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어려운 야(夜) 시장

by 미르mihr


야시장이야말로, 치앙마이 올드타운 여행의 백미가 아닐까. 그러나 나 홀로 간 여행에서 가장 힘겨웠던 순간도 바로 그 야시장 구경이었다. 시장 구경이 대체 뭐가 그리 힘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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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야시장이 꽤나 길기도 하고 또 너무 많은 사람들의 물결에 쓸려 다녀야 하기 때문에 기가 팍팍 빨렸다. 가장 유명하다는 일요일 야시장만 갔어도 좋았을 텐데, 그 전날 토요일에 서는 야시장이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어차피 혼자라 별일 없는 밤 일정인지라, 나는 토요일 밤에도 쫄래쫄래 시장이 어떤가 구경을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토요 시장에 갔다 하여, 가장 유명하다는 일요 시장을 패스 하기는 또 아쉬운 마음에 바로 다음날인 일요일 밤에도 또 쫄래쫄래 시장 구경을 갔더랬다. 그렇게 이틀 밤을 야시장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왕복 탐험을 했더니, 치앙마이 올드타운에 걸어 다니는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비록 내 기를 다 빨아가긴 했지만, 어쨌든 다 정다운 우리 동네 사람들처럼 여겨졌다.


그곳에서 나는, 동서와 노소를 막론하고 예쁜 것 앞에서 사족을 못쓰는 많은 여성들과, 그 옆에서 지친 얼굴로 기다리는 남성들을 보았고, 토요 야시장에서 만났던 거리의 악사와 다시 일요 야시장에서 만나 인사를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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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예쁜 게 너무너무 많은 데 그것들은 대체로 실상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쓸데가 꼭 있지는 않은 그런 물건들이다. 쇼핑을 잘하는 친구들과 함께였다면, 별생각 없이 그들을 따라 이것저것 샀을 텐데. 본성적으로 쇼핑에 전혀 소질이나 재능이 없는 내가, 심지어 소위 '결정 장애'마저 있는 내가, 홀로 이런 망망대해에 놓이게 된 것이다.



무한의 물건들 사이에서 힘들고 지쳐 그냥 돌아가고 싶어질 때, 내게 묘안이 떠올랐다. 그래 이렇게 무작정 다닐 것이 아니라, 오늘의 목표를 정하자! 당장 오늘 없어서 불편했던, 너무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치앙마이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쉽게 열어볼 수 있게 옆으로 매는 가방을 사도록 하자!

그때부터 나는 모든 노점에서 가방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세상에 물건은 많아도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적당한' 물건이란 실상 이 세계에 거의 없는 법이다. 멀리서 보면 예뻐 보이던 것이, 사겠다고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보니 뭔가 촌스럽고 여기저기 싸구려 테가 났다. 크기가 적당하면 끈이 불편해 보이고, 디자인이 괜찮으면 크기가 작거나 너무 컸다. 이번에는, 나의 목표가 다시 나를 힘들게 했다.


너무 지쳐서 사긴 뭘 사냐 이제 그만 돌아가려 할 때, 시장 사이 어떤 좁은 골목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어둑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언뜻 보니 그 안으로도 뭔가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저 골목 안만 구경하고 이제 진짜 숙소로 가는 거야, 그렇게 마음먹고 골목길로 이 삼십 미터 걸어 들어갔을 때, 어둑한 노점의 희미한 불빛 아래 바로 내가 찾아 헤매던 그 '적당한' 가방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홀린 듯 그 가방을 집어서 어깨에 걸치고, 지금껏 구경했던 다른 가방들보다 배이상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아무 이의 없이 빠르게 계산을 하고 흐뭇하게 골목을 돌아 나왔다. 그리고 치앙마이에 있는 동안, 그것만 줄곧 매고 다녔다. 이곳에도 봄이 오고 꽃들이 만발해지면, 아마도 그 가방은 다시 내 어깨를 자주 점유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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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뒤에 또 간 일요일의 야시장에서야 나는, '(여기까지 왔으니) 꼭 (예쁜) 뭔가를 사(가)야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그냥 구경삼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사실 도중에 스카프가 너무 많이 보이길래 그런 걸 사서 친구들에게 선물할까 하다가, 또 그놈의 '결정장애' 때문에 실패했다. 또 거의 모든 관광객들이 입고 다니길래, 나도 '코끼리 바지'나 사 입어볼까 하다가, 그 역시 선택지가 너무 많은 그곳에서는 실패하고 그 다다음날 아침 새로 옮겨간 숙소 옆의 (선택지가 별로 없는) 동네 보세 가게에서야 하나를 골라 사입을 수 있었다.)


올드타운의 야시장에는 물건뿐만 아니라,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공예 체험을 하거나, 길거리에 앉아 발마사지를 받기도 한다. 또 길거리 음식도 꽤나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처음에는 길에서 파는 음식을 먹어도 되나 의심이 들었으나, 어느새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들 틈에 줄을 서있는 나. 그리고 생면부지의 외국인들과 함께 앉은뱅이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맛있게 누들롤(?)을 먹고 있는 나. 아니 길거리 음식도 이렇게 맛있다고! 감탄을 하면서 먹다가 주위를 살펴보니, 치앙마이 올드타운은 길거리 음식점마저도 화려한 사원 뷰로구나!



구경도 할 만큼 하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도 먹어보고, 밤도 꽤 어두워져서 슬슬 숙소 쪽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이곳저곳에서 라이브 공연 소리가 울려 나온다. 처음엔 밖에서 구경만 하려고 했지만, 너무 명랑한 웨이터가 들어오라며 권하는 걸 애써 뿌리치지 않았다. 맥주 한 병을 주문해서 홀짝 거리며 앉아있으려니, 연주되는 라이브 음악에 맞춰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흔들흔들. 그래 지금 여기 아는 사람도 없으니 흉볼 사람도 없을 테고, 또 뭐 흉볼 테면 보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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