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타운 숙소 순례기

by 미르mihr


고작 7박 8일간의 치앙마이 여행 동안 나는 숙소를 네 곳이나 옮겨 다녔다. 7박 8일이니, 게으른 나로서는, 그냥 한 군데서 혹은 여행이니 기분 전환 삼아 두 군데 정도에서 머물렀다면 딱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치앙마이는 여행 성수기였는데, 나는 여행을 떠나기 고작 일주일 전에 그곳에 가기로 결심했으니, 그때 알아보니 '비싸지 않고도 좋다'라고 (한국인들이) 보증해 주는 숙소들은 이미 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구글맵과 에어비앤비, 부킹닷컴등의 리뷰를 나름 꼼꼼히 살펴보면서, 내 일정과 숙소의 예약 가능한 날짜를 맞춰가며 다양한 숙소를 경험해 보기로 했다.


*


처음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1박에 6만 원 대에 예약한, Villa's Homestay. 사진과 설명을 보고 치앙마이 어느 가정집의 일부를 숙소로 쓰는 진짜 홈스테이를 상상했지만, 가서 보니 우리네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슷한 방들이 쪼르륵 몇 개 붙어있는 민박이었다. 사진보다 덜 뽀샤시했고, 혼자서 밤에 도착했던 나의 두려움 때문에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올드타운 번화가에서 약간 벗어나있는 평화로운 숙소 동네를 계속 걸어 다니다 보니, 이 숙소도 저절로 정이 들어버렸다. 그저 건물 자체가 좀 오래되고 허술하며 이 구석 저 구석이 호텔처럼 반짝거리지는 않았지만, 실상 내게 주어진 방 내부는 깔끔했고 있어야 할 것이 다 있었다. 단지, 변기 본체와 변기 앉는 부분의 사이즈가 다르다는 사소하고도 중요한 하나의 문제만 빼면 말이다.



나는 홈스테이 주인에게 문제를 설명하고, 방을 바꿔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곧 빌라의 관리담당(?)을 보냈고, 그는 내 방 변기 앞에 꿇어앉아, 변기를 부여잡고, 여러 가지 변기 뚜껑을 변기에 끼웠다 뺐다 해 가면서 문제를 해결해 줬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이 소박한 숙소가 점점 더 정다워지고 말았다.



*


두 번째 숙소는 1박 2만 원 대인 Sherloft Home & Hostel. 이 숙소와 저 숙소 사이 하루가 뜨는 바람에 게다가 '조용하다'는 리뷰가 마음에 들어, 예약했다. 도미토리만 남은 줄 알았는데, 막상 홈피에 들어가 보니 싱글룸이 하나 남아 있었다. 물론 화장실과 샤워는 공용. 숙소에 가 보니 전용욕실이 딸린 더블룸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방은 아마 일찌감치 예약마감이 되었을 것이다.



도미토리룸과는 아마도 얇은 판자 하나로 막아 놓은 것 같은 침대 폭만큼 좁은 싱글룸은, 옆방에서 사람들 걸어 다니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게다가 방은 이층에 있고 공용 샤워실과 화장실은 아래층이라 약간 번거롭긴 했다. 그러나 방도 깨끗하고 침구도 순면 감촉으로 좋았고, 침실 창문은 비록 좁다랗긴 해도 뷰가 좋았고, 무엇보다 이곳에는 널찍한 정원이 있어 좋았다. 이층 (공용)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정원과 동네 풍경은 묵었던 숙소들 중에서 최고였다.



더 놀라운 건, 분명 모든 방에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의 걸어 다니는 소리는 들리는데, 마치 묵언 수행자들만 있는 것 마냥 떠드는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 이 고요함이라니! 공용 거실과 테라스와 샤워장 앞에서, 사람들은 행여라도 서로 눈길이 마주칠세라 다른 곳을 보거나 깜빡 잊은 뭔가를 가지러 되돌아갔다. 유유상종이라더니, 나는 세계 각지의 내향인들이 모여드는, 내향인들에게 완벽한 호스텔을 잘도 찾아냈던 것이다.


*


세 번째 숙소는, 모든 한국인들이 좋다고 해서 꼭 가보고 싶었던 1박 8만 원대의 Villa Thai Orchid. 몇 번의 검색 끝에 취소된 예약이 있었는지, 2박을 예약할 수 있었다. 위치도 올드타운의 거의 중앙이고 숙소에 들어서자 정말 놀랍도록 깨끗해서, 역시 한국 사람들이 보증하는 숙소가 좋긴 좋구나 싶었다. 게다가 무료 빨래 서비스에 숙소 내에서 신는 꽤 예쁜 슬리퍼도 기념으로 가져가랜다.



그런데 이미 '놀랍도록은 깨끗하지 않은' 두 군데의 숙소에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나에게는 이 '놀랍도록 깨끗한' 숙소가 어쩐지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특히 놀랍도록 깨끗해서 유리가 없는 것 같은, 그러나 열지 못하게 해 놓은 창문이 (아마도 벌레가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일 테지만) 나는 특히 답답했다.


*


마지막 숙소는, 무조건 24시간을 채워서 이용할 수 있는 U-치앙마이. 무려 4성급에 20만 원 대 숙소라 혼자 가는 데 너무 사치다 싶었지만, 그래 하루쯤은 사치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더 중요한 건 치앙마이를 떠나는 날도 밤 비행기인지라, 밤까지 거리를 쏘다니며 시간을 보내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 선택했다. 그래서 그 전날 일부러 저녁때 체크인하고, 마지막 날인 다음날 저녁까지 호텔에 있다가 바로 공항으로 가니 편리하긴 했다.



마지막 날이라 구경도 할 만큼 했기에, 숙소 수영장에서 여유를 부려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근처 수영복 매장을 탐색해 싸구려 수영복을 하나 사서, 반나절은 수영장 썬베드에 누워 책도 읽고, 하늘도 바라보면서 보냈다. 물은 좀 찼지만, 오랜만에 수영도 어푸어푸해 봤다. 그리고 썬베드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나처럼, 서로 시간차를 두고 아무도 안 쓸 때 혼자 한 번씩 들어가서 어푸어푸 수영하는 것을 살짝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치앙마이에서 수영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막상 해보니 진작 하지 않은 게 아쉬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여유롭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혼자 수영-이라기보다는 물에서 놀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없는데 말이다.


*


만약 누군가 이 네 곳 중에서 다시 가고 싶은 곳을 고르라면? 아마도 처음엔 모든 것이 매우 허술해 보였던 첫 번째 숙소가 아닐까? 침구가 순면이 아니라는 것만 빼면,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는 데다가, 변기뚜껑마저 바꿔 달아 주던 그곳이 나는 마치 내 집인 양 편해졌었다. 여행 가서 반드시 순면 이불을 덮을 필요는 없으니까.아니면 널찍한 정원을 고요히 즐길 수 있었던 두 번째 호스텔도 좋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숙소 체험도 여행의 일부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보증해주는 숙소도 좋지만, 만약 치앙마이에 다시 간다면, 아마 나는 또다시 위험 부담을 안고, 안 가봤던 색다른 숙소들을 찾을 것 같다. 어쩌면 용기를 내어, 외향인들의 호스텔에도 하루 쯤은 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수영장이 있고도 저렴한 숙소에서 오래 머물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그러나…언제 또다시 치앙마이에 갈지는, 알 수 없도다! (사실 아직 내 마음은 치앙마이 올드타운에서 돌아오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는, 아직도 그곳에 있는 내 마음을 데려오는 중이라고나 할까.)





이전 08화올드타운 요가원 순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