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5

<<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 487~490

by 미르mihr



호프만슈탈이 쥐의 임종을 가만히 바라볼 때, 바로 그의 안에서 그 동물이 "괴물 같은 운명에게 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연민의 감정이 아니다. 동일시는 더더욱 아니다... 일종의 공생이다. 그렇게 해서 쥐는 인간 안에서 하나의 사유가 되며... 이와 동시에 인간은, 이빨을 갈며 죽어가는, 쥐가 된다.


Quand Hofmannsthal comtemple l'agonie d'un rat, c'est en lui que l'animal « montre les dents au destin monstrueux». Et ce n'est pas un sentiment de petié, encore moins une identification... c'est une... symbiose, et qui fait que le rat devient une pensée dans l'homme... en même temps que l'homme devient rat, rat qui grince et agonise.






내가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우선, 감탄하는 부류. 그들은 나에게 대단하다며 어떻게 그런 금욕을 또, 정의를 실행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한데 내 입장에서는 그게 금욕이 아닌, (먹고 싶지 않은) 욕망의 실현이다. (온갖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 영상을 찾아보고, 많은 이들과 논쟁을 거치며) 고기를 안 먹게 되기까지가 그리 큰 괴로움은 아니었으니 (오히려 즐거움이었다) 어쩌면 나의 신체조성은, 포식자보다는 피식자 부류에 가까운 게 아니었을까?


또 다른 부류는, 건강을 염려하는 파다. 그들에 따르면 고기를 안 먹는 나의 몸은 '단백질이 매우 부족할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먹히기 위해 태어나,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 갇힌 채, 살찌워지면 곧바로 잡아먹혀... 수명 자체가 매우 부족해진 닭, 돼지, 소 - '고기들'에 비하면, 단백질 부족쯤은 실로 별 일도 아니라고, 나는 느낀다. 물론 나 하나쯤, 고기를 안 먹는다 해서 그들을 해방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오늘 들뢰즈-가타리를 읽다 보니, 비록 내가 그들의 신체적 수명을 연장시키지는 못할지라도, 내 안에서 또 내게 반응하는 이들의 마음속에서도,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사유'로서 살아남도록 할 가능성은 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 24화Day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