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내게 떠오른 건, 그리스 신화 속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였다. 절세 추남에 절름발이인 이 신의 손을 거쳐야만, 모든 신들은 천하무적의 신이 될 수 있다. 제우스 신의 무기인 벼락도, 아테나 여신의 지혜를 상징하는 투구도, 막무가내로 용감한 전쟁의 신 아레스의 전차도, 헤라 여신의 기품 있는 신전 장식도 모두 헤파이스토스의 작품이다. 그러나 막상 대장장이 신 자신에 관한 영웅담은 없다. 오히려 그는 하늘에서 버려져 땅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절름발이가 되었다고도 하고, 그런 그를 가엾게 여긴 제우스 신이 맺어 준 아름다운 아내 아프로디테는 아레스와 바람을 피웠다고도 한다.
생각해보면, 하루 종일 쇠를 녹이는 뜨거운 불 앞에서 일해야 하는 신의 운명이 그렇게 행복하거나 영광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는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나의 이런 궁금증에 대해 엘리아데는 그들의 작업은 “시간을 대신하는 기술”이라는 한 마디로 대답한다. 또 오래전 인류에게 있어 대장장이의 위상은 현대의 내가 가진 편견보다 훨씬 더 높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금속 숭배의 기원
야금술이 발달하기 전, 먼 옛날의 사람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서 철을 추출했다. 철을 뜻하는 가장 오래된 어휘인 ‘안-바르’라는 수메르어는 ‘하늘’과 ‘불’의 상형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천상의 금속’, 혹은 ‘별의 금속’으로 번역된다.
“‘운석은 천상의 신성성을 품고 지상으로 떨어지며, 따라서 하늘을 나타내는 것이다’, 운석에 대하여 이와 같은 종교적 가치가 부여돼 있다는 점을 기억해두기 바란다. 아마도 그런 까닭에서 수많은 운석이 숭배되거나 신과 동일시되었을 것이다.”(20쪽)
운석을 이용하는 동안 모든 금속은 금만큼 귀중하고 희귀한 것이었으며, 의례적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 시대 동안 철은 장식품, 부적, 조상(彫像) 등으로 만들어져 신성한 가치를 간직하고 있었다. 철은 신성한 힘을 머금고 있다는 금속 숭배는 문화 수준이 높은 민족의 경우에도 지속되고 있다.
금속 가공을 알지 못하던 미개인에게 쇠 도구는 한층 더 숭배의 대상이었는데 이는 맹목적인 미신에서가 아니라, 낯선 물체에 대한 숭배의 문제라 볼 수 있다. 이 물체는 친밀한 세계가 아닌, ‘다른 곳(천상)’으로부터 온 것으로서, 피안의 징표이자 초월의 이미지이다. 시나이 반도의 베두인 족은 운석의 철로 칼을 제작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전투에서 상처입지 않고 모든 적을 패주 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루벤스 < 제우스의 번개창을 만드는 헤파이스토스>
따라서 철을 다루는 대장장이의 연장도 신성성을 나누어갖는다. 쇠망치, 풀무, 모루는 살아 있는 불가사의한 존재이다. 금속에 대한 신성한 힘은 그것을 다루는 도구의 마력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연장을 만드는 기술은 신적이든 악마적이든, 초인간적인 본질을 품고 있다. 도구들은 신의 벼락이 하듯이, 후려치고, 상처를 내고, 터뜨리고, 불꽃을 튀긴다. 대장장이들은 모루를 후려침으로써 강건한 신의 표본적 행위를 모방한다.
‘신성 결혼’이라는 관념의 탄생
그러나 철을 다루는 야금술은 단지 물질적인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종교적 관념까지도 변화시켰다. 철기시대에 이르면 이전의 농경과 수렵 사회를 이끌던 천신은 대지모(母)의 남편이자 풍요 다산의 강건한 남성신에게 축출당하게 된다. 천신에 의해 이룩된 창조라는 개념이, 신성 결혼과 피비린내 나는 희생에 의한 창조 개념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희생 혹은 자기희생에 의해서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개념이 나타내는 ‘새로움’의 의미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전의 신화들은 신이 만든 원초의 물질로부터 시작된 창조의 유형을 주로 다루었다. 그러나 우주와 인간의 창조의 조건으로서의 피의 제물은 인간과 우주의 상동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생명은 제물로 바쳐진 또 다른 생명으로부터만 발생할 수 있다는 개념을 도입한다.”(32쪽)
이러한 우주론이 확장 발전된 결과 식물계와 광물계는 물론이고 주변 세계의 도구와 물건들까지도 성화(性化)된다. 키타라 족은 광석을 암수로 나누는데, 단단하고 검은 수광석은 대지의 표층에서 발견되며, 연하고 붉은 암 광석은 광산 내부에서 채취된다. 그러한 시각은 ‘금속의 결혼’이라는 의례를 정당화시켜 주었고, 이 결혼은 새로운 것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도구 또한 성을 부여받는다. 유럽 야금술에서 법랑을 녹이는 화덕은 ‘모태’ ‘자궁’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됐다. 베다 시대 인도에서, 제단은 ‘여성’으로, 의식용 불은 ‘남성’으로 간주되었고, “이들의 결합으로 자손을 낳았다.” 이러한 성적인 용어는 모두 신성 결혼의 근저에 있는 우주론적 개념을 표출하고 있다. 가장 명확한 성적 부인과적 상징은 ‘대지모’의 이미지에서 찾을 수 있다. 대지의 이미지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내포하며, 특히 강조해야 할 것은 광석이 부인과적 형태로 탄생한다는 신앙이다. 즉 동굴 및 광산을 대지모와 동일시하는 부분이다. 선사시대부터 입증된 동굴의 의례적 역할은 ‘어머니’로의 신비적 회귀로 풀이될 수 있으며, 이로써 동굴에서 행해진 입문 의식과 동굴에 안치된 묘소를 설명할 수 있다.
또한 동굴이 대지모의 자궁과 동일시된다면 대지의 뱃속에 있는 것은 임신 상태로 살아있는 것이다. 즉, 광산에서 채취된 광석은 태아인 셈이다. 따라서 대지의 품으로부터 광석을 채취해내는 것은 산달을 다 채우지 않고 실행되는 작업이 된다. 만약 발육에 필요한 시간(시간의 지질학적 리듬)이 허용된다면, 광석은 성숙하고 완벽한 금속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광부와 야금공은 광물의 성장 과정에 대한 자신들의 개입을 정당화시켜야만 했다.
야금술과 연금술 : 시간을 대신하는 기술
고대 인도로부터 17세기 유럽까지, 대지의 태내에서 광석이 자란다는 관념은 계속 유지되었다. “마치 태아가 모태 속에서 혈액으로 영양을 취하는 것처럼, 루비도 그렇게 형성되어 키워진다”라고 믿어졌다. 이런 원시적 개념들이 기술적 경험과 합리적 사고가 지배하던 여러 세기를 지탱했던 것이다. 이러한 관념에 따르면 지구상의 모든 것은 무엇인가를 낳기 위해 애쓰며, 대지의 내부와 자궁 역시 생산을 위해 언제나 전력투구 중이다.
그러므로 야금술은 농경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신뢰감과 긍지를 심어주게 된다. 인간은 자연의 작업에 협동하고, 대지의 품속에서 일어나는 성장 과정 상에서 완만한 성숙의 리듬을 촉진한다. 그는 시간을 대신한다. 금속의 성장을 촉진하는 연금술 또한 이와 동일한 정신적 지평에 위치한다. 야금술사가 대지모 속에서 시작된 성장을 촉진시켜 태아인 광석을 금속으로 변형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금술사는 모든 범용한 금속을 금이라는 ‘고귀한’ 금속으로 변성시키는 작업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금의 고귀함은 ‘성숙’의 결과이며, 다른 금속들은 ‘익지 않은’ ‘날 것’이기 때문에 ‘비천’하다.
연금술사는 '자연을 도와' 그 궁극 목적인 금으로의 변성이라는 이상에 도달하게 만든다. 이러한 구제론적 사유는 서양의 연금술 문헌에 풍부하게 나타나 있으며, 특히 융은 그 중요성과 풍부함을 훌륭하게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