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

by 미르mihr


치앙마이를 구경하느라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또 많은 시간은 그저 같은 장소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다. 3일 차에 핸드드립 커피가 먹고 싶어서 찾아낸 어느 카페. 커피도 맛이 좋고 많은 이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좋아서, 매일 아침 그곳에 가서 모닝커피를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마신 뒤에야 하루를 시작했다.



또 어느 오후에는 올드타운을 걷다가 시원한 맥주나 한잔 할까 해서 들어간 레스토랑도 역시 여러 번 다시 찾아가, 홀로 맥주 한 병을 앞에 두고 풍경과, 사람들과, 이런저런 상념들과 함께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오래전 '하늘호수로 여행'을 떠났던 어떤 시인이 말하기를, '한 곳에 앉아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라고 했는데 과연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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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냥 내 집 근처에 앉아 있으면 될 것을, 왜 이런 먼 곳까지 와서 앉아 있어야만 많은 것을 볼 수 있단 말인가? 그거야 당연하다. 내 고장에 있으면 나는 늘 비슷한 풍경 속에 누군가와 함께 있고, 늘 다른 누군가를 염두에 두며 그날이 그날인 일들에 대해 생각해야 하기에, 눈은 새로움 속에서도 익숙함만을 보려한다.


만약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했다면, 또한 이렇게 홀로 한 곳에 앉아서 많은 것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먼 이국 땅의 한 곳에 앉아서 대체 뭘 보길래, 또 그게 다른 사람과 함께인 것보다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내가 치앙마이에서 홀로 시원한 맥주나 마시러 가야겠다고 처음 나섰던 날은, 실은 그냥 맥주 생각 때문은 아니었고 (내 생애 최초로) 오토바이에 실려 돌아온 사건 직후였다. 나는 낯선 풍경과 이국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조금 전 오토바이 위에서 내가 느낀 전율에 대해 생각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두렵고 무서웠나, 지나고 나니 별것도 아니고. 그냥 자동차보다 훨씬 싸고, 빠르게 (그리고 조금은 위험하게?) 돌아온 것일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또 문득, 언젠가는 나도 오토바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동 스쿠터 정도는 직접 몰아봐도 좋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드는 게 아닌가. 더 늙으면 멀리 걸어 다닐만큼 다리 힘도 더 없어질 테고 혹시 시골에라도 내려가 산다면 버스도 잘 안 다닐 거고... 무엇보다, 당장 이런 치앙마이나 (아직 안 가본) 발리 같은 동네 여행에서는 얼마나 유용하겠는가. 그러면서 지금 내가 (근거 없이) 두려워하는 많은 것들 중에는, 막상 시도해 보면 별것도 아닌 것들이 (이 나이에도)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평소에는 잘 안 해보던 이런 생각들을 해 보는 것, 특히 자기 자신(안에 똬리를 틀고서 삶의 새로운 시도를 막는 근거없는 두려움 같은 것들)에 관한 생각들. 어쩌면 그런 게 바로 '하늘호수로 여행'을 떠났던 어떤 시인이 또 말했던, '자기 자신으로의 여행'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너무 익숙하고, 너무 해야 할 (익숙한) 일이 많고, 익숙한 관계들 속에 있을 때는 '자기 자신'이라는 장소에 가 닿기가 쉽지 않아서, 나는 이 먼 곳에 홀로 와야 했을까.


무언가를 시도해보기 전에는 자기가 그것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결코 정확히 알 수 없다. 내가 (해외로) 혼자 떠나보기 전에는, 과연 내가 혼자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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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글을 쓰고 발행하면서 '나 홀로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해서 그런지, 네이버앱을 여니 내게 이런 콘텐츠가 바로 뜬다.



'나 홀로 여행'에서 나는 홀로 있었으나, 또한 홀로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수많은 ’나홀로 여행자들‘과 함께였으니 말이다. 그 많은 이들 덕분에 겁도 많고 소심한 나도, 게다가 더 이상 젊지도 않은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게다. ( 또 다른, 세상에서 내게 어렵거나 외로워보이는 그 어떤 길도, 실은 결코 혼자 가는 것은 아니리라.)


나를 이끌고 살펴 준 세상의 모든 '나 홀로 여행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운신할 수 있는 한) 종종 그 반열에 함께 해, '무섭게 잘될 팔자'가 되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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