄주는, 나의 충직한 노예가 되어 주시게나! 이게 바로 지금의 내 소원이요." (요 딴 소원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 못해본 마법사가 와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