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이미지 6

신화 읽기 노트

by 미르mihr


Part 4. 내면의 빛의 변형


로마 근동 지방에서 다양한 이교들, 유대교와 기독교의 그노시스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시기(1~4세기), 힌두교와 불교의 나라 인도에서는 탄트라식 수행이 나타났다. 탄트리즘을 정확히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다. 탄트라(tantra)는 다양한 의미(어근 ‘tan’은 확장하다, 계속하다, 증식하다는 뜻)를 갖는데, 그중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연속’, ‘열림’, ‘지속되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탄트라는 아마 앎을 확장시키는 것과 관련될 것이다.(엘리아데)


탄트라의 가르침에 기초가 되는 기호들은 쿤달리니(kundalini) 요가 체계에서 일곱 개의 원형 고리들(차크라)이나 일곱 개의 연꽃(파드마)에 대한 교의에서 배워야 한다. 쿤달리니(kundalini)는 ‘원형의, 회전하는, 순환하는, 감는’이라는 형용사(kundalin)에서 만들어진 ‘뱀’이라는 뜻의 여성명사다. 이는 똬리를 튼 암컷 뱀의 형상으로서, 징그럽거나 불쾌한 뱀이 아니라 섬세한 본질을 지닌 뱀 여신이다. 이 뱀은 움직임 없는 수면의 상태로 척추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미묘한 중심, 일곱 개의 고리 중 첫 번째 고리에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요가 수행의 목적은 이 뱀을 깨워서 머리를 들게 만들고 척추의 섬세한 신경이나 통로를 거쳐 머리의 왕관에 있는 이른바 ‘천 개의 꽃잎이 달린 연꽃’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 통로의 축이 되는 줄기이자 통로는 수슘나(sushumna, 행복의 충만, 지극한 축복)라 불리며, 다른 두 개의 줄기가 양 옆에서 가로지르며 감고 있다. 흰색 줄기는 ‘이다(ida, 원기회복, 헌주;찬미와 경배의 물결, 또는 흘러넘침)’는 왼쪽 고환부터 오른쪽 콧구멍을 향해 감아 올라가며, 시원하고 향기로운 정신의 ‘달(陰)’ 에너지와 결합된다. 붉은색 줄기 핑갈라(Pingala, 태양과 같은, 황갈색)는 오른쪽 고환에서 왼쪽 콧구멍을 향해 뻗어 올라간다. 핑갈라의 에너지는 ‘태양의(陽), 불타는’ 에너지이며, 열대 지방의 태양열과 같이 사물을 마르게 하고 파괴적이다.


요가 수행자들의 첫 번째 과업은 이런 대조적인 힘의 에너지를 수슘나의 밑바닥으로 동시에 가져와서 그것들을 똬리를 푸는 뱀 여왕과 함께 중앙의 줄기를 타고 올라가게 하는 것이다. 뱀 여왕은 가장 밑바닥으로부터 가장 높은 연꽃의 중심으로 오르며 그 사이의 다섯 개의 고리를 지나간다. 그 각각의 고리를 통과할 때마다 수행자의 정신세계와 자아를 깨우며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근본적인 변형을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도 그 뱀을 따라 척추를 타고 올라가 보자. 요가에서 척추는 대우주의 중심축에 대한 소우주의 대응물로 여겨진다. 연꽃 단계들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지구라트의 단들과 동등하며, 그 정상은 꼭대기에 있던 달빛과 태양 빛의 방과 같다.



가장 아래쪽 중심을 주재하는 신은 세계의 창조자 브라흐마로 그의 샤크티인 샤비트리 여신은 태양 빛의 육화이다. 인간의 신체에서 이 위치는 항문과 성기의 중간인데, 이 지점의 영적 에너지는 가장 낮은 강밀도를 지니다. 이 단계의 세계관은 ‘냉정한 사실들’에 의해 통제되는 활력 없는 유물론으로써, 삶에 대한 열망이나 확장의 충동 없이 기면 상태의 욕망이 존재에 매달려 있다. 이때 뱀 여왕 쿤탈리니의 중심 모토는 완강하게 “여기에 내가 있고, 여기에 내가 머문다”이다.


두 번째 연꽃의 중심은 성기 단계이며 이곳을 관장하는 힌두의 신은 비슈누이다. 그는 젊음의 긍지 속에서 황색의 옷을 입고 손에 올가미를 쥐고 있다. 그의 옆에는 노기등등한 그의 샤크티 라키니가 공격적으로 이를 드러내고, 눈을 붉게 이글거리고 있다. 이 단계의 쿤달리니가 활발해지면, 삶의 전체 목표는 섹스에 있게 되는데,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성적 테마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프로이트적 리비도의 성격을 갖는다.


배꼽 단계에 있는 차크라에서는 모든 에너지가 세계를 지배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폭력성으로 바뀌는데, 여기에 적절한 서양 심리학은 ‘힘에 대한 의지’를 주장한 아들러의 학설일 것이다. 이 단계를 주관하는 힌두의 신은 시바로서, 그는 장례식에 쓰는 화장용 장작 재를 바른 무시무시한 고행자의 모습을 하고, 흰 소 ‘난디’ 위에 앉아 있다. 그 옆에 앉은 그의 샤크티는 육식을 좋아하는 라키니 여신으로, 그녀의 가슴은 게걸스러운 턱에서 흘러내린 기름기와 피로 온통 뒤범벅되어 있다.



낮은 단계의 이 세 차크라들은 소박한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양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연인들, 전사들, 건설자들, 성취자들의 양상이며 이 단계에서의 기쁨과 슬픔은 ‘저 바깥’ 세상에서 성취한 것의 작용이다. 즉, 이때 사람들은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에 관해 생각한다. 이 단계에서 작동하는 종교는 윤리적 규율과 조언을 제공하고 삶의 상실감에 위안을 주며, 사회적 의무를 충족시키는 것에 대해 미래의 보상을 약속하는 것에 그친다.


네 번째 차크라는 심장 단계로서, 이 중심의 이름은 ‘아나하타(Anahata)’, 즉 ‘부딪히지 않음’이다. 이곳은 두 사물이 서로 부딪혀 내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다. 모든 소리는 두 사물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데,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 유일한 소리는 우주의 창조적 에너지가 내는 소리인 공(空)에서 나는 소리다. 이는 사물에 선행하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침묵 너머의 소리이자 모든 존재의 씨앗이자 에너지의 소리 ‘옴(OM)’이다.



이곳에는 대자아가 살고 있으며 공(空)을 향한 문이 열려 있다고 한다. 이곳을 관장하는 힌두의 신은 부드럽고 자비를 베푸는 모습의 시바이며, 그의 샤크티인 카키니는 양손에 올가미와 해골을 들고 다른 두 손으로는 여원인과 시무외인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처음 ‘침묵’ 속에서 OM소리를 일단 듣게 되면, 그 소리는 어디서나 다시 들릴 수 있고,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선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우주적 춤의 신, 시바 나따라자>, 12세기, 남부 인도


더욱 완전하게 그 신비한 소리를 듣는 법을 배우는 곳이 바로 다섯 번째 차크라이다. 이 단계는 후두 높이에 있고, ‘정화됨’이라는 뜻의 ‘비슈다’라 불린다. 이 연꽃 중심의 수호신은 양성구유의 형상을 한 시바신으로 ‘반은 여자인 신’이라는 뜻의 ‘아르다 나레쉬 바라(ardhanareshvara)’로 알려져 있다. 그의 열개의 팔에는 삼지창, 전투용 도끼, 긴 칼, 벼락, 불, 뱀 고리, 방울, 곤봉, 올가미를 들고 한 손은 공포를 쫓아주는 수인을 하고 있다. 이곳은 해탈을 위한 출입구이나 면도날처럼 좁아서 지나가기 어렵다. 여기서 수행자는 이차적 사물들의 소용돌이에 대한 그의 의식을 정화하고자 하며, 베일을 걷어 그 자체로 우주의 있음과 됨인 신의 음성과 빛을 경험하고자 한다. 차크라 3에서의 공격적인 불길은 이때 내면으로 향해, 자기 내면의 적들에게 맞선다.


<반은 여자인 신, 시바 아르다나리>, 8세기, 인도


*


다섯 번째 과업까지 완수한 성자에게는 깨달음의 두 단계만이 남는다. 여섯 번째 차크라는 ‘조건 지어진 삼매경’이며 일곱 번째는 ‘조건 없는 삼매경’이다. 이 두 단계의 첫 번째 중심은 ‘명령’의 연꽃으로 알려진 아냐로서 미간의 약간 위쪽에 있다. 여기서 OM소리는 완전하게 들리고, 수행자는 신의 궁극적인 형상을 보게 된다. 그 특별한 신의 현현을 보면, 사람은 기쁨에 들떠 모든 것에 스며드는 신성한 존재와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직은 그렇게 될 수 없다. 그것은 유리 안에 들어 있는 램프 불빛처럼 만질 수 있을 것 같아도 유리 때문에 막혀있는 것이다.


깨달음의 유리처럼 투명한 장벽을 제거하여 두 번째 중심에 이를 수 있다면, 신과 우리 자신은 폭발하여 빛이 될 것이다. 그것은 순전한 빛, 하나의 빛, 이름과 형상, 사고와 경험, 심지어는 ‘존재’와 ‘비존재’라는 개념마저도 뛰어넘는 빛이다. 신 안에서 그 영혼은 아무것과도 공통점이 없으며, 무엇에게도 특별한 무엇이 아니다. 이 차크라의 중심에는 모든 신들에 의해 받들어지는 빛나는 공(空)이 있다. “벼룩처럼 하찮은 존재라도 신 안에서는 가장 높은 천사보다 더 고귀하다.” (에크하르트)


금강석화의 만다라


이 만다라는 명상의 상태에서 절대 상태로 들어간 자의 상태를 묘사한다. 중심에 있는 금강석과 도르제(dorje)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결합한 완전 상태를 상징하며, 안쪽 정원의 문 안쪽에 있는 네 개의 도르제는 생명의 에너지가 안으로 흐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체성의 네 가지 국면의 모든 에너지가 완전히 결합하면, ‘금강의 신체’라고 불리는 정적인 상태가 떠오른다. 이는 모든 대립쌍들의 결합을 보여주며 양과 음, 하늘과 땅 사이에 들어가게 된다. (융)


이러한 수련의 목표는 숙련된 수행자에게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이다. 에고(ego)는 개별적 존재의 표현이다. 요가 수행자는 그의 에고를 시바나 붓다와 교환한다. 그는 인성의 심리학적 중심을 개인적 에고(ego)에서 비개인적 비자아(non-ego)로 이동시키며, 그것은 이제 그 개인적 인성의 진짜 바탕으로 경험된다. 바울의 말과 비교해보자.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