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491~494
샬럿 브론테의 작품에서는 사물도, 인간도, 얼굴도, 사랑도, 말(言)도 모두 바람의 용어로 되어 있다. 로르카의 "오후 다섯 시"는 바로 사랑이 패하고 파시즘이 머리를 드는 때였다. 오후 다섯 시. 얼마나 무시무시한 시간인가? 사람들은 <굉장한 이야기로군!>, <웬 무더위람!>, <사는 게 원!>이라고 말할 때 아주 특별한 개채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Chez Charlotte Brontë, tout est en termes de vent, les choses, les personnes, les visages, les amours, les mots. Le «cinq heures du soir» de Lorca, quand l'amour tombe et le fascisme se lève. Quel terrible cinq heures du soir! On dit : quelle histoire, quelle chaleur, quelle vie!, pour désigner une individuation trés particulière.
로르카의 '오후 다섯 시'와 달리, 시인 도종환은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가 인생에서 아직 찬란한 노을빛을 남겨 놓은 시간이라고 노래했었다. 지금 나의 오후 다섯 시는 로르카처럼 끔찍하지도, 도종환처럼 낭만적이지도 않다. 오후 다섯 시쯤이면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대체로 나는, '오늘은 저녁에 뭘 해 먹어(여)야 할까?'를 생각한다. 이토록 '사소한' 오후 다섯 시라니!
하지만 또한 시인 황동규는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라고 노래했으니. 오늘도 매우 '사소할' 나의 오후 다섯 시를 담담히 맞이해야겠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