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이미지 1

조지프 캠벨

by 미르mihr


Part1. 꿈으로서의 세계



꿈은 깨어있는 의식에 알려지지 않은 채 내면세계로부터 떠오르는 것이며, 이는 신화도 마찬가지이다. 인도에서는 천국과 지옥,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우주가 어느 한 존재가 꾸는 위대한 꿈이며, 그 꿈속의 모든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로 꿈을 꾸고 있다고 노래되어 왔고, 그것이 인도의 문명 전체를 틀 지웠다. 그 궁극의 꿈을 꾸는 자 비슈누는 심연의 거대한 뱀 아나타의 몸 위에 누워 우주의 우유 바다를 떠다닌다. ‘아난타’라는 이름은 ‘끝없음’이란 뜻이다.



우주의 꿈을 꾸고 있는 비슈누



C. G. 융은 이 인도의 예술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꿈은 영혼의 가장 깊고 비밀스러운 곳에 숨어 있는 작은 문이며, 이 문은 우주의 밤을 향해 열려있다. 그 밤은 ‘자아-의식’이 생겨나기 오래전부터 정신으로 존재했고, 또한 우리의 ‘자아-의식’이 얼마나 멀리 확장되건 간에 정신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모든 ‘자아-의식’은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리하고 구별하며, 개별적인 것들만 알고, 자아에 관계될 수 있는 것들만 본다. 그것이 별들 가운데 가장 멀리 있는 성운까지 미친다 해도, 자아-의식의 본질은 ‘한계’에 있다. 모든 의식은 분리한다. 하지만 꿈속에서 우리는 태초의 밤의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좀 더 보편적이고 진실하고 영원한 자의 초상이 된다. 그곳에서 그는 여전히 전체이며, 그의 안에 전체가 있다. 자연과 구분할 수 없으며 모든 자아를 벗어버린 상태이다.”



위대한 신, 시바 마헤슈바라


우리가 볼 때 (위 이미지의) 왼쪽에 있는 옆얼굴은 남성의 얼굴이고, 오른쪽이 여성이다. 가운데 보이는 얼굴은 여성과 남성, 평화와 투쟁, 창조와 파괴와 같은 모든 대립쌍들이 생겨나는 원천이다. C. G. 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무의식을 의인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집합적 인간 존재 즉 양성의 성격을 다 갖추고 젊음과 노년 탄생과 죽음을 넘나들며 백만 년이나 이백만 년 동안의 인간의 경험을 고루 갖추고 있는 불멸의 존재로 생각할 것이다. … 그 존재는 오랜 옛날부터 꿈을 꾸는 자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험으로 인해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훌륭한 예언자일 것이다. 그는 무한히 긴 세월 동안 개인의 삶, 가족의 삶, 부족의 삶, 국가의 삶을 계속 반복하여 살아왔으며, 성장하고, 피어나고, 부식하는 삶의 리듬 감각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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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신 비슈누에 상응하는 이집트의 신은 그보다 몇 세기 앞선 오시리스의 미라로 나타난다. 죽음과 부활의 지배자인 오시리스에게 그의 원수를 갚아줄 아들이 생겨난 것은, 오시리스가 형제인 세트에 의해 살해당한 직후다. 오시리스와 그의 쌍둥이 누이 이시스, 세트와 그의 쌍둥이 누이 네프티스는 모두 하늘의 여신 누트와 땅의 신 게브의 자손이었다. 어느 운명적인 밤 오시리스는 어둠 속에서 형제 세트의 아내를 자기 부인으로 오인하였고, 그 부정한 관계로 자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가 태어났다. 복수심에 불탄 세트는 그의 형 몸에 맞는 눈부신 석관을 준비해, 파티를 열어 그 석관이 몸에 딱 맞는 이에게 선물하겠다고 선포했다. 모두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는데 맞는 이가 없었다. 마지막 차례에 오시리스가 들어가 눕는 순간 72명의 공범자들이 달려들어 뚜껑을 닫아 나일강에 던졌다.


남편을 잃은 이시스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온갖 곳을 찾아 헤매다 한 도시에서 석관을 찾아낸다. 죽은 남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대고 오열하는 순간 임신을 한 이시스는, 세트의 눈을 피해 갈대 늪에 숨어 아들을 낳았다. 이 둘째 아들 호루스는 아주 빠르게 성장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그의 숙부 세트를 굴복시켰다. 그 전투에서 호루스는 그의 왼쪽 눈을 잃었고, 세트는 고환을 잃었다. 오시리스는 영원히 저승세계의 왕이 되어 부활한 사자(死者)들의 지배자이자 심판관으로서 저승세계를 통치하게 되었다.





나귀 머리는 패배한 세트, 오시리스 뒤에 서 있는 황소 머리 신 세라피스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파라오의 권력을 나타낸다. 호루스는 아버지인 오시리스와 세라피스를 마주하고 서 있고 그의 뒤로 그의 네 아들이 칼을 들고 있다. 오시리스와 호루스의 네 아들은 조각상처럼 받침대 위에 서 있다. 오시리스는 과거의 힘이며 호루스의 네 아들은 미래의 힘인데, 그들은 현세가 아니라 죽은 자의 저승세계와 앞으로 도래할 미래와 연관이 있다.





고대의 신화 중 가장 사랑받는 테마들은 기독교 구세주에 관한 전설에서 의도적으로 강조되었다. 예를 들어, 세트와 오시리스라는 원수 형제를 상징하는 동물인 나귀와 황소는 구세주 탄생 장면에 새로이 배치되었고, 4세기에는 그것이 원수들의 화해를 의미한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아기 구주의 어머니인 성모상은 가장 오래된 도상학적 형태인데, 이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 이란의 동쪽보다 서쪽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그림 31의 메소포타미아 성모상은 후기 수메르 시기인 기원전 2000년경의 작품이고, 그림 32의 성스러운 모성과 함께 고뇌에 찬 이시스의 외로움이 깊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이집트의 성모상 역시 비슷한 시기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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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에 나오는 헤롯 왕의 유아 학살은, 이집트 신화에서 세트의 학살을 피해 어린 아들을 데리고 도망가는 이시스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이런 전설은 세계의 민간전승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아기 추방 모티프의 테마 중 두 일화일 뿐이다. 동양에서는 구세주이자 세계의 꿈을 꾸는 비슈누의 화신, 크리슈나의 탄생에 관한 전설이 잘 알려져 있다.


바수데바에 의해 윰나 강을 건너는 크리슈나



마투라의 사악한 폭군 칸사는 그의 사촌 데바키의 여덟 번째 아들이 자신을 살해할 것이라는 신비한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모두 여섯 명의 아이를 죽였다. 이런 극악무도한 짓에 격노한 대지의 여신은 브라흐마에게 왕의 사악한 짓을 고해바쳤다. 브라흐마는 즉시 우주의 우유 바다 해안 파도 위에서 세계라는 꿈을 꾸는 자, 누워 있는 위대한 비슈누를 향해 기도했다. 그 기도소리에 비슈누가 몸을 뒤척이더니 그의 거대한 머리에서 희고 검은 두 개의 머리카락을 뽑아, 그것들이 데바키의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아이가 되게 했다. 데바키가 일곱 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영적 결합의 깨어있는 잠의 여신 요가니드라는 이 태아를 두 번째 아내의 자궁으로 옮겨 보호했다.


비슈누의 검은 머리카락으로 여덟 번째 아이를 임신한 데바키는 비슈누의 화신인 크리슈나를 낳았다. 데바키의 남편 바수데바는 천상세계의 암시를 받아, 갓 태어난 아기 크리슈나를 데리고 밤을 틈타 피신하였다. 그때 강 건너 목동의 아내 아쇼다가 딸을 낳았는데, 바수데바는 크리슈나와 목동의 딸을 바꿔 안고 되돌아왔다. 갓 태어난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포악한 임금 칸사가 달려와 목동의 딸을 빼앗아 바위에 던졌다. 그런데 아이는 전혀 다치지 않고 점점 커지면서 여덟 개의 팔을 가진 요가니드라 여신으로 변해 소리쳤다. “칸사야, 너를 죽일 그 아이는 이미 태어났도다!” 놀란 왕은 절망에 빠져 끔찍한 명령을 내렸다. “이 지상 위에 있는 모든 갓난아이를 찾아내라.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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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회의 그림들에서 (본질을) 감추는 힘과 (욕망을) 투영하는 힘은 아담을 유혹하여 신에게 받은 영원한 생명을 박탈당하게 만든 이브와 뱀의 모습으로 전형화되었다. 반면 (예술, 의례, 명상을) 드러내는 힘은 성모 마리아로 표현되었는데, “에바(Eva, 이브)라는 이름을 아베(Ave)로 바꿈으로써” 그 의미가 전도되었다.




<열리는 성모상>은 우리의 경험을 단지 외적이고 현세적이며 역사적인 것에 국한시키는 감추고 투영하는 힘을 흩어지게 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의 시야는 신비와 놀라움으로 가득한 내적 차원을 향해 열린다. 왼손에 깨어있는 의식으로서 이브가 따먹었던 죄악의 사과, 즉 ‘세계의 사과’를 들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낳은 신비로운 아이의 지상의 어머니이다. 하지만 문이 열리면, ‘신’이라 알려진 것까지 포함하는 모든 형상들과 이름들의 경계가 되는 지평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