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장이와 연금술사 2

신화 읽기 노트

by 미르mihr

사람들은 금을 좋아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높았을 금값은 세월이 흘러도 낮아지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이야 살다 보니 운 좋게 작은 귀걸이와 목걸이 두어 개 (그것도 물론 순금은 아니다!)를 얻었을 뿐이지만, 돈 많은 이들은 여전히 금고 속에 금괘를 수북이 쌓아둔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금은 이런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는 것인가?


학창 시절에는 이런 현상을 '희소성의 원리'라는 경제학 원리로 배운 것 같다.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구할 수 없으니 당연히 비싸고 귀중하다고. 그것도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이 경제성의 원리에만 입각해서 움직인다는 논리가 그리 탐탁하지만은 않았다. 또 반짝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끌기 때문이라는 미학적인 설명도 있기는 하다. 이런 주장도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원래 그렇다'는 식의 본능적 특성 이론은 진정 내가 좋아하는 설명방식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그런 설명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래서 야금술에 얽힌 인류의 신화와 역사적 근거를 통해 제시하는 엘리아데의 또 다른 설명은 내게 흥미롭고도 소중한 듯 느껴진다.



금을 발견하려면 순결해야 한다


광맥의 위치를 계시하고 광석의 채굴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신적 존재만이 가능하다고 고대인들은 믿었다. 그런 까닭에 채광과 야금의 창시자는 반신이거나, 신의 사자로서 개화 영웅이다. 유럽에서 채광 의례는 중세 말엽까지 남아있었고, 새로운 광산의 시굴에는 종교의식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말레이시아에는 이슬람교가 깊이 뿌리내려 있지만, 광산과 광석을 관장하는 것은 옛적의 지신들이기 때문에 회교도 일꾼들은 그들의 종교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한다. 아프리카의 바이예카족은 새로운 갱도가 열릴 때, 제사장과 일꾼에게 둘러싸인 추장이 광산을 지배하는 정령에게 바치는 기도를 낭송한다. 바키타라 족의 광부는 작업 중에도 여러 가지 금기, 특히 성적인 금기를 지켜야만 한다. 의례상의 청정성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이티의 원주민들은 금을 발견하려면 순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장기간의 단식과 며칠간의 금욕 후에야 광석을 찾기 시작한다.


그들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며 그런 영역을 지배하는 지하의 생명들과 정령들을 건드리게 된다. 광부들이 접촉하게 되는 신성성은 일상적인 종교세계와는 관계없는 훨씬 심오하고 위험한 신성성이다. 그들은 자연법칙에 간섭하고 신성한 비밀 과정에 개입하기에, 통과의례 상에서 필수적인 모든 주의를 다하게 된다. 야금술 상의 성적 금기는 용해가 신성한 성적 결합, 신성 결혼(금속의 ‘암컷’과 ‘수컷’의 혼합) 임을 의미한다. 아프리카 바키바라 족의 대장장이는 모루를 마치 신부처럼 생각한다. 남자들이 집으로 모루를 가져올 때면, 혼례 행렬 때와 같은 노래를 부른다.



“태아 앞에 제물을 바쳐라”


광석의 용해 때 바쳐지는 제물 특히 인신 제물에 관한 주제는 인간과 금속의 신비적 결혼이라는 개념과 관계가 있는 신화적 의례적 모티브로서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이 주제는 형태학적으로 분류할 때 ‘창조’를 위한 제물 희생이라는 범주에 속한다. ‘금속의 결혼’인 용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살이 있는 존재가 조작에 ‘생명을 불어넣어야’하며 이것을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제물 희생, 즉 생명의 이전이다.


그러나 야금술과 결부된 인신 제물을 모티브로 하는 어떤 신화들은 철과 야금술에 대한 증오를 보여주기도 한다. 펀잡 북부에 살던 대장장이 종족인 아수르족에 대해 인근 종족들은 그들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용광로의 불길 속에서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지고신을 거역하고 기분을 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대장장이 일에 대한 이러한 증오는, 세상의 모든 시대 가운데 철기시대를 가장 비극적이고 야비한 시기로 보는 이론적 태도와 유사하다. 이는 철기시대에 끊임없이 계속되던 전쟁과 대학살, 집단 노예 제도 그리고 거의 전반적인 빈곤에 역사적 근거를 두고 있을 것이다.


수확을 위한 희생 의례가 곡물의 출현을 위한 원초적 희생을 상징적으로 반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야금 작업 중에 이루어지는 인신 제물의 현실적/상징적 희생도 그 목적은 신화적 모델을 모방하는 것이다. 금속의 기원에 관한 신화적 전승에 따면, 금속은 신이나 반신적인 존재의 몸으로부터 자라난다. 바빌로니아 연금술에서 쿠부(태아)라는 말은 모태로 상징되는 용광로 속에 놓인 광석을 의미한다. 금속의 성숙과 완성의 개념에 관한 이 최초의 기록을 살펴보자.


“그대가 (조산된) 태아를 날라오되, 다른 사람, 낯선 사람을 들여서도 안 되고 부정탄 사람이 태아 앞을 걸어 다녀서도 안된다. 태아 앞에 마땅한 신주를 바치라. 용광로에 ‘광석’을 넣는 날, 그대는 태아 앞에 제물을 바쳐야 한다.”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야금 작업은 일련의 예배 행위를 포함하고, 아프리카에서도 비슷한 문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야금술의 산과적 기능은 명백하다. 용해(즉 금속의 ‘성숙’)는 조산이며, 그 때문에 태아의 주술적 역할이 성립된다. 어느 가설을 보든, 야금술사들은 자신들의 기술이 금속의 ‘성장’을 촉진시킨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야금 작업에 부수되는 상징과 의례에는 인간과 자연의 적극적인 협동이라는 개념, 또는 인간이 작업에 의해서 자연의 과정을 대신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나타나 있다.


인간이 우주의 시간적 리듬에 개입할 수 있으며, 자연적 결과를 앞질러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개념이 점차 뚜렷하게 자리 잡은 것은 야금 및 농경 기술의 의례적 체험으로부터다. 채광과 야금 작업에 몸담음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양상을 변화시켜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명백히 정식화된 개념이라기보다는 예감이나 예측, ‘공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간이 시간의 작업을 담당할 수 있다는 위대한 발견이 바로 여기서 출발했던 것이다. 또한 이는 이천여 년 동안 철학적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연금술 작업 즉 현자의 돌에 의한 인간과 우주의 변성이라는 개념의 기반과 정당성을 이루기도 한다.



불, 초월의 징표


연금술사는 대장장이와 마찬가지로 ‘불의 지배자’다. 그가 물질을 다른 상태로 이행시킬 수 있는 것은 불에 의해서 가능하다. 자연적 열(태양열이나 대지 내부의 열)이라면 천천히 숙성시킬 것을, 불은 ‘보다 빨리 할 수 있는’ 수단이며 또한 자연 속에 이미 존재하던 것과는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불은 세계를 바꿀 수 있고 따라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주술적 종교적 힘의 표명으로서 고대 문화에서 샤먼, 의무(醫巫), 마법사 등의 성(聖) 전문가들은 ‘불의 지배자’로 여겨졌다.

자신의 몸속에 ‘불을 일으키는’는 것은 인간의 조건을 초월했다는 징표다. 일반적으로 원시인들은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힘을 ‘불타는 것’이라고 상상하고 ‘열’, ‘타는 느낌’ ‘몹시 뜨거운’ 등으로 표현한다. 그 때문에 마법사나 주술사는 짠 물이나 매운 물을 마시고 아주 매운 식물을 먹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내부의 ‘열기’를 증가시키려고 한다. ‘불의 지배자’인 샤먼과 주술사는 훨훨 타는 숯을 삼키고, 시뻘건 쇠를 만지며, 불 위를 걷는다. 이들은 추위에도 무척 강하다. 이런 능력은 어떤 엑스터시 상태에 대한 접근을 나타내거나, 완전한 정신적 자유라는, 제약 없는 상태에 대한 접근을 나타낸다.


샤먼과 마찬가지로 대장장이도 ‘불의 지배자’로 간주되었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대장장이가 샤먼보다 상위는 아닐지라도 동등하다고 여겨졌다. 시베리아의 모든 민족에게 대장장이는 매우 높은 사회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 그의 기능은 상업적인 것으로써 간주되지 않는다. 그것은 천직이거나 세습이기에 당연히 통과의례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대장장이는 특별한 정령의 수호를 받는다. 수구난과 파미르 지역에서 대장장이의 기술은 ‘예언자 다비드’로부터 받은 선물로 여겨지며, 대장간은 예배 장소로서 숭앙되며, 기도나 집회를 위한 특별한 회당이 된다.


샤먼과 대장장이의 신성성이 공통적 기원을 갖는 것은 그들의 ‘불에 대한 통달’로 증명된다. 이론적으로 ‘통달’이란 인간 조건보다 우월한 상태를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대장장이들은 영웅을 위한 무기를 만들었다. 이는 단지 물질의 제작이 아니라, 무기에 주어지는 ‘마법’의 문제이다. 대장장이의 신비한 기술이 무기를 주술적 도구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몽고족과 터키인의 서사시에서 ‘대장장이’(다르칸)라는 단어는 ‘영웅’과 ‘자유 기사’를 동시에 의미하며, 때로 대장장이는 왕위에 오르기까지 한다. ‘불의 지배자’, 샤먼, 대장장이, 영웅, 신화적 왕(왕조의 창시자)이라는 상호관계의 총체를 기억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