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왔지만, 그래도 남들 가는 곳은 다 가봐야지. 하루는 이런 마음으로, 올드타운에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반캉왓'이라는 예술가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공예품을 많이 파는 상가)에 가기로 했다. 올드타운에서 그곳까지 갈 수 있는 여러 가지 교통수단이 있다. 문제는 평소 내가 잘 타고 다니는, 버스와 지하철만 없다는 것.
여럿이 마주 앉아 타고 가는, 버스와 가장 유사한 썽태우를 한 번 타볼까 싶었지만, 요금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기사와 흥정을 해야 하고, 또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심지어는 중간지점에서 갈아타야 할 확률도 있었다. 그래서 마침내, 나도 앱으로 택시를 불러보기로 했다.
외국에서, 혼자서, 처음 사용해 보는 앱인지라 조금 (실은 많이) 떨렸지만 아무튼 택시를 부르는 데, 단숨에 성공하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타난 나의 택시는, 완전 깨끗하고 완전 새것이고 게다가 기사마저 핸섬하고, 심지어 공항보다 더 먼 거리인데 요금도 이틀 전에 탔던 공항 택시보다 싸다! 역시 내가 첫날밤에 '치앙마이의 호갱님'이 됐었던 게지. 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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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택시를 탔더니 너무 이르게 도착했던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점이 많았다. 나는 그 근처 왓람쁭'이라는 사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사원에 들어서니 마치 나 혼자밖에 없는 것처럼 고요하다. 그러나 새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니 문득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는 듯 없는 듯 곳곳에 있었다.
구글맵의 링크를 따라 사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명상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최소한 10일 이상, 하얀 옷을 입어야 하고, 하루 두 끼의 소박한 음식을 먹고, 서로 말도 해서는 안 되고, SNS나 책도 읽을 수 없단다. 오직 명상을 통해서 자기 마음의 형상을 바라보아야만 한다고.
10일 묵언은 못하지만, 이왕 들어온 김에 나도 그들을 따라 햇살이 비치는 사원 한편에 자리를 잡고 가부좌로 앉아본다. 새소리. 바람소리. 종소리. 그리고 내 마음의 소리. 내 마음의 형상은 어떤 모습일까? 언젠가 한 번 제대로 명상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조용히 그곳을 물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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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마을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공예 체험하기를 좋아한다면, 오래 머물면서 즐길 수 있는 곳 같았다. 친구들과 함께 왔다면 같이 수다를 떨면서 팔찌 같은 액세서리를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었으리라. 혹은 도자기나 종이에 색칠을 해서 어설픈 작품이라도 만들 수 있었겠지. 그러나 홀로 온 (원체 게을러 손으로는 타자 치는 것 외에는 별로 뭘 하고 싶지 않은) 나는, 그곳을 두 바퀴쯤 돌며 다리 운동만 했다.
택시까지 타고 왔는데, 벌써 올드타운으로 돌아가기 아쉬운 마음에 다시 지도를 검색해 근처에 있다는 '동굴사원'에 가 보기로 한다. 걸어가기는 꽤 멀어서, 다시 택시를 불러야 되나 그러는데 눈앞에 삼륜 오토바이 '툭툭'이 빈 채로 지나간다. 올드타운에서 보고 저건 한 번쯤 꼭 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기에, 나는 주저 없이 손을 들어 '툭툭' 기사를 불러 세웠다. ('툭툭' 앞에는 'taxi'라고 쓰여 있지만, 이건 택시 앱으로는 부를 수 없다!)
밖에서 볼 때는 별로 빨라 보이지 않았는데(실제로도 아마 별로 안 빠를 듯), 아무런 뚜껑이나 문이 없이 개방된 좌석에 앉아 있으려니 속도감이 꽤나 느껴진다. 게다가 손잡이도 어설프고, 좌석은 약간 비스듬하고, 오토바이의 바퀴는 울퉁불퉁한 길의 충격을 그냥 내 뼈에 전해준다.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대공원의 코리끼 열차를 타는 것 같은, 재미가 있었다.
문제는 내가 요금 흥정을 미리 하지 않고 탔다는 것. 그래서 고작 5분 거리를 타고 20분 타고 온 택시비보다 더 비싼 값을 치렀다는 것뿐이었다. 나는야 오늘도 '치앙마이의 호갱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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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의 진동이 너무 컸던 것일까. 동굴 사원을 둘러보는 중에 슬슬 화장실 큰일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진 나는, 다급한 마음으로 앱 택시를 부르려는데 계속 호출에 실패한다. 차로 5분 거리의 예술가 마을에 오는 그 많은 택시 중에서 여기에 와 줄 택시가 정말 없다는 말인가. (화장실이 급한) 나는 절망적으로 계속 앱에 매달렸다.
'툭툭'에 비싼 값을 치렀다고 불평했지만, 실상 이곳에 나처럼 개별적으로 오는 관광객은 별로 없었다. 그러니 툭툭 기사는 내게 편도가 아니라 왕복 비용을 청구했던 것이다. 주차장에서 몇 십 분을 앉아있어도, 들어오고 나가는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택시 앱에서도 택시는 전혀 없고 오토바이만 가능하단다. 오토바이? 그런 걸 탄다는 건,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화장실은 계속 급해지고, 이러다가 영영 숙소에 못 돌아가는 것 아닌가 싶어지고, 진짜 어떡하냐고? 그러자 내 마음의 형상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냥 타, 오토바이! 못 탈게 뭐야?'
그래 죽기야 하겠나, 아니 뭐 죽어도 어쩔 수 없다. 치앙마이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야.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오토바이 호출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러자 타고 싶지 않은 이 무서운 오토바이는, 참 빨리도 오는 게 아닌가. 시커먼 헬멧, 시커먼 복면에 시커먼 옷을 입고 나타난 오토바이 기사는, 어찌할 줄 모르는 나를 향해 빨리 타라고 재촉했다.
뒷자리에 앉기는 했는데 대체 내 손잡이는 어디냐고, 헬맷은 왜 안 주는데... 이러면서 주섬거리고 있는 와중에 이 눔이 벌써 출발을 하는 것이 아닌가! 끼악~~~~~! 으악~~~~~~~! 정신없이 비명을 지르다 보니, 어느새 숙소 앞에 도착했다. 얼굴이 사색이 된 채 요금을 지불하는 나를 향해, 그 눔이 묻는다.
'아 유 오케이?'
비록 그날 급했던 화장실은 오토바이의 진동과 아스팔트의 열기와 내 비명 소리를 따라 산산이 흩어져버렸지만, 죽지 않고 살아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아임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