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聖)과 속(俗) 사이에서

by 미르mihr



치앙마이에서는, 알람 없이도 아침 6시 반이면 눈이 떠졌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느린 곳이므로, 실상은 그냥 평소보다 조금 게으르게 아침 8시 반에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푹 자서 개운하고, 또 눈 뜨자마자 시작되는 돌봄 노동에서도 벗어난 나는, 아침마다 홀로 치앙마이 올드타운의 이 골목 저 골목을 여유롭게 산책했다.



치앙마이 올드타운에는 골목마다 불교 사원이 있다. (그런 곳은 대체 어떤 곳일까 싶어, 언젠가는 한 번 가 보리라 마음먹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이들과 등교하는 학생들 틈에, 사원으로 향하는 주황색 가사를 두른 (어린) 스님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중고등 학생 나이 정도인 이 어린 스님들은, 아마도 사원 수행으로 학교 교육을 대신하나 보다고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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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올드타운 중심에 위치한 사원 앞에서 탁발의례가 있다는 걸 미리 알아본 나는, 그날도 일찍 눈을 떠 쫄래쫄래 그쪽을 향해 산책을 나섰다. 벌써 사원 앞 도로는 100M 정도 통제되어 있고, 도로 양쪽에 탁발을 하려는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상에 음식-주로 공산 가공식품을 올리고 대기하고 있다. 이왕 온 거 나도 탁발에 참여해서 복을 좀 받아 볼까 하다가, 그냥 관광객으로서 구경을 열심히 하는 쪽을 택한다.



잠시 기다리자, 성스러운 종소리와 함께 사원에서 스님들이 줄을 맞춰 나온다. 어깨에는 탁발 바구니를 메고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이다. 맨 앞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스님들이, 뒤 쪽으로 갈수록 어린 스님들이다. 그 옆에는 개 한 마리가, 마치 자기가 스님들의 보디가드 인양 따라 나와 주위를 이리저리 살핀다.


탁발을 하려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주지스님쯤 되는 경륜 있는 음성의 스님이, 불경을 읊기 시작하신다. 관광객 아닌, 진짜 탁발을 하러 일부러 찾아 온 현지인 분들은 자연스레 합장을 하고 박자를 맞춰 스님과 함께 경을 읊는다. 뭐라고 하는지 의미는 몰라도, 리드미컬하면서도 경쾌하고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게 10분도 넘게 경 읊기가 계속되는 바람에 깜빡 잠이 들 뻔하려 할 때, 드디어 스님들이 각각의 사람들에게 다가와 탁발 음식들을 바구니에 담기 시작한다. 스님들이 멘 바구니는 작고 탁발하려는 사람들과 그들이 준비한 음식-식품들은 엄청 많기 때문에, 건장한 신자(?) 몇몇이 아주 커다란 통을 들고 스님들을 따라다닌다. 스님들은 탁발 바구니가 꽉 차면 옆의 커다란 통에 옮겨 담고, 다시 새로운 탁발을 받는다. 손발이 척척 맞는 탁발 시스템이다.



모든 참여자의 탁발을 다 받고 난 뒤에, 이번에는 기념 촬영 시간이다.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은 탁발 참여자들을 위해, 스님들은 기꺼이 사진 모델이 되어 준다. 그런 스님들 곁에는 아까의 그 충성스러운 개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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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런 탁발 의례를 구경만 한 세속적인 나는, 일찍 문을 연 동네 카페에 앉아 여운을 달랜다. 역시 속세의 커피맛이 참 좋구나 싶다가, 아니지 '성과 속'이 뭐 그렇게 무 자르듯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또 아니겠다 싶다.



의례라는 것 자체도 어떻게 보면 속세의 것이고, 평소에는 쪼리를 신고 다니는 스님들이 의례에서 맨발로 걸어 나오는 것 역시도 고행을 연출하는 속세적인 것 아닐까. 골목마다 있는 사원들의 크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한결같이 눈부신 금박에 화려하기 그지없는 정교한 세공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런 극도의 예술적 감각으로써, 속세의 사람들에게 '성스럽다'는 느낌을 불어넣으려는 의도 또한 속세의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이, 그 어떤 미술관이나 박물관보다 참 성스럽고 아름답도다. 아파트 숲이 즐비한 곳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것은, 어쩌면 신과 믿음을 - 자기 안의 가장 고귀한 부분을 - 잃어버렸기 때문인가. 그런 몽상을 하며 건너편 테이블을 보니, 목에 붉은 스카프를 두른 냥이가 자신이야말로 밤새 가장 어두운 속세를 지나왔다는 듯, 웅크린 채 아침의 신성한 잠을 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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