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연꽃과 장미
반야바라밀다는 심오하고 초월적인 삶과 진실의 원천이자 육화이다. 그녀는 지혜를 밝히는 빛을 비추며 윤회의 순환 속에 묶인 우리를 제한된 의식의 번뇌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반야바라밀다는 서구에서 신성한 지혜인 ‘소피아 Sophia’의 상징에 대응하는 인도-자바 불교의 상징으로서 모성적 원리의 가장 영적인 현시이다.
샤크티라는 산스크리트어는 ‘힘, 역량, 에너지, 재능, 가능성’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동양의 종교적 사고에서는 남성 신의 배우자 여신으로서, 남성 신의 에너지나 활력이 육화 된 것을 나타낸다. 모든 아내는 그 남편의 샤크티이며, 모든 사랑받는 여인은 그 애인의 샤크티이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샤크티이다. 나아가 샤크티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영적인 힘을 의미하는데, 씨앗을 열매로 만들고 감싸고 보호하고 생산하는 자궁의 힘 속에서 작동한다.
반야바라밀다는 아디 붓다의 샤크티이다. 아디 붓다는 ‘위대한 빛을 주는 자’이며 우주의 ‘법’의 화신이다. 이 가장 높은 부처가 앉아있는 연꽃 아래를 보면 아래쪽을 향한 또 다른 연꽃이 있다. 이는 위에서 내려다본 돔의 꼭대기로, 그 아래에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식을 부처와 같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우리의 의식은 구름에 가려 있다. 우리의 삶을 불완전하게 하는 정신의 한계, 희망과 두려움, 욕망과 혐오의 결과 우리가 앉아 있는 연꽃 혹은 우리가 갇혀 있는 연꽃은 엎어져 있거나 피어나지도 못한 채 비참하게 손상되어 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붓다인 아미타불의 전설을 살펴보면, 초자연적이고 경이로운 일들이 신들이 아닌 완전히 현실적인 인간 존재로부터 진행된다. 불교에서는 힌두교와 달리 신과 인간 사이에 어떠한 존재론적 구별도 없다. 심지어 신, 인간, 짐승, 식물, 광물, 행성 사이에도 존재론적 구별이 없다. 붓다와 보살의 신성한 능력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으며, 새로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 혹은 플라톤적인 의미에서 ‘기억나게’ 되는 것이다.
불교의 명상 경전 <<아미타경>>에서는 평생에 한 번이라도 빛나는 붓다의 이름을 말한 자는 누구나 아미타불의 연못 중 한 곳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한다. 선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연꽃은 활짝 피어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연꽃은 봉오리가 닫혀 그들은 그 안에 갇히게 된다. 아미타의 서방정토의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은 완전성을 향한 그들 자신의 개화를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아미타 자신의 연꽃도 자기 자신의 불성을 상징한다. 연꽃의 상징은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의 개화, 즉 대우주적 질서를 향한 열림이거나 자신의 광대한 잠재성을 향한 개인적 소우주적 열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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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슈누의 아내 쉬리 락슈미는 불교의 가르침과 함께 바다를 통해 인도네시아로, 육로를 통해 중국과 티베트,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졌다. 그녀는 남편 비슈누의 꿈속의 연꽃이기도 하다. 깊은 물속에서 떠오르고 표면 위에 그 꽃잎을 펼쳐 놓는 연꽃의 출현은 모든 것에 자양분이 되는 심연의 생을 지탱하는 힘의 증거가 된다. 약 1,500년 전의 작품 속에서 여신은 연꽃의 화신으로서 브라흐마 대신 연꽃 위에 앉아 있다.
그 양 옆 두 송이의 연꽃은 코끼리를 받치고 있는데, 코끼리는 비를 만드는 구름의 사촌이다. 코끼리들은 코로 락슈미 위의 항아리에 담긴 천상의 물을 날라 지상에 쏟아붓는다. 기독교의 세례식처럼, ‘자연적 인간’은 물에서 ‘다시 태어난다’. 원초적 바다에서 떠오른 인도판 자연의 여신에게, 저 높은 영적 세계로부터 두 번째 ‘물에서의 탄생’이 주어지는 것이다.
기원전 100년 경의 가장 오래된 불교 예술품에는 붓다의 어머니인 마야 왕비가 붓다를 잉태하던 날 밤에 꾼 꿈을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꿈속에서, 가장 높은 신들이 사는 천상으로부터 빛나는 흰 코끼리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찬란히 빛나는 그 코끼리는 네 개의 어금니가 있었으며, 땅에 이르러 상서로운 태양의 운행방향을 따라 그녀의 침상 주위를 세 번 돌고, 코로 그녀의 오른쪽 옆구리를 치더니 자궁으로 들어갔다. 이 장면은 16세기 독일 화가 바르텔 부로인의 <성수태고지>와 비교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빛나는 흰 비둘기의 모습을 한 성령에 의해 인도된 어린 구주는, 이미 자신의 십자가를 지니고 예정된 어머니에게로 날아오고 있다.
15세기의 작품 <성모의 꿈>에서는, 성모의 옆구리에서 자라난 꿈과 같은 생명의 나무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200년 경 인도 서북부의 그리스-불교적 조각 양식은 붓다가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알려진 붓다의 탄생 신화에 따르면, 젊은 마야 왕비는 산 달이 되어 아이를 낳기 위해 황금 가마를 타고 친정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화려한 기쁨의 정원에 이르렀는데, 거기에는 온갖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젊은 왕비는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 커다란 사라쌍수 나무 밑동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마야 왕비가 오른손을 치켜들자 꽃핀 가지 하나가 잘 익은 갈대 줄기처럼 아래로 굽어 늘어뜨려졌다. 마야 왕비는 그 가지를 잡고 섰고, 그녀의 옆구리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순간 네 명의 마하브라흐마 신들이 내려와 아이를 황금 그물로 받아 그 어머니 앞에 놓고 축복하였다. “오, 기뻐하소서, 왕비시여! 당신에게서 위대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하늘로부터 두 줄기 맑은 물이 쏟아져 아이와 그 어머니를 씻기자 아이가 똑바로 일어서서 동쪽을 향해 일곱 발자국을 걸어가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으로 땅을 가리켰다. 그리고 고귀한 목소리로 모든 붓다들의 승리의 게(揭)를 외쳤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
기원전 1세기 초에 발견된 인도의 대지와 나무의 신들은 모두 마야 왕비가 출산하던 장면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나무의 생명의 수액을 자극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자극하는 오랜 주술 의례에서 온 것이다. 붓다의 어머니가 이런 자세로 아이를 낳았다 묘사되는 것은 사실, 그녀 안에서 자연의 모성적 힘이 지고한 결실을 맺게 된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 세계의 연꽃의 심장에 있던 붓다-의식의 황금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옴 마니 반메 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