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장이와 연금술사 3

신화 읽기 노트

by 미르mihr

금과 금속에 대한 숭배와 그에 따른 야금술 작업에서의 신성한 의례는 자연스럽게 대장장이 신분의 신성화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책의 8장과 9장에서 엘리아데가 소개하는 ‘신성한’ 대장장이에 관한 신화와 계보에 관해 정리해보려 한다. 인간은 ‘불’을 사용함으로써 동물과 구별되는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기에, 불은 인간을 ‘신과 같은’ 경지에 올려준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하찮은 인간에게 신의 불을 훔쳐다 준 대가로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쪼아 먹히는 끝없는 형벌을 받았나보다.



프로메테우스 (귀스타브 모로)


대장장이는 거의 세계 도처에서 독자적인 집단을 형성했다. 이들은 대개 신비한 존재로서 나머지 공동체로부터 고립되었다. 이들은 아프리카의 마사이 족이나 햄족 등의 예처럼 때때로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신성한 힘을 가진 것들을 위험하게 바라보는 양가적 감정에 의한 것이었을 뿐이다. 대장장이는 대체로 그 계보가 황태자와 신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종교와 비의를 통해 오랫동안 민중의 상상력을 지배하며 영혼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



문화 창조를 완성한 개화(開花) 영웅


고대 니그리시 문명(북부 콩고, 상나일, 동아프리카의 중앙 및 남부)권에서 대장장이는 가장 존경받으면서 중요한 종교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에게 대장장이는 토지 경작에 필수적인 도구를 가져다준 자이다. 아프리카 대장장이의 특권적 지위와 종교적 기능을 설명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주 창조 신화와 기원 신화이다. 최초의 신화 속 대장장이는 최고 신으로부터 재배 가능한 중요한 종자의 표본을 받아 그의 망치 속에 넣었다. 아찬티 족의 신화에 의하면, 대장장이는 스물네 명의 인간과 동물을 만들라는 신의 명을 받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최초의 대장장이는 불 사용법과 음식물을 익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집을 짓고 자식을 갖기 위한 성행위, 분만 기술, 할례, 매장 형식 등도 계시해주었다. 대장장이는 왕보다 중요한 사회적 종교적 역할을 수행한다. 고대 니그리시 문화권 전 영역은 천상의 대장장이 개화 영웅의 신화에 그 관념적 근거를 두고 있는 대장장이의 종교적 복합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단지 농경 기구를 제작하는 역할로써만 대장장이의 의례적 가치를 설명할 수는 없다.


대장장이의 기능을 이해하려면 종교적 신화 및 관념 체계에 의지해야 한다. 천상의 대장장이가 가져온 ‘문명’은 세계의 조직화만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정신 구조의 조직화도 이루었기 때문이다. 대장장이는 신의 작업을 지속하고 완성시킴으로써 인간이 비의를 이해하도록 한다. 에웨족에게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연장은 종교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쇠망치와 모루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여겨져, 서약을 할 때 그 앞에서 한다. 대장장이는 비를 만들며, 전쟁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제작의 비밀을 노래하는 입문 스승


대장장이 신에 관한 다른 차원의 신화는 천신(폭풍신)과 수중의 용 사이의 싸움에 관한 테마이다. 이런 신화 속 싸움에서 괴물을 퇴치한 신은 괴물의 몸에서 세계를 끌어내고, 괴물을 지하 심연으로 집어던진다. 이때 괴물을 퇴치하는 천신(폭풍신)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경이로운 무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대장장이 신이다. 이런 신들 사이의 협조는 세계 제패를 위한 대전투에서 협력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장장이 신은 신들의 건축가이자 장인으로 활약한다.


대장장이 신 혹은 신적인 대장장이가 천신들을 위해서 만들어준 무기는 벼락과 번개다. 최고신에게 지상권을 확보시켜준 대장장이에 관한 이 모든 신화에서 명확한 것은 도구 제작에 부여된 특별한 중요성이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그것을 ‘고안’ 해내고 저절로 ‘나타나게’ 하는 주문을 안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신-대장장이는 음악 및 노래와도 관계된다. 그리스어로 시인을 뜻하는 말(poietes)의 어원이 ‘제조인’ ‘제작자’라는 점, 예술가(artiste)와 장인(artisan)이 의미론적으로 근접하다


노랫말은 상당한 창조력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필요한 노랫말로 노래하면서 물건을 만든다. 이런 점에서 장인은 비밀의 소유자이자 주술사이다.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란 만드는 비밀을 ‘아는’ 사람이다. 문화의 여러 차원마다 대장장이 기술과 신비술(샤머니즘, 마법, 치료)과 노래, 무용, 시 같은 기계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더욱이 이 기술들은 통과의례나 특유한 의례, ‘생업의 비밀’을 내포하는 성(聖)과 신비의 분위기 속에서 전달됐다.


오르페우스 (니콜라 푸생)


신화 속 개화 영웅인 대장장이는 인간에게 문화를 깨우쳐주는 임무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고, 청년들의 정신적 ‘도야’을 위한 지상의 조언자였다. 제철공은 대장장이의 위세를 나누어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말(馬)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상징과도 관련된다. 이때 말은 전차에 이용되는 만마(輓馬, 짐 끄는 말)가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유목 기마 민족이 발견한 승용마이다. 승용마는 문화적 맥락 속에서 많은 신화를 창조해냈고, 말과 기사는 ‘청년 결사’의 관념 체계와 의례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했다. 말굽을 박는 것은 청년 비밀결사의 입문 의례이자 결혼 의례이기도 하다. 결혼 때 행해지는 말굽 박기 의례와 말의 죽음과 재생의 의례는 신랑이 독신자 집단에서 나와 기혼자 계층에 가입하는 것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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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 샤먼, 대장장이에게 공통적이었던 ‘불에 대한 통달’은 기독교적 민간전승에서는 악마의 일로 간주되었다. 가장 빈번한 민간전승적 이미지 가운데 화염을 토해내는 악마가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이 ‘불에 대한 통달’이라는 원형적 이미지의 최종적인 신화적 변형인 듯하다. 또한 전사는 그의 통과의례적 전투 중에 뜨거워져서, 샤먼이나 요가 행자들이 만들어내는 ‘주술적 열기’를 상기시키는 ‘열’을 발산한다. 이런 측면에서 전사는 ‘불의 지배자’들과 흡사하다. 화덕 불에 의한 회춘 모티브 역시 주목해야 한다. 병자를 가열한 화덕 속에 넣는다든가 모루 위에서 두드려서 병을 낫게 하고 노인을 젊어지게 하는 것 역시 제철 대장장이의 역할이었다.


중요한 것은 대장장이와 제철공의 신화적 이미지가 오랫동안 민중의 상상력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 또한 이런 민담에는 통과의례적 의미가 언제나 함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깨어 있는 의식이 아닌 영혼 깊은 곳에 영향을 미치며,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자극한다. 민담과 그 안에서 되살아난 이미지와 상징은 그걸 듣는 사람이 그 의미를 의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그의 영혼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게 된다.