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온 후, 치앙마이의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바로 튀어나온 대답은, '음식이 진짜 맛있다'였다. 내가 말해 놓고, 다시 한번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치앙마이 음식은 대체 왜 그리 맛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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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너무 배가 고팠다. 늦은 밤 치앙마이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나는 배가 고팠다. 초저녁에 마신 라떼와 기내 생수 외에는 먹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여섯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하기에 뭘 먹고 싶지도 않았고, 언젠가 비행기 멀미를 했던 기억도 났다. 그러나 먹을 것을 찾겠다고 그 어둡고 꼬질꼬질한 듯한 거리를 헤매고 싶지도 않았던 나는, 고픈 배를 부여잡고 첫 밤을 보냈다.
닭 우는 소리와 사원에서 울려오는 기도소리에 일찍 눈을 뜬 나는, 동네 탐색에 나섰다. 떠오르는 햇살과 함께, 지난밤과 달리 용기가 솟아났다. 그 용기 탓인지 아니면 아침 빛 때문인지, 지난밤의 꼬질꼬질한 느낌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꼬질꼬질하기는커녕,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남아 있는 오래된 성벽 터, 수백 년 동안 서 있었을 거대한 나무들. 그 사이사이로 비추는 아침노을. 그런 것들이 어우러지는 아스라한 풍경에 마음이 사로 잡혀버린 나는, 배고픔도 잊고 꽤 오랫동안 아침 산책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숙소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요가원 수업을 예약 해둔 게 생각나 (여행 첫날 부터, 내가 미쳤지...) 부리나케 달려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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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수업까지 끝내고 나니, 다시 배고픔이 몰려와 나는 숙소 바로 앞에 보이는 레스토랑... 이라기보다는 동네 식당에 들어가려고 보니, 식당 이름이 'Miss Ju'다. '식당 이름이 대체 왜, 다방 이름 같은 거야' 이런 생각을 잠시 했지만, 나는 이미 그림-메뉴판을 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혼자 두 접시의 요리를 주문하고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면서, 나는 속으로 외쳤다.
'와, Miss Ju님 짱!'
맛있는 음식으로 배고픔에서 벗어난 나는, 그제야 식당 안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다. 인위적으로 밝게 조명을 하지 않은 실내는, 해가 내리쬐는 바깥의 빛 때문에 오히려 조금 어둑한 느낌이다. 식당 앞은 간판 대신 알록달록한 천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이런 것들이 지금 내게는 아늑한 느낌을 주는데, 어젯밤이라면 여기도 꼬질꼬질하다고 느꼈겠지.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비어있는 테이블에, 나는 상상의 사람들을 앉혀보았다. 지난밤에 이곳에 한 무리의 태국 사람들만 앉아있었다면, 나는 아마 두렵고 '꼬질꼬질'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한 무리의 유럽 사람들이 앉아있었다면? 그랬다면 두려웠을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꼬질꼬질'이라는 느낌을 갖지는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내가 지난 밤 느낀 '꼬질꼬질함'은, 어젯밤에 탄 택시 때문이기도 했지만, 혹시 어쩌면 피부색이 나보다 훨씬 검은 태국인 택시 기사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직 이 시대에도, (유럽의 인종주의를 비난하던) 나는 인종주의자였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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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음식이 맛있었던 건, 내가 너무 배가 고팠고 게다가 'Miss Ju'가 요리를 너무 잘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혼자서 내가 좋아하고 내 마음에 드는 메뉴를, 아무런 염려나 배려 없이 고르고 맛볼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였다면, 친구가 싫어하지 않을 만한 음식을 골랐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였다면, 나는 (그들을 더 먹이고 싶은 욕심에) 그냥 '아무거나 다 좋아'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때에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게, 더 좋다. 이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게다가 나는 채식'위주자'다. 그런데 치앙마이는 곳곳에 불교 사원이 있고 거리에는 주황색 가사를 두른 스님들이 활보하는 곳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채식을 좋아하는 유럽인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채식주의 식당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맨날 여름일 이 나라의 채소는 우리처럼 하우스에서 재배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훨씬 식감이 좋았다. 또 아직 조미료나 시판 소스가 발달하지 않았는지, 우리네 음식점의 거의 모든 음식에서 풍기는 거북한 단맛도 없었다. 내 입에는, 치앙마이에서 (내가 나만을 위해 골라서) 맛본 모든 음식이 참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