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8

<<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499~502

by 미르mihr



가령 아이가 "어느 배(腹)", "어떤 말(馬)", "사람들은 어떻게 커져?", "어떤 사람이 한 아이를 때려"라고 말하면, 정신분석가는 "내 배", "아버지", "나도 우리 아빠처럼 커져?"라고 듣는 것이다. 정신분석가는 이렇게 묻는다. 누가 맞고 있는가, 누구에게?


quand l'enfant dit «un ventre», «un cheval», «comment les gens grandissent-ils?», «on bat un enfant», le psychanalyste entend «mon ventre», «le père», «deviendrai-je grand comme mon papa?». Le psychanalyste demande : qui est battu, et par qui?






스마트폰 어디선가 "부모와 관계가 좋은 아이들이 공부도 잘한다"는 표제가 휙 지나가는데, 내 머릿속에서는 반대로 "뭔 소리야, 공부를 잘해서 관계가 좋아진 건 아니고?"라는 의심이 바로 들지 않는가? 게다가, 공부를 잘해도 부모와 관계가 안 좋은 아이들, 공부를 못 해도 부모와 관계가 좋은 아이들... 은 어쩔?


들뢰즈-가타리는 책 속에서, 정신분석에 대하여 온 힘을 다해 열렬히 비판한다. 정신분석이 뭘그리 잘못했다고...? 그러나 위대한 작가나 철학자나 비평가들이 뭔가를 비판할 때, 그것은 대체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주류 사상,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별로 의심하지 않고 (마치 그것이 절대진리인양) 그냥 믿고 따라가는 사상일 확률이 높다. 내 생각에, 정신분석은 우리 시대(자본주의)의 대표적-주류 사상이고, 철학은 그런 것들을 맹신하기보다는 의심하기를 요청하는 법이다.


(개인들의 경쟁과 불안을 토대삼아 굴러가는) 자본주의에서 안전한 공동체로서의 가족은 파괴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병원-요람에서 병원침상-무덤에 이르기까지, 개인은 끊임없는 소비-주체(윤리-주체)의 원천이어야 하기에, 가족에 관한 아름다운 이상은 계속 남아있어야 한다. 들뢰즈-가타리가 정신분석을 비판하는 건, (실체 없는) 이상에 매달리는-시달리는 주체를 생산하고 그런 이상을 더 공고히 하면서, 다양체적 세계를 차단하기 때문인 듯 하다.


세상에는 각자의 특이성과 배치에 따른 다양한 아이-부모 관계가 있을 것이고, 그러한 관계-배치들은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다. 그중에는 정말로 일방적으로 폭력적이어서 응급조치가 필요한 경우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자꾸만 특정한 인물에게로 귀결시킨다면, 원망과 가책만 쌓일 뿐, 다양한 상황과 배치들과 자기 안의 내적 원인에 관하여 생각할 수 없기에 (예컨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같은 패턴의 되풀이 같은) 그의 세계가 실제로 변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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