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이미지 2

조지프 캠벨

by 미르mihr


Part 2. 우주 질서에 대한 생각 - 1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문화의 신화와 의례에서 서로 비슷한 구조나 동일한 모티프들이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 중의 하나는 심리학적 방법이다. <<황금 가지>>를 쓴 제임스 프레이저는 이를 ‘인간 정신의 유사한 구조’라 설명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인도와 아이슬란드 및 메소포타미아에서 동시에 발견되는 신화적 시간 ‘432,000년’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가, 단지 유사한 정신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하긴 어렵지 않을까? 그렇다고 그와 같은 동일한 숫자가 각각 독립적으로 생겨났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이런 현상은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서 일어난 획기적인 문화적 전환이 전파되면서, 더불어 신화적 체계와 모티프는 물론 천문학적 지식인 별자리의 배열도 전해졌다는 견해가 더 타당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적 전환은 대략 기원전 4천 년대 중반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원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이 만나는 하류 지역에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하늘의 관찰을 통해 ‘우주적 질서와 법칙’의 관념에 따라 통치하는 도시국가들이 생겨났다. 우주의 새로운 이미지를 상징하는 높이 솟은 사원들은 그 당시에 외관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것이 인류 문명사에서 첫 번째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수메르의 옛 천문학자들이 생각한 우주의 모습은 평평한 것도 둥근 구형도 아니었다. 그들은 우주가 무한한 바다로부터 계단처럼 층층이 솟아올라 있는 거대한 산의 형상이라고 생각했다.



니푸르의 지구라트, 기원전 2050~1950년, 복원도



이 위풍당당한 신전 탑들은 궤도에 따라 순환하는 행성들이 단계적으로 표시된 세계산을 가시적 형태로 재현한 것이다. 심연의 바다와 우주적 산은 살아있는 피조물이었다. 지구라트(ziggurat)라는 단어는 메소포타이마의 탑처럼 쌓아 올린 건축물을 지칭하는 말로, ‘크다, 높다’는 뜻의 바빌론어 ‘자가루zagaru’에서 나왔다. 그런 탑들은 성서의 바벨탑 이야기에서처럼 천국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을 숭고한 기도의 상태에 이르도록 고양시키고 신이 지상으로 강림할 수 있도록 사다리를 제공하려는 의도에서 지어진 것이다.




라이프치히 대학의 알프레드 예레미아스는 우주와 그 신비에 대한 이러한 고대의 관점에 대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주 전체는 존재(being)와 되기(becoming)의 상위 양식과 하위 양식 사이에서 인식되는 조화의 방식으로, 하나의 단일한 생명이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수메르인들의 세계 감각이 알려주는 것은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 있다”는 사고다. 이런 사고로부터 두 가지 방향의 영적 운동이 투영된다. 위에 있는 것은 아래로 내려오고 아래 있는 것은 위로 올라간다.



보로부두르 사원, 8~9세기, 자바



화려하게 장식된 보로부두르 사원은 세계산의 이미지를 본뜬 것이다. 층계를 오르면서 성지순례자들의 정신은 지상으로부터 초월적인 세계로 고양된다. 토대 부분에 새겨진 조각들은 지상의 삶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 지옥에서의 고통, 천상의 기쁨을 나타낸다. 지상으로부터 높은 곳을 향해 솟아 있는 꼭대기의 단 위에는 종 모양으로 생긴 세 개의 성궤가 있는데, 여기에는 명상하는 모습의 부처가 들어 있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불(佛) 지혜를 일깨워주는 것으로, 우리의 정신이 내면을 향해 깨어나기를 그리고 사실 이미 우리의 것인 내적 평화의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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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얼굴’에 관한 전설


인도의 ‘영광의 얼굴’에 관한 전설은 끝없는 탐욕을 가진 왕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왕은 엄청난 금욕 행위를 통해 신들의 지위를 박탈할 정도의 힘을 갖게 되었고, 우주를 유지하는 가장 높은 신 시바에게까지 도전하려 했다. 왕은 시바신의 아내 파르바티 여신을 양보하라고 요구하기 위해 끔찍한 괴물 라후를 신에게 전령으로 보냈다. 왕의 요구사항을 들은 시바신은 눈썹 사이에 있는 세 번째 눈을 떴고, 거기서 번개가 나와 지구를 강타하더니 이내 사자머리를 한 마귀의 모습이 되었다.




아연실색한 라후는 신에게 자비를 빌었고, 신은 그를 (신들의 도리가 그런 것이므로) 그를 보호해주었다. 그러나 또 다른 난처한 상황이 발생했다. 아귀처럼 굶주린 사자머리 마귀의 먹이가 없어진 것이다. 사자머리 마귀는 시바신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애원했다. 시바는 가장 위대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통찰력을 발휘하여, 그 괴물에게 스스로 자신을 먹어치우라고 말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빛나는 성찬이 시작되었다. 괴물은 자신의 발과 손부터 시작해서, 다리와 팔을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그는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여 자신의 배와 가슴과 목까지 계속해서 씹어 삼켰고, 결국에는 얼굴만 남게 되었다. 자기 소모라는 생명의 신비를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던 시바 신은 이 위대한 일이 이루어지자, 자신의 분노로 빚어낸 이 피조물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지금부터 ‘영광의 얼굴’인 키르티무카(Kirttimukha)로 불려질 것이며, 영원히 나의 문 앞에 살게 될 것이다.”


신의 끔찍한 얼굴인 키르티무카는 태양이자 죽음이다. 이 둘은 자신의 아이들을 낳고 먹어치우는 그리스 신화의 고르곤이나 중국의 아귀인 도철과도 유사하다. 중국의 도철 가면에 대해서는 기원전 4세기 경의 역사서인 <<좌전>>에 ‘산이나 들에 사는 위험한 정령’이라 설명되어 있다. <<여씨춘추>>에서는 ‘그 해(害)가 자신에게 미친 것으로서 사람들에게 경고해 주는 것’이라 말한다. 중국의 도철문양, 인도의 ‘영광의 얼굴’, 로마의 메두사, 중앙아메리카의 재규어 마스크가 보여주는 유사성은 서로 다른 문화들이 ‘전파에 의해서 맺어진’ 역사적 증거가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